“쓸 데 없는 대면 접촉 하느니”
스마트폰으로 직접 대출 신청
IT 기술이 감정 소모 차단막
“세상 삭막해지는 건 아닌지…”
지난달 말 신용카드 결제대금이 부족했던 회사원 유모(37)씨는 스마트폰에 주거래 은행 어플리케이션(앱)을 띄우고 한참 씨름했다. “적금이 있으면 은행에 안 가도 마이너스통장을 만들 수 있다”는 직장 동료 조언에 따랐다. 그는 점심도 거른 채 ‘시장금리부변동여신’ ‘여신한도약정수수료’ 같은, “평생 입에 올려 본 적도 없는 ‘외계어’ 투성이 약정서”를 읽어가며 수 차례 실패 끝에 마이너스통장 개설에 성공했다. 유씨는 “은행에 갔으면 훨씬 금방 끝났겠지만 얼마 되지 않는 내 월급 내역을 훑어보는 은행 직원 얼굴을 보는 게 부담스럽고 이자를 좀 내려달라고 사정하는 것도 싫었다”고 말했다.
최근 친구들과 동남아 여행을 간 직장인 이모(34)씨는 M호텔 앱을 보고 반색했다. 보통 방에 있는 전화를 이용해 식사나 샴푸 같은 편의용품을 요청했던 ‘룸 서비스’를 스마트폰 앱으로도 할 수 있게 된 것. 이씨는 “어차피 직원 누군가가 수고를 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일 것”이라면서도 “투숙 비용에 포함된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짧은 영어 대화 중에 내 발음이 이상했는지, 내가 지나친 요구를 해서 직원이 귀찮아하는 건 아닌지 하는 사소하지만 신경 쓰이는 고민을 한결 덜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서비스업종 종사자와 통화를 하거나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도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발된 다양한 기술이 대인(對人)간 사소한 감정 소모를 방지해 주는 ‘디지털 실드(shieldㆍ방패)’로 각광받고 있다. 비대면 서비스의 확산 추세는 정보통신(IT)기술이 주는 편리함이 1차적인 원인으로 꼽히지만, 그 이면에는 기술을 방패 삼아 대면 횟수를 줄이고 싶은 사용자의 심리적 요인도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한 커피 프랜차이즈업체가 앱을 통해 커피를 시킬 수 있도록 한 모바일 주문서비스는 시행 3년 만에 이용 건수가 1,500만 건(올 초 기준)을 돌파했다. 이 업체는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한 주문 서비스도 준비 중이다.
전문가들은 낯선 사람을 대하는 것에 대한 본질적인 부담감을 IT기술이 줄여주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숙영 경희대 소통문화연구소 전문연구원은 “대부분의 사람은 ‘갑’의 위치에 있는 고객의 입장이 돼서도 무엇을 요구를 하거나, 자세히 물을 때 거부당할 것에 대한 부담을 크게 느낀다”며 “IT기술이 ‘보호막’을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비스산업의 고도화가 이런 추세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소규모 가게가 더 많을 때는 손님들이 주로 주인을 상대했지만 지금은 대부분 아르바이트생 같은 비정규직인 경우가 훨씬 많다”며 “가게 매출과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직원에게 불편을 감수하고 복잡한 주문을 하기보다 앱을 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실드’ 효과로 대화가 줄어 일상이 더 삭막해 질 것인지, 자연스런 흐름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아직 확실한 건 없다.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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