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 120개 중대 겹겹이 경호
이정미 대행 담담히 결정문 낭독
대리인단, 각하 사유 부정에 긴장
“국정개입 인정” 나오자 고개 떨궈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10일 오전 11시21분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단호한 목소리로 헌정 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의 탄핵을 명하자 서울 재동 헌재 대심판정 방청석은 안도의 한숨과 탄식이 교차했다. 3개월 넘게 직무가 정지된 박근혜 대통령은 이 대행의 말이 끝난 그 순간부터 최고 권력을 영영 박탈당하게 됐다.
전세계의 이목을 의식하듯 이 대행을 비롯한 재판관 8명은 오전 11시 정각 역력히 긴장이 묻어나는 굳은 얼굴로 대심판정에 들어섰다.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생중계를 허용한 헌재 측 결정으로 방송카메라 200여 대가 출입문을 빼곡히 채웠고, 알자지라 BBC CNN 등 외신들도 희대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본국에 송출했다.
이날 소추위원 측은 일찌감치 자리에 착석해 눈을 감은 채 재판관들이 입장하길 기다렸다. 태극기를 꺼내 펼치는 돌발행동을 했던 대통령 대리인단 측 서석구 변호사는 자리에 앉아 기도를 하는 듯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헌재 바깥은 전국 각지에서 집결한 경력 120개 중대가 겹겹이 둘러싸고 있었다.
오전 11시3분. “저희 재판관들은 90여일 동안 공정하고 신속하게 사건의 해결을 위해 온 힘을 다해 왔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국민들도 재판부와 마찬가지로 많은 번민과 고뇌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대행은 그간 재판부의 심적 노고와 국민에 대한 걱정을 담담하게 술회하며 첫 문장을 읽어 내려갔다.
이 대행이 본격적으로 국회의 탄핵소추가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전문을 읽자 대리인단 측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 대행은 “소추 사유별로 표결할지 여부는 국회의장 재량이고, 탄핵 소추에 앞서 국회가 사유를 조사할 의무가 없다”며 노 전 대통령의 선례와 마찬가지로 각하 주장이 타당하지 않다는 재판부 판단을 분명히 했다. 앞서 김평우 변호사 등은 변론 막바지에 “국회가 탄핵 소추 사유별로 표결하지 않았고, 표결에 앞서 대통령에게 변론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탄핵 소추 자체를 각하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공무원 임명권 남용, 언론의 자유 침해 소추 사유에 차례로 대통령의 관여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낭독한 뒤 세월호 참사 역시 탄핵심판의 판단 대상이 되지 못한다고 선언하자 대심판정은 술렁였다. 일반에 개방된 24개 방청석에 앉은 시민들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한숨을 쉬었다. 소추위원단과 대리인단 양측은 TV 정지화면을 보는 듯 자리에 못 박혀 이 대행 입만 뚫어지게 쳐다 봤다.
살 떨리는 긴장이 고조된 순간 이 대행은 마지막 쟁점으로 넘어가 최순실씨의 국정 개입과 권한 남용 사실이 인정된다고 낭독했다. “그간 언행을 보면 법 위배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헌법 수호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 결국 피청구인의 위헌 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다.” 마침내 이 대행 입에서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선고가 떨어지자 방청객 곳곳에서 안도의 한숨과 탄식이 터져 나왔다. 대리인단 측 변호사 일부는 고개를 떨궜다. 소추위원단 측은 전원 자리에서 일어나 재판부에 목례를 한 뒤 홀가분한 표정으로 법정을 나섰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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