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은 “내치에서 실패하면 선거에서 정권을 잃는 것으로 끝나지만 외치에서 실패하면 국가의 파국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 적이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의 주한미군 배치 결정을 둘러싼 최근의 논란은 현 정권이 어떤 해명과 설명과 변명을 하더라도 외치 실패의 결정판이란 점에서 케네디 전 대통령의 경고가 무겁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사드 배치 속도전에 나선 이유를 알 길이 없다. 북한의 핵ㆍ미사일 능력이 급속히 고도화하기 때문이라지만, 사드가 과연 북핵 해결과 북한 미사일 방어에 유용한 수단인지 여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미국에서조차 기술적 유효성을 확실히 검증받은 적이 없고, 무기 자체의 구매비용은 물론 천문학적인 안보비용까지 감내해야 하고, 요격미사일 교란ㆍ기만탄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고, 남북 간 ‘종심’이 짧은 상황에서 북의 중거리 미사일 대처 능력이 거의 없다는 등의 한계는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게다가 발사대를 당초 예상했던 6개가 아니라 4개만 들여온다는 건 핵심이 레이다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
지금의 사드 배치 속도전은 무능력ㆍ무책임 정권의 전형을 보여준다. 중국은 지난달 말 롯데그룹의 경북 성주골프장이 사드 부지로 최종 확정되자 그간 경고했던 대로 파상공세를 퍼붓고 있다. 그로 인해 중국 진출 기업들의 사업기반이 흔들리고 교민들의 삶의 터전이 위협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지금껏 무대책이다. 심지어 주중대사관조차 어느 지역에서 보복 조치가 있었다는 얘기가 들려오면 부랴부랴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정도다.
책임과 권한이 제한적인 황교안 과도내각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 참으로 놀랍다. 이 참에 대중 수출의존도를 낮추고 관광ㆍ한류 교류국을 다변화하자고 얘기하려면 진작부터 예견됐던 중국의 보복 조치에 대해 최소한의 대응책이라도 준비하는 염치는 있어야 했다. 사드 배치 찬성 여론이 과반을 넘고 사드 보복 기사에 달리는 상당수 댓글이 중국 비난이란 점에 고무돼 짧으면 6개월, 길어도 2년만 ‘고난의 행군’을 감수하자는 건가.
중국의 치졸한 행태는 백 번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옳고 그름을 떠나 중국이 이토록 난리를 치는 데에는 나름 분명한 근거가 있다. 중국은 주한미군에 배치될 사드를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의 일환으로 보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까지 한 묶음으로 여긴다.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를 통한 미국의 대중 포위전략 현실화의 핵심기제가 바로 사드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정부는 지금도 이를 부인하지만 지난달 2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일 양국의 MD 체계 편입을 공언했다.
남북 분단상황에서 국가안보가 존립의 문제임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국가안보를 굳건히 수호하는 건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다. 안보정책의 최우선 목표는 평화와 안정이란 얘기다. 어떤 정책 수단을 균형있게 선택하느냐는 그 다음 문제다. 사드가 북한의 핵ㆍ미사일 대응수단으로 유용하더라도 중국의 치졸하지만 심각할 수 있는 보복을 불러왔고 미중 간 갈등과 타협의 와중에 유야무야 되거나 혹은 한 쪽과는 척을 져야 하는 수단임이 분명해졌다.
대북 강경제재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목표를 위한 정책수단이다. 당연히 대화와 타협의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이를 위한 수단도 강구해야 한다. 사드를 절대선으로 상정하는 순간 국제사회의 대북 공조가 흐트러지면서 북한이 오히려 수혜를 보는 아이러니는 어떻게 할 것인가. 목표를 상회하는 수단은 있을 수 없다. 지금은 새 정부가 국민적 열망에 기반해 사드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리도록 공간을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 한미ㆍ한중ㆍ미중이 다층적 차원에서 논의한 최종 결과도 사드 배치일 수 있지만, 협상과 타협을 거친 결과는 당연하게도 지금처럼 폭력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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