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삶을 바꾸는 순간이 있습니다. 유명 문화계 인사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들의 인생에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을 남긴 작품 또는 예술인을 소개합니다.
조부의 ‘책 읽어주는 남자’ 하며
어려서 야한 이야기에 익숙해져
순전히 나만을 위한 첫 책
4학년때 고모가 준 선물로 만나
인간은 이야기하는 존재
그 욕망에 가장 충실한 책
어린 시절, 이야기는 존재의 일부였다. 이야기를 녹용이나 산삼 먹듯이 많이 섭취했다. 지금도 그러니까 이야기를 쓰고 있지 않나 싶다. 이야기 없는 세상을 상정할 수도 없고. 그런대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이기도 하고.
이야기를 읽고 읽고 또 읽게 된 건 초등학교 입학 무렵, 조부의 ‘책 읽어주는 남자’가 되면서부터다. 나랑 나이 차이가 48살 나는 조부는 그 무렵 50대 후반이었는데 당시 그 정도 연세면 ‘상노인’으로 꼽혔다. 눈이 침침한 할배의 돋보기가 돼 읽은 신문은 절반 이상이 한자로 쓰였고, 할배는 한번 가르쳐 준 후 다시 못 읽는 한자가 나올 때마다 한대씩 꿀밤을 때렸다. 그 꿀밤이 하도 맛있어서 내 한자 실력은 나날이 쑥쑥 늘었다. 그 무렵 내가 신문에서 가장 많이 본 이름은 박정희 대통령과 일본에서 활약한 야구선수 장훈이었고, 오늘 장훈이 몇 타수 몇 안타를 쳤는지를 소리 내 읽는 건 가장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다.
1967년 초등학교에 입학한 나는 사랑에 눈을 떴다. 여리고 청초한 여선생을 담임으로 맞아 사모하는 마음을 가누지 못했는데 그 해 겨울, 선생은 결혼식을 한다고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딴 녀석들은 수업 시간이 줄어들어 좋다고 책상에 뛰어오르는 등 광란을 하며 환호했지만 나는 홀로 집으로 돌아가는 10리 길을 울면서 걸었다. 그리고 다시는 여선생을 사랑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2학년, 담임선생은 여성은 여성이었으되 영국 대처 수상을 연상케 하는 강철 같은 의지와 철권의 소유자로 감히 딴 마음을 품을 수 없어 내 관심은 자연스럽게 책으로 옮겨갔다. 이 무렵 신문만으로 적적함을 버티기 부족했던 할배는 읍내 시장에서 사금융(시장 상인들을 상대로 한 신용조합의 일종)을 운영했던 아버지를 시켜 읍내 대본소(오늘날의 책방)에서 종종 ‘연산군’ 같은 역사소설을 빌리곤 했다. 그렇게 빌린 소설은
그러니까,
적당히,
야했다. 역사소설 쓰는 작가들이 뭐 엄청나게 야하게들 소설을 썼을 때였으니까. 영화보다 상대적으로 검열에 자유로운 소설이 ‘성인 대중’을 위한 오락 기능을 충실히 시행하던 때였으니까.
하여튼 ‘연산군’에는 이상한 동작들이 많이 나왔다. 나는 왜 남녀 주인공이 옷을 벗고 후원에서 말 타는 흉내를 내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지만, 이게 교육적이진 않다는 건 알았다. 할아버지가 민망할까봐 읽다 말고 건너 뛴 그 부분은 할아버지가 주무시면 다시 읽으며 학습했다.
‘연산군’보다 나에게 영향을 미친 책은 저자 이름도 가물가물한 한국 소설 ‘사랑이 메아리 칠 때’였다. 이 책은 야하기 보다는 당시 풍속에 반하는 내용이 수두룩했다. 여대생의 남자친구가 그 엄마와 사랑에 빠지는데, 하필 두 사람이 사랑의 도피행을 여대생 아빠의 별장으로 떠난다는 줄거리였다. 친척집 방바닥을 굴러다니던, ‘연산군’과는 게임이 안 되던 이 ‘현대물’은 여러 번 집구석 먼지구덩이에 묻혔다. “내용이 문제”라며 책을 묻었던 나는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다시 뒤져 읽기를 반복했고, 다 읽고 난 후 “이런 소설은 세상에 있어서 안 된다”며 아궁이에 집어넣었다.
이 소설을 기점으로 ‘조미료 농도’가 그 이하로 낮으면 책에 흥미가 생기질 않았다. 말죽거리 복부인의 연애사가 연재된 잡지 ‘새 농민’도 더 이상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동생이 형을 죽이고, 형수랑 결혼하고, 그 형의 아들은 복수하고 그 애인은 자살하는, 설정 자체가 상당히 야한 고전 ‘햄릿’과 중고등학교 용 자유교양신서를 거쳐 중학생 무렵 무협지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책 읽기는 일종의 중독 비슷한 습관이 됐지만 “순전히 나를 위한 책”은 초등학교 4학년 무렵에야 만났다. 12살 터울의 셋째 고모가 초등학교 선생님이 돼 첫 월급으로 사준 5권짜리 아동용 ‘아라비안 나이트’ 축약본이었다. 신화적 내용, 종교적 풍습, 가보지 않은 세계의 일상이 아라비아 카펫 무늬처럼 정교하고 현란하게 펼쳐졌다. 인도, 페르시아, 이집트 등지 설화를 모아 엮은 이 이야기는 각기 다른 지역의 풍습과 상상력, 거기에서 태어난 인물들의 모험을 그린다. 이를테면 알라딘은 중국에서, 신밧드의 모험은 오만쯤에서 만들어진 얘기라는 말씀. ‘햄릿’처럼 단일한 얘기도, ‘성경’처럼 단일 민족의 역사도 아닌 무수한 인간들의 생로병사가 밀도 높게 그려진다. 큰 새, 단지, 노예 같은 서사 장치, 신기료(신발 깃는 사람) 같은 새로운 단어, 다채로운 상상력과 이야기가 나를 매료시켰다. ‘…메아리…’ 이후로 조미류 듬뿍 친 이야기에 빠진 나는 이 책을 100번 이상 읽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 정보 지식을 전달하고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기능적인 ‘학설’이 있지만, 나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야기하려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꾸며내려는 기질이 인류에게는 있다. 아라비안나이트는 그 욕망에 가장 충실한 이야기, 가장 순수한 이야기다.
완역본을 읽은 건 20대 무렵 리처드 버튼 버전의 일본어 판 중역본이었다. 수백 개 이야기가 3권으로 묶인 그 전집은 내 인생에서 가장 무거운 책으로 기억한다. 친구에게 책을 빌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팔이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다. 1990년대 범우사에서 10권짜리 책으로 정식 출간됐다.
‘내 이야기’(소설)에도 이런 시도를 한 적 있다.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는 우리가 상상하지 않은 이국적 풍경을 짧은 단상으로 엮는다. 1990년대 쓴 중편 ‘호랑이를 봤다’도 여러 형식의 발화로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엮어낸다. 최근에 낸 장편 ‘투명인간’에서는 이런 서사 방식을 점차 더 확대했다. 멀리 책을 찾을 것도 없다. ‘나를 키운 8할’을 끊임없이 펼치고 있는 이 인터뷰가 바로 아라비안 나이트식 말하기 아닌가.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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