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박근혜 대통령 파면’으로 위기에
‘탄기국’. 풀어 쓴 명칭은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다. 탄기국은 10일 헌재의 탄핵 인용에 격분, 연일 불복 시위를 벌이고 있다. 탄핵이 기각될 거라 확신했던 그들의 믿음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 그것이 애국심이든, 가짜뉴스든 홀로 타오르진 못했을 터. 그간 탄기국 집회에 출석도장을 찍어가며 이들의 믿음을 부채질한 사람들이 있다. 자유한국당 소속의 정치인들이다. 탄기국이 세를 얻어가며 뒤늦게 얼굴을 내민 10여명도 있으나 주요 인사만 꼽아봤다. 불복과 승복 사이 ‘멘탈 붕괴’를 극복하고 이들이 계속 ‘박근혜 사랑’을 이어갈지는 자못 궁금하다.
① ‘태극 담요’ 김진태
그냥 태극기를 두른 게 아니다. 단추 달린 방한용 담요의 무늬가 태극기다. 이쯤이면 무대의상을 고심하는 가수처럼 프로의식이 남다르다.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해 11월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는 선전포고를 시작으로 수개월간 탄기국 무대를 누볐다. 부산, 대구 찍고 서울광장은 기본. 자신의 페이스북에 ‘태극기 제8보’까지 남겨가며 캐나다, 독일까지 기꺼이 달려갔다. 3월 5일 공식 태극기 집회만 20차례 참석했다는 뿌듯한 트윗을 날리기도 했다.
그의 지나간 이력을 살펴보니 지금만큼 존재감이 부각된 시절이 없다. 여의도에 발을 디딘 후 종북몰이, 청와대 호위무사로 캐릭터를 구축했지만 “김진태는 대통령감”이라는 박사모의 애정에 비할까. 탄핵이 인용된 10일, 그는 “대한민국의 법치는 죽었다”고 개탄했다. 그리고 탄핵 심판 불복운동에 나섰다. 11일에도 “불굴의 태극기, 승부는 9회말 투아웃부터다”라며 승부욕을 불태웠다(▶ 페이스북 포스팅). 공들인 무대에서 내려오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② ‘잊혀질 바엔…’ 김문수
탄핵안이 가결되고 두 달이 다 지나서야 마음을 고쳐먹었다. ‘탄핵은 기각되어야 한다’고 일성을 토하며 김진태 의원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얘기다. “최순실이 잘못했는데 왜 대통령이 탄핵돼야 하나”부터 “블랙리스트 나도 만들었다”라는 무리수까지 뒀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3선 의원에 재선 도지사이던 시절은 좋았다. 잠룡 리스트에서 빠진 적이 없는 날들이었다. 하지만 20대 총선 패배는 뼈아팠다. 새누리당 점퍼만 입어도 이긴다는 대구에서 김부겸에게 졌다. 선거에서 져 본 적이 없는 그였다. 패배보다 잊혀지는 시간이 더 아파서였을까. 최근 한 종편 방송에 출연한 그는 탄핵이 인용돼도 정치를 계속하고 싶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의 대선주자를 꼽아달라는 질문엔 “내가 하면 제일 잘할 것 같다”고도 했다. 잊혀질 바엔 망가짐을 택한 것이다.
③ ‘대통령님, 저 여기 있어요’ 윤상현
“저 윤상현은 탄핵 기각을 확신합니다”. 탄핵심판 선고일이 정해진 8일, 윤상현 의원이 남긴 트윗이다. 사실 그가 빠지면 섭섭하다. 그는 ‘최진실’ 최경환 의원과 더불어 ‘윤진실’이라 불릴 만큼 자타공인 ‘진짜 친박(진박)’이다. 탄기국 무대 데뷔는 1월 14일로 다소 늦은 감이 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귀국한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무릎까지 꿇어가며 박근혜 대통령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다.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지만 “살생부 자작극”을 벌여 자신을 핍박한 김무성을 비난하는 것으로 무사 통과.
그는 지난해 20대 총선 직전 막말 녹취록 파문(▶ 관련기사)으로 당을 흔들고 공천에서 탈락했으나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 여의도에 돌아왔다. 그보다 앞선 1월, 50대 친박인 그가 충청포럼의 2대 회장이 됐다. 의문이 섞인 말들이 오갔으나 결론은 ‘충청대망론’ 속에서 윤상현이 뭔가 하지 않겠느냐는 것. 그러나 탄기국 무대에 데뷔한 다음 날, 돌연 충청포럼 회장직을 부회장에게 석 달간 위임하기로 했다. 충청대망론을 실현시켜줄 반기문이 귀국했는데, 탄기국 집회에 나가 큰절을 하고 충청포럼서 손을 떼는 상황에 해석이 분분했다. 반기문과 친박의 가교역할이 여의치 않았던 걸까. 어쨌든 이후 윤 의원은 ‘누님 지키기’에 발벗고 나섰다.
④ ‘진박 감별사’ 조원진
대구에서만 내리 3선을 한 조원진 의원. “누가 진실한지 헷갈릴 테지만 조(원진)가 가는 후보가 진실한 사람”이란 발언이 회자될 만큼 ‘진박’이다. 탄기국의 2월 26일 대구집회에서 그는 호스트이자 사회자였다. “거짓과 조작을 일삼은 편파 언론방송은 양심고백하라. 대통령 탄핵을 막는 그날까지 집집마다 태극기를 겁시다”. 쩌렁쩌렁했다. 하지만 전파가 제대로 안 됐는지 대구지역 집집마다 태극기가 내걸렸다는 소식은 없다.
그는 탄기국의 여러 무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과 공모했다는 게 말이 되나. 저 앞에 있는 가짜 촛불 민심에 우리는 속았다”고 말했다. 아쉽게도 특검은 ‘공모’가 말이 된다는 증거를 찾아냈고, 헌재는 바로 그것이 탄핵 사유라고 인정했다.
⑤ ‘교과서 지키던’ 전희경
“나라를 구하자는 우리는 눈물로 시위를 하는데, 대통령을 끌어내는 사람들은 웃으며 시위를 하는 게 정상이냐”. 비장한 시위만 했나 보다. 비례대표로 지난해 국회에 입성한 전희경 의원이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진보적 성향을 가졌다는 1970년대생 치고는(딱 중간인 1975년생) 좀 신파다. 왜 탄기국 무대에 섰는지 앞에 열거한 인사들에 비해 고개가 좀 갸우뚱해진다. 그래서인지 초반엔 좀 헤맸다. 박근혜가 아닌 ‘진실의 교과서를 지키자’는 주장이 장황했던 탓이다. 국회 교육문화위원회 위원이 국정교과서에 힘을 쏟는 건 상식적이나, 탄기국은 그럴 여유가 없었던 듯하다.
그는 전경련 산하 자유경제원 사무총장 출신이다. 국민적 비난에 직면, 돈줄도 말라버린 작금의 전경련을 보자니 정치권으로 갈아탄 그는 운이 좋은 편이다. 다만, 이화여대 석사논문 95% ‘통복사’ 표절 의혹 규명이 진행형인 게 걸릴 뿐이다. 헌재의 선고가 나오기 전까지 탄핵심판을 기각해달라는 자유한국당의 탄원서 서명을 주도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박선영 기자 philo9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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