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3.14
16세기부터 불려온 스코틀랜드의 구전 노래 ‘메리 해밀턴 Mary Hamilton’이 세계인에게 알려진 건 19세의 무명 포크 가수 조앤 바에즈(Joan Baez)의 1960년 데뷔 음반을 통해서였다. 궁정 시녀 메리 해밀턴이 왕의 아이를 잉태했다가 그 아이를 죽인 뒤 여왕에 의해 처형당한다는 게 노랫말의 내용이다.
해밀턴은 바에즈의 맑고 처연한 음성을 빌려 느리고 담담하게, 1인칭 화법으로, 제 사연을 들려주지만 자신이 왜 아이를 죽여야 했고 왜 처형당할 수밖에 없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해 보이는 건, 왕이 해밀턴의 목숨을 지켜줄 만큼 (여왕보다) 권력이 세지 않았거나 열렬히 사랑하지 않았으리라는 점이다. 해밀턴이 살고 아이도 무사히 성장했다면 그 아이는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왕위 세습의 변수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소문이 번지기도 전에 제 손으로 아이를 죽인 걸 보면, 애당초 사랑도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가사에는 해밀턴이 교수대로 끌려가기 전날 밤 왕이 찾아와 해밀턴을 가여워하며 마지막 만찬을 함께 나누자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해밀턴은 물론 왕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한다.
영국의 16세기는 1509년 왕위에 오른 헨리 8세(1491~1547)가 열었다. 왕비 캐서린과 이혼하고 시녀였던 앤 불린과 재혼하면서 수장령으로 로마와 척을 진 뒤로도 그는 네 명의 왕비를 더 맞이했는데 그들 중 셋이 전 왕비의 시녀였다. 셋째 왕비 제인 시모어가 낳은 아들 에드워드의 권력 강화를 위해 스코틀랜드의 왕녀 메리 스튜어트와 결혼시키려다 거절당하자 전쟁을 감행하기도 했다. ‘메리 해밀턴’의 유래는 불분명하지만, 헨리8세의 잉글랜드에 앙심이 있던 스코틀랜드 시민들이 저 사연들 위에 훗날 엘리자베스1세 여왕에 의해 처형 당하는 비운의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의 사연을 겹쳐 불렀으리라는 설이 그럴싸하다. 러시아 로마노프 왕가의 표트르 대제와 그의 아내 예카테리나 1세의 시종 메리 해밀턴이 처형(1719년 3월 14일)된 사건에서 유래를 찾기도 하지만 설득력은 약하다.
‘메리 해밀턴’은 1970년대 초 싱어송라이터 방의경이 ‘아름다운 것들’이란 제목으로 가사를 번안해 불렀고, 이듬해 가수 양희은이 음반을 내면서 한국인의 애창곡이 됐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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