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기 위주 교육 무의미… 문재 해결능력 키우는 교육해야”
“제조업도 서비스업과 융합시대” “벤처 창업 지원, 투자위주로”
13일 열린 ‘4차 산업혁명과 차기 정부의 과제’ 포럼에서는 대선주자들의 정책브레인과 전문가 간 치열한 토론이 진행됐다.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는 부분도 많았지만, “4차 산업혁명 파고를 넘으려면 신속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데는 한 목소리를 냈다. 토론에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정책공간 국민성장’에 참여하고 있는 김정호 카이스트 교수, 안희정 충남지사 정책자문을 맡고 있는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교수, 오세정 국민의당 의원, 김세연 바른정당 의원, 정의당 미래정치센터 부소장인 전승우 동국대 교수가 참여했다.
엇갈리는 두려움과 기대
박순성 바꿈 이사장(사회)=4차 산업혁명 시대의 예측 불가능성 탓에 기대와 두려움이 엇갈리는데요. 현재 기술과 자원을 기반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전망해주신다면요.
김정호 교수=현재 기술과 자원을 기반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 특징을 예측해보자면 초연결성, 초지능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네요.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을 기반으로 사이버세계와 물리적세계가 자연스레 연결되고, 이를 바탕으로 상품과 서비스의 가치가 향상되겠지요.
민경배 교수=4차 산업혁명을 두고 문명사적 전환이자 이미 시작된 미래라는 실재론이 있는 반면, 그동안 진행돼 온 정보화 과정의 연장선상일 뿐이라는 허구론이 엇갈리지요. 거기에 새로운 성장 동력이자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있다는 기회론과, 노동의 종말이자 기술 종속 사회의 심화라는 위기론도 교차합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대선 이후 등장할 차기 정부 임기 중에 새로운 변화 물결이 가시화할 거라는 겁니다.
전승우 교수=해석이 어떻든 4차 산업혁명이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는 점에서 한국 사회의 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국민 행복에 기여해야 한다는 대전제 하에서 준비해야 한다고 봅니다.
융합의 시대, 국가적 대응 방향은
사회=4차 산업혁명 시대 기본 성격은 융합입니다. 이 때문에 연구나 정책 수행을 한 부처에서 담당하기 보다는 대통령 직속 기구를 설치하자는 제안이 나오는데요.
김정호 교수=인프라나 규제 개혁은 결국 국가 주도로 이룰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신설해야 한다고 봅니다. 관련 예산이 지속적으로 편성되고 성과 점검도 활성화되려면 대통령의 관심과 의지가 필요하다는 점에서도 존재 이유가 확실한 기구인 거죠.
오세정 의원=효율성에 의문이 듭니다. 이미 한국은 녹색성장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데, 소모적인 데다 효과가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4차 산업혁명은 여러 부처가 관계된 문제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대통령 직속 위원회 형식보다는 실질적인 방안을 논의하는 관계 장관 회의 등을 활성화하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요.
민경배 교수=저 역시 특정 키워드를 가지고 관련 전담 기구를 만드는 정책이 가장 쉬우면서도 안이한 방식이라 생각합니다. 4차 산업혁명이 진정한 혁명이라면, 대통령 직속 위원회 한 두 개 만든다고 대응이 가능할까요? 반드시 정부 산하의 기구여야 하느냐에 대해선 논의가 필요합니다. 독일의 경우 전문가, 학계, 업계 관계자들이 모여서 비영리 기구를 구성 하고 이들이 논의한 사항을 정부가 정책에 반영하는 모델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창업 친화적’ 사회로 가려면
사회=4차 산업혁명으로 새롭게 바뀔 경제구조에서 전통적인 산업은 어떻게 변해야 할까요. 특히 국내에서 강점이었던 제조업의 미래는 어떻게 보는지요.
오세정 의원=이제는 제조업도 서비스업과 융합돼서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프린터를 만드는 사업을 하면 실제로는 토너로 돈을 버는 것과 같습니다. 미국 보잉사도 비행기를 팔지만 정비사업으로 돈을 많이 법니다.
김정호 교수=저도 기간 산업의 출구 전략이라기보다는 지속성장전략을 써야 한다는 점에 동감합니다. 소프트웨어, 인공지능 기술과 결합해서 상품성을 높이고 제조 단가를 낮추고는 방향이 옳다고 봅니다.
오세정 의원=아주 창의적인 벤처가 나와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관료가 ‘무엇을 해야 한다’는 식의 추진 방식은 유효하지 않습니다. 수요자의 관점에서 국가 연구개발(R&D) 시스템 자체를 창업 친화적으로 개혁해야 합니다.
사회=창의적 벤처 탄생을 위해선 질적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고요.
김정호 교수=사람들이 벤처기업을 차리는 일보다 서울 강남 재건축아파트에 투자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창업 성공에 대한 유인책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드웨어 업종은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지만, 소프트웨어는 창의 교육만으로 충분히 인재를 육성할 수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디지털 인프라 3각 편대가 서로 연결되는 시대입니다. 하드웨어와 디지털인프라는 강국이지만 소프트웨어가 뒤쳐지는 우리나라는 소프트웨어 벤처 육성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야 합니다.
전승우 교수=그렇다 해도 네거티브 규제방식 도입은 신중해야 합니다. 자칫 개인정보 등 국민 기본권과 공익적 가치의 훼손을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현재 우리나라처럼 재벌 중심의 경제 체제에서 섣불리 도입했다간 규제 완화 이득이 대기업에게만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김세연 의원=재벌 중심의 경제성장은 한계에 직면했고, 이제는 창의적인 기업가 정신을 북돋아야 할 때이죠. 기존 재벌이 장악하고 있는 기울어진 운동장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창업 지원 방식을 ‘융자’ 위주에서 ‘투자’ 방식으로 전환하는 게 필요합니다.
맞춤형 인재 배출 위한 교육 개선은
사회=4차 산업혁명 대비의 출발점을 교육혁명으로 꼽는 분들이 많습니다. 가장 먼저 고쳐야 할, 혹은 도입해야 할 교육 정책은 어떤 게 있을까요.
김정호 교수=암기 위주의 교육은 이제 무의미 합니다. 검색 포털 구글에 간단한 키워드만 넣으면 안 나오는 정보가 없을 정도니까요. 4차 산업혁명 시대엔 인공지능과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창조적인 작업을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주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시험이나 평가에 매몰되기보다는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시나리오를 만들고 이를 통한 문제 해결 프로젝트를 실시하는 식의 개편이 필요하지요.
전승우 교수=바른 인성과 창의력을 가진 인재를 육성하는 게 4차 산업혁명 시대 목표인데, 지금의 대입 중심 경쟁 체제에서는 어림도 없습니다. 수학능력시험 평가를 절대평가 중심으로 옮겨가고 국공립대 통합을 통해 대학 간 서열화를 줄이는 논의가 필요합니다.
민경배 교수=내신이나 수능을 절대평가하는 것만으로 한국의 대입 문제가 해소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교육 과정 혁신은 분명히 필요하지만 충분한 교사 인력 확보라든지, 새로운 교육 과정 개발 같은 게 병행돼야 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실현하긴 힘듭니다. 차기 정부 5년 동안 이를 전격적으로 시행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이를 위한 기반 조성 정도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정책이라 판단됩니다.
김세연 의원=학생 중심 선택교육과정을 운영해 개별 고교 교육과정을 다양화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고등학생 69%가 수포자라고 하지만, 이 학생들은 수학시간에 자면서도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죠. 체육을 잘 하는 학생들이 국ㆍ영ㆍ수 잘하는 학생들과 차별 받아서는 안 되지 않을까요?
오세정 의원=결국 교육 정책이 5년 단위 대통령제에서 너무 자주 변한다는 게 근본적 문제죠. 이러한 실정을 개선하기 위해선 교육 전담 기구 개혁이 필요합니다. 교육부를 폐지하고 국가교육위원회를 만들어 향후 10년간 교육개혁 합의를 도출하고, 교육정책 일관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사회=개인이든 사회든 미래로 나아가다 보면 2개의 절벽에 부딪히게 됩니다. 하나는 떨어질 공산이 커 피해야 할 절벽이고 다른 하나는 올라는 일 자체가 힘든 절벽이죠. 아마 4차 산업혁명은 이 두 가지 절벽을 한꺼번에 우리 앞에 가져다 놓지 않을까요. 이번 토론을 통해 국가의 기본적 과제와 방향에 대한 공감이 확인 됐고, 주요한 개념과 생각들도 제시 됐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의제와 제안을 어떻게 발전시킬까 거듭 고심하는 게 우리 각자의 과제일 것이라 봅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정준호 기자 joo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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