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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봉인사·수첩인사' 朴정부 참사가 준 교훈

입력
2017.03.1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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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27일 당시 윤창중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수석대변인이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테이프로 봉한 서류봉투를 뜯어 기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봉투 안에는 김용준 인수위원장 등 인수위원 첫 인선 내용이 담겨 있었다. 박근혜정부 '밀봉인사'의 시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2년 12월 27일 당시 윤창중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수석대변인이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테이프로 봉한 서류봉투를 뜯어 기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봉투 안에는 김용준 인수위원장 등 인수위원 첫 인선 내용이 담겨 있었다. 박근혜정부 '밀봉인사'의 시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2년 대선 승리 후 발표한 첫 인사는 비밀주의로 가득했던 그의 시대를 예고하는 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대선 8일 후인 12월 27일 윤창중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수석 대변인은 기자들 앞에서 보란 듯이 서류봉투에서 테이프를 떼 A4 용지 3장을 꺼냈다. 김용준 위원장 등 첫 인수위 인선안이었다. 윤 대변인은 “당선인에게서 직접 받은 명단을 봉투에 넣어 봉한 뒤 가져왔고 발표 전까지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밀봉 인사’란 딱지가 붙은 계기다. 이는 3명의 총리 후보자가 낙마하고 사의를 표한 총리가 다시 돌아와 ‘빽도 총리’라는 별명까지 낳게 한 박근혜 정부 인사 참사의 서막이었다.

병적인 인사 보안.. 비선 개입의 보호막

어느 정부에서나 인사는 보안 사안으로 다뤄지기 마련이다. 그 자체로 최고권력자의 정치 행위로 인사 과정의 잡음을 줄이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가히 병적이었다. 박근혜정부 초기 청와대에서 일했던 한 정치권 인사는 “강박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인사는 철통 보안을 강조했다”며 “청와대 내에선 인사는 ‘문고리 3인방’(정호성ㆍ안봉근ㆍ이재만)만 안다는 말이 돌았다”고 말했다.

문제는 박근혜 정부의 병적인 철통 보안이 공정한 인사 원칙을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주먹구구식 비선 개입을 숨기는 장치였다는 점이다. 여당 내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장차관 등 고위직 인사들이 이어지자 박 전 대통령이 평소 점 찍어 뒀던 ‘수첩 인사’라는 말이 돌았으나, 결과적으로 비선 최순실씨가 베일 뒤에서 인사에 개입한 것이 속속 드러났다.

밀실 인사로 부실 인사

이 같은 밀봉 인사는 검증 부실과 맞닿아 있다. 지명 5일 만에 자진 사퇴한 첫 국무총리 후보자인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의 사례가 잘 보여준다. 김 후보자가 낙마한 이유는 역대 총리나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의 단골 메뉴인 전관예우, 아들의 병역문제, 부동산 투기 논란 등이었다. 청와대가 미리 검증만 해봤어도 충분히 걸러낼 수 있는 사안들이다. 안대희ㆍ문창극 등 줄줄이 낙마한 총리 후보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직 청와대 행정관은 “검증을 하지 않았다기보다 대통령이 ‘이 사람이 어떠냐’고 지목하면 그 뜻에 맞춘 보고서를 올리기에 급급했던 것 같다”고 짐작했다.

밀실에서 정권 코드에 맞춘 인사가 이뤄지다 보니 폭넓은 인재 등용이란 인사 원칙은 언감생심이었다. 비선에 휘둘리고 검증은 부실해질 수 밖에 없었다. 김영삼 정부에서 청와대 공보수석과 환경부 장관을 지낸 윤여준 윤여준정치연구원장은 “대통령은 적재적소에 좋은 인재만 뽑아서 인사해도 그 역할의 60%는 한 셈인데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인사를 망사로 만들더니, 박 전 대통령은 참사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박근혜정부 내내 ‘총리 수난사’가 이어졌다. 2014년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밝힌 정홍원(맨 왼쪽) 국무총리에 이어 안대희(왼쪽 두번째)ㆍ문창극(왼쪽 세번째) 후보자가 지명됐지만 각각 전관예우, 역사관 논란 등으로 인사청문회장 문턱을 넘기도 전에 낙마했다. 그 뒤로 이완구 국무총리가 인사청문회를 통과했지만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돼 취임 63일 만에 사퇴했다. 한국일보ㆍ연합뉴스
박근혜정부 내내 ‘총리 수난사’가 이어졌다. 2014년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밝힌 정홍원(맨 왼쪽) 국무총리에 이어 안대희(왼쪽 두번째)ㆍ문창극(왼쪽 세번째) 후보자가 지명됐지만 각각 전관예우, 역사관 논란 등으로 인사청문회장 문턱을 넘기도 전에 낙마했다. 그 뒤로 이완구 국무총리가 인사청문회를 통과했지만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돼 취임 63일 만에 사퇴했다. 한국일보ㆍ연합뉴스

인사가 만사… 통합의 도구로

박 전 대통령 인사의 또 다른 문제는 ‘만기친람’이었다. 전직 청와대 행정관은 “각 부처의 실ㆍ국장 인사는 무조건 청와대에서, 주요 부처의 핵심 과장까지도 낙점해 내려 보냈다”며 “지금 보니 최순실의 사업과 관련된 과였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이 유진룡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앉혀 놓고 노태강 체육국장, 진재수 체육정책과장을 거명하며 “참 나쁜 사람이라더라”고 한 일은 유명하다. 이 전직 행정관은 “그런 일이 전 부처에 걸쳐서 있었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공직을 전리품으로, 인사를 논공행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에선 ‘호남 홀대’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최성주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와 강혜진 서울대 행정학 박사가 역대 정권에서 대통령이 임명한 차관급 이상 정무직 총 3,213명을 분석해 지난 달 발표한 논문 결과, 박근혜정부는 이승만정부에 이어 두 번째로 호남 대표성이 낮았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인사는 정치인데,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이를 간과한다”고 지적했다. 국민 반쪽만 보고 정치를 했던 박 전 대통령의 편가르기 리더십이 인사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인사는 그렇기에 협치의 시작이자 완성이 될 수 있다. 더구나 현재의 다당 구도라면 누가 대통령이 돼도 다른 정당과의 연대 없이는 법률 하나 통과시키기 어렵다. 인사를 전리품으로 삼지 말고 과감히 상대 진영에 양보하라는 제언이 나오는 이유다. 김 교수는 “인사의 풀(pool)을 자파에서 야권으로 과감하게 넓혀야 한다”며 “외연 확대도, 국민통합도 할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바로 인사”라고 강조했다.

차기 대선주자들이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싱크탱크인 ‘국민성장’ 참여 인원이 1,000명을 넘겼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벌써부터 “(대통령이 되면) 그 많은 사람을 어떻게 다 챙기느냐”는 비아냥 섞인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윤 원장은 “청와대에서 일한 경험에 비춰보면 국민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일이 인사였다”며 “요직에 사람 하나 잘 못 쓰면 민심이 확 떠나기도, 잘 쓰면 확 모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수첩 버리고 인재 DB를

이렇게 중요한 정부 인사가 민간 기업 보다 못한 수준으로 이뤄져 왔다는 비판을 부인하기 어렵다. 인사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한탄하는 적폐다. 삼성의 인사전문가 출신으로 박근혜정부의 초대 인사혁신처장을 맡았던 이근면 전 처장은 세 가지 질문을 던져보면 우리 정부의 인사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고 말한다. ①인사가 만사라는데, 그에 걸 맞는 시스템이 있는가? ②한 사람의 머릿속이 아닌 시스템의 보좌를 받는 인사인가? ③인사 시스템이 정권을 넘어 영속되고 있는가? 모두 부정적이라는 게 이 전 처장의 생각이다. 이 전 처장은 “공직은 국가의 자산이므로 국가의 자원을 사용해 인사를 해야 한다”며 “그러나 역대 대통령들은 대개 내 사람부터 챙기는 정치의 관행대로 인사를 해왔다”고 꼬집었다. 이명박정부 때의 고소영(고려대ㆍ소망교회ㆍ영남 출신), 강부자(강남 부동산 부자) 인사, 박근혜정부의 비선 인사 모두 결국은 “내 사람만 쓰겠다”는 데서 비롯됐다.

앞선 물음에 모두 긍정적인 답을 하려면? 국가의 인재와 공직 인사를 관리하는 독립기구가 이 전 처장이 생각하는 해법이다. 이 전 처장은 “준헌법기관 성격의 ‘국가인재원’을 만들어 장기 전략에 따른 인사 풀과 인재 데이터베이스(DB)를 운영하고, 정권이 바뀌더라도 인재원은 유지되도록 독립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인사의 공적 시스템은 정권마다 인사를 두고 반복해온 실세들 사이의 ‘권력 암투’도 예방할 수 있고 어이없는 낙마로 인한 인사 혼란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 이 전 처장은 “병도 수술보다 예방을 잘하는 게 중요하듯 인사도 사후 감사보다 사전 관리와 양성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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