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차이는 스포츠에도 존재한다. 황재균(30ㆍ샌프란시스코)이 집중 조명을 받아 화제가 된 배트 플립(bat flipㆍ배트를 던지는 것) 역시 KBO리그(한국프로야구)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고, 팬들은 타격 후 멋진 세리머니의 일종으로 판단해 환호한다.
하지만 똑같은 행위를 미국프로야구에서는 상대 투수를 기만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2015년 포스트시즌에서 배트 플립을 했던 호세 바티스타(토론토)는 이듬해 정규시즌에서 루그네드 오도어(텍사스)에게 주먹으로 가격을 당하기까지 했다. 해를 넘겨서까지 보복을 할 정도로 메이저리그에서는 철저히 금기시하는 행동이다.
그러나 한국발 ‘빠던(빠따 던지기의 줄임말)’ 열풍은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금기의 벽을 허물고 있다. *관련영상
http://www.mlb.com/images/2/7/8/219074278/correa_bat_flip_med_67q2fs89.gif
13일(이하 한국시간) 멕시코 할리스코주 과달라하라 에스타디오 차로스에서 열린 푸에르토리코와 이탈리아의 D조 예선 경기에서 푸에르토리코의 카를로스 코레아(휴스턴)는 4-3으로 앞선 3점홈런을 터트렸는데 타구를 한참 감상한 뒤 오른손으로 배트를 휙 던지고 천천히 베이스를 돌았다. 메이저리그였다면 논란을 낳았을 장면이지만, 누구도 코레아의 행동에 문제 삼지 않았다. 네덜란드 대표팀의 간판타자 블라디미르 발렌틴(야쿠르트)은 12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일본과 2라운드 경기에서 3회 동점 투런포를 날린 뒤 ‘빠던’으로도 모자라 일본 포수를 향해 손짓하며 무언가 ‘랩’ 같은 말을 쏟아냈다.
배트를 던지는 행위 외에도 상대를 배려하는 불문율이 WBC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같은 날 도미니카공화국은 미국 플로리다주 말린스 파크에서 열린 미국전에서 3-5로 끌려가던 8회말 넬슨 크루스(시애틀)의 역전 3점포로 경기를 뒤집었다. 그러자 도미니카공화국 선수들은 홈플레이트 앞으로 달려 나와 마치 끝내기 홈런이라도 친 것처럼 크루스를 기다렸다. 홈런을 허용한 미국의 불펜 투수 앤드루 밀러(클리블랜드)는 허탈하게 이 장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도미니카공화국은 13일 콜롬비아전에서도 연장 11회초 3-3에서 웰링턴 카스티요(볼티모어 오리올스)가 2타점 적시타를 치자 더그아웃이 아닌 그라운드에서 격한 세리머니를 하기도 했다.
눈길을 끄는 건 이 같은 행동 후에도 상대 팀의 보복성 빈볼은 없었다는 점이다. 메이저리그가 아닌 국가대항전이라는 무대의 성격 차이에서도 이유는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금기 문화’를 철저히 지키는 미국 팀마저도 용인했다는 건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부정적 의미를 두기보다 순간의 즐거움과 흥을 표출하는 것도 팬을 즐겁게 하고 야구의 일부분이라는 인식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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