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까지 내려오는 소매를 뭐라 할까요?” 이렇게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긴소매’라고 대답할 것이다. 질문을 바꿔 “팔꿈치 위나 팔꿈치까지 내려오는 짧은 소매를 뭐라 할까요?” 이렇게 물으면 ‘반소매’로 대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대답한 사람들도 실생활에서는 ‘긴소매 셔츠’보다 ‘긴팔 셔츠’를, ‘반소매 셔츠’보다 ‘반팔 셔츠’를 자연스럽게 쓸 것이다. 이처럼 의미를 먼저 제시하고 물을 때 실생활에서의 쓰임과 달리 대답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옷의 소매가 길고 짧은 것이라는 사실만 상기하면 ‘긴소매’와 ‘반소매’라 말하는 게 상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긴팔, 반팔’을 ‘긴소매, 반소매’와 같은 말로 풀이하고 있다. ‘긴팔, 반팔’이 일상화된 언어 현실을 인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긴팔’과 ‘반팔’처럼 상식에서 벗어난 표현이 일상화된 언어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규범적인 관점에 선다면 의미에 주의하지 않고 말하는 것이 이런 표현을 양산한 이유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단순히 의미에 주의하지 않은 결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긴소매, 반소매’의 ‘소매’를 일관되게 ‘팔’로 대체할 수 있다면, ‘소매’에서 ‘팔’을 혹은 ‘팔’에서 ‘소매’를 연상하는 것도 언어 작용의 원리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떤 것(팔)을 이용하여 그것과 상관성이 있는 다른 것(소매)를 나타내는 것은 비유의 한 방법이다. 비유의 원리를 감안한다면 언어 상식의 범위는 넓어질 수 있다. ‘주전자가 끓는다’에서는 ‘주전자 안의 물’을 ‘주전자’로, ‘손이 모자란다’에서는 ‘손으로 일을 하는 일꾼’을 ‘손’으로 표현했다. 상식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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