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혼 희생양 아랍ㆍ유대계 소녀들
불행한 삶으로 이혼율 70~80%
뉴욕, 뉴저지 등 개혁입법 박차
한국에서 만 18세 미만 청소년은 부모 동의가 있어도 결혼할 수 없다. 유엔아동권리협약(CRC)도 여성의 혼인가능연령을 남성과 같은 만 18세 이상으로 적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일부 소녀들이 부모나 전통사회 규범에 따라 강압에 의해 원치 않는 결혼을 하고 불행한 삶을 사는 걸 막기 위한 조치다,
미국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국제 흐름과 전혀 딴판이다. 전체 50개 주 가운데 40개 주가 16세 이상 청소년(대부분 여성 청소년)의 결혼을 허용한다. 24개주는 아예 연령 제한이 없다. 뉴욕 주에서는 부모와 판사가 허락하면 중2 나이인 14세 소녀도 결혼할 수 있다. 약탈 결혼의 위험성보다 개인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최근 뉴욕, 뉴저지, 미주리 등에서 혼인 가능연령을 만 18세 이상으로 끌어 올리려는 시도가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13일 뉴저지 주에서는 18세 미만 혼인은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금지하는 법안이 주 의회를 통과, 크리스 크리스티 주지사 서명만 기다리고 있다.
1929년 이후 14세 이상 청소년의 결혼을 줄곧 허용해온 뉴욕 주에서 개혁을 주도하는 인물은 앤드류 쿠오모 주지사다. 쿠오모 지사는 “많은 미국인이 (어린 소녀들을 약탈 결혼의 희생자로 만드는) 법률이 21세기에도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모른다”며 “반드시 바꾸겠다”고 말한다.
아랍ㆍ유대계 이민자 사회의 독특한 풍습으로 인정되던 ‘어린이 결혼’(Child Marriage)이 사회 문제로 떠오른 건 혼인사례가 예상보다 훨씬 많고 조혼한 청소년에게 심각한 피해를 준다는 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미국 공영방송 PBS에 따르면 관련 통계가 집계되는 38개주에서 최근 10년간 16만7,000명에 달하는 청소년이 결혼을 했다. 미 전역에서는 25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뉴욕타임스도 조혼 여성들에게서 심각한 경제적ㆍ사회적 피해가 발생한다고 보도했다. 18세 이하 조혼 여성의 이혼율은 70%, 16세 이하인 경우에는 10명 중 8명이 이혼한다. 또래 친구들이 중ㆍ고교에서 공부할 때 결혼하는 만큼 저학력자가 많고 빈곤율도 높다.
‘파티마 H’라는 가명을 쓴 여성(45)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15세이던 1987년 부모 강요로 쿠웨이트에서 온 21세 사촌과 얼굴도 보지 않은 채 결혼했다”고 말했다. 4년 만에 사촌과 이혼했고, 19세에 부모 주선으로 또다시 결혼했지만 결국 파경을 맞았다. 파티마는 “판사가 내 의사를 묻는 승인절차를 거쳤지만, 부모님 압박으로 ‘원치 않는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며 “나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고 울먹였다.
워싱턴=조철환 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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