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북-미가 한반도 문제 본질
미중북 3자 회담 이어 6자 가야”
틸러슨, 아무 대꾸 않고 中 장단만
中 “진정한 담판의 진전 이뤄야”
“美, 대북제재에 中 동참 이끌며
평화협정 카드 받는 협상” 관측
중국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틀로 ‘중미북 3자 회담’을 공개 주장하면서 북한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주고 받는 ‘빅딜’ 가능성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의 3자 회담 제안에 대한 미국의 공식 반응은 나오지 않았지만, 미 정부 일각에서 새로운 대북 접근법의 하나로 평화협정 카드를 검토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하지만 이는 북핵 문제 해결에 한국이 소외되는 시나리오여서 논란이 예상된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18일 베이징에서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과 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갖고 “한반도 문제의 본질은 북한과 미국의 문제”라며 “중미북 3국 회담에 이어 6자 회담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미국 북한은 과거 정전협정 체결 당사자여서 3자 회담은 결국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성격을 띤다.
왕 부장은 또 “진정한 담판의 진전을 이뤄야 한다”며 중국이 주장해온 북한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동시에 타결시키는 방안을 재차 시사했다. 이 같은 병행론은 중국이 지난해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줄곧 제기해온 바지만, 회담 형식에서 한국을 제외한 3자 회담을 주장한 것은 이례적이다. 우리 정부가 비핵화 우선을 내세우며 평화협정 체결에 결사 반대하기 때문에 아예 한국을 제쳐 놓겠다는 의도를 노골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틸러슨 장관은 “한반도 정세가 위험한 수준”이라고 지적했지만 그뿐이었다. 오히려 왕 부장이 대북제재와 함께 “북한과 대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촉구하자, 틸러슨 장관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며 중국의 장단에 맞추려는 기색도 보였다.
물론 이번 외교장관회담은 내달 초 미중 정상회담을 앞둔 의제조율의 자리인지라 서로 공격적인 언사는 자제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중국이 한국을 쏙 빼놓은 북미중 3국 회담이라는 카드를 꺼냈는데도, 불과 전날 한국을 들렀던 틸러슨 장관이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은 것은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이런 정황과 맞물려 왕 부장이 요구한 ‘담판’, 즉 비핵화-평화협정 병행추진에 대해 트럼프정부가 전향적으로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틸러슨 장관은 17일 방한 때 “대북 전략적 인내 정책은 끝났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대안은 내놓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미국이 북한을 선제타격 해 단번에 제압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북정책은 중국을 압박해 북한의 변화를 이끄는 길 외에 뾰족한 방법이 없는 상태다.
또 트럼프정부가 중국 역할론을 강조하는 만큼, 중국의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때문에 대북 제재를 강화하도록 중국의 동참을 이끌면서 중국이 요구하는 평화협정을 받아주는 빅딜 협상이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평화협정 카드는 오바마정부도 지난해 3월 “논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지만, 우리 정부가 반발하면서 “비핵화가 우선”이라고 돌아섰다. 정부 소식통은 19일 “현재로선 미국의 새로운 대북 접근으로 병행추진 방식이 유력하다”고 말했다.
다만 병행추진이 성과를 내려면 중국이 먼저 대북 압박수위를 높여 북한을 움직여야 한다. 트럼프정부가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반면 북한은 평화협정만 앞세우면서 비핵화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그로 인해 2015년 말 뉴욕채널을 통한 북미간 평화협정 논의가 무산됐고, 북한은 이듬해 1월 4차 핵실험을 감행해 상황을 악화시킨 전례가 있다.
이에 따라 미중이 병행론을 추진하더라도 미중, 북중, 북미간 치열한 물밑 외교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북미간에는 올해 초 1.5트랙(정부+민간대표) 대화를 추진하다 지난달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와 김정남 피살로 중단됐지만 여건이 무르익으면 언제든 가동할 수 있는 상태다. 조지프 디트라니 전 6자회담 차석대표는 15일 인터뷰에서 “한미 군사훈련이 끝나고 4월 말, 늦어도 5월 안에 북미 비공식대화가 재개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각에서는 우리 정부가 평화협정 체결에 반대만 하다가 이 같은 북핵 협상의 큰 흐름에서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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