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오바마는 버락 오바마(56)가 아니다. 부인인 미셸 오바마(53)다. 퇴임 이틀 전 실시된 갤럽의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58%의 호감도를 얻으며 빌 클린턴(57%)과 조지 W. 부시(40%) 전 대통령을 앞질렀다. 하지만 미셸은 남편을 능가했다. 백악관 입성 당시와 똑같은 68%의 호감도를 받으며 미 역사상 가장 사랑 받은 퍼스트레이디 중 한 명으로 기록됐다. 가는 곳마다 박수갈채를 받는 행복한 전임 대통령 부부가 된 데에는 아내의 공이 혁혁하다.
“미셸 오바마는 재클린 케네디 이후 가장 우아하고 균형감 있는 영부인이었다. 엘리너 루즈벨트 이후 중요한 국가적 과제에 가장 많이 헌신한 영부인이었고, 힐러리 클린턴 이후 가장 강인한 영부인이었다. 그녀는 진정한 국보다.” 미셸 오바마의 매력을 분석한 미국 언론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퇴임 6개월 전부터 온라인과 소셜 미디어에는 퍼스트레이디 향수병을 미리 앓는 이들의 글이 쏟아졌다. 미셸 오바마는 어떻게 이런 사랑과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걸까.
거부할 수 없는 미셸의 총체적 매력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은 시대에 따라 살림을 맡아 하는 안주인에서 남편을 내조하는 아내, 정치적 대변인, 정책 홍보가, 대통령 자문, 미디어 셀러브리티 등으로 진화해왔다. 퍼스트레이디 각자의 개성도 반영됐다. 힐러리 클린턴이 남편의 정치적 동지이자 자문 역할을 하며 야망 넘치는 정치가형으로 호불호가 엇갈렸다면, 온화하고 현명한 가정주부 이미지였던 로라 부시는 이라크 전쟁으로 낮은 지지율에 시달렸던 남편의 호전적 이미지를 보완하며 사랑을 받았다.
미셸 오바마는 퍼스트레이디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폭넓게 아우르며 모든 역할에서 빼어난 성취를 보여줬다. 백악관 안주인이자 두 딸의 엄마로서 전통적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그는 변호사와 보건행정 전문가의 경력을 살려 아동비만 퇴치와 건강한 식생활 확산 운동에 힘썼다. 흑인과 여성, 아동 인권을 위해 맹렬히 뛴 활동가인 동시에 역동적이면서도 기품 넘치는 정치 연설가이기도 했다. 세련된 스타일로 미국 브랜드를 널리 홍보하는 패션 아이콘이자 현대적 가족의 모범을 보여준 역할모델이었다. 다양한 역할의 변증법적 지양을 이룬 ‘총체성의 퍼스트레이디’였던 셈이다.
나를 보라… 약자층에 희망을 입증하다
2009년 백악관에 입성한 미셸 오바마는 취임 3일 만에 첫 외부행사로 라틴계 청소년들과 만나며 새로운 퍼스트레이디의 핵심 의제가 교육임을 널리 공표했다. ‘시카고 흑인 노동계층-프린스턴대-하버드대 로스쿨-백악관’으로 이어진 자기 서사는 미셸이 교육을 강조한 이유인 동시에 강력한 수단이었다. 이 자리에서 미셸은 “내가 여기 앉아 있기까지 마법은 없었다. 기적도 없었다”며 흑인 노동자의 딸로서 직면했던 삶의 장애와 자기의심의 경험을 공유했다. “사람들은 내게 ‘넌 할 수 없다’고 말했죠. 하지만 저는 그들이 틀렸다는 걸 입증했어요.”
미셸은 어린이와 청년, 여성들에게 희망의 멘토였다. 그에게 희망이란 교육을 통해 달성될 수 있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아메리칸 드림이다. 지난해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해 “희망은 필수 개념이다. 아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없다면 뭘 준단 말인가?”라고 반문했던 그는 성공한 후 남을 돕는 것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했다. “기회의 문을 통과한 후에 그 문을 쾅 닫아버려선 안 된다. 다시 되돌아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같은 기회를 줄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두어야 한다.” 얻었으면 돌려줘야 한다. 이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흑인, 여성의 인권 지키는 흑인 여성
“내가 여러분 나이에 누가 날 좋아하고 귀엽게 생각하는지 걱정했다면, 오늘날 미국 대통령과 결혼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미셸의 말은 소녀들에게 자기 삶의 주인이 되라는 정언명령이었다. 퍼스트레이디로 있는 내내 흑인과 여성, 아동의 인권 향상을 위해 싸운 미셸은 가진 자의 시혜로서가 아니라, 자기 정체성을 당당히 드러냄으로써 더 큰 울림을 얻었다. “나는 매일 아침 노예들이 지은 집에서 일어난다. 내 두 딸이, 아름답고 지적인 젊은 흑인 여성들이 백악관 뜰에서 개들과 노는 걸 본다”는 지난해 민주당 전당대회 연설은 “사슬에 묶여 미국으로 온 조상”의 후손으로서 미국 사회의 잠재력을 충격적이면서도 감동적으로 환기시켰다. 주류 사회에 편입된 소수자들이 흔히 자기정체성을 외면하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지난해 주간지 버라이어티와 가진 인터뷰에서 미셸은 대중문화가 강요하는 인종과 젠더의 획일성을 비판했다. “나는 수많은 소녀들을 만났다. 눈물이 가득 차서 내게로 온 어린 소녀들은 내게 ‘롤모델이 돼줘서 고마워요. 나는 TV에서 교육수준이 높은 흑인 여성을 본 적이 없어요. 당신은 내가 누구인지를 입증해준 퍼스트레이디예요’라고 말한다.” 프린스턴대의 넬 어빈 페인터 미국사 명예교수는 “미셸 오바마는 공적 영역의 흑인여성에게 새로운 가치를 부여했다”며 “퍼스트레이디로서 보여준 우아함과 기품”을 높이 평가했다.
공적 삶에도 포기 안 한 건강한 가족모델
48세에 당선된 버락 오바마는 케네디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로 젊은 대통령이었다. 결혼 6년 후에야 첫 아이를 낳아 대통령 임기가 두 딸의 집중 육아기와 상당 부분 겹친다. 다양한 공적 활동에 매진했지만, 미셸 오마바 제1의 사명은 두 딸을 건강하고 평범한 아이들로 키워내는 것이었다. 검정색 방탄 차량에 경호원들과 함께 딸들을 태워 워싱턴의 초등학교로 등교시킨 첫날 “도대체 이 애기들한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생각했다고. “이 모든 광적인 상황에서 아이들이 정상적인 삶을 살게 하는 것이 내 첫 번째 임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그는 임기 초반에는 주2일, 후반에는 3일만 퍼스트레이디로서 공적 역할을 수행했고 나머지는 엄마의 삶을 살았다.
각각 11세와 8세에 백악관 생활을 시작한 말리아와 사샤는 보통사람이 되기 위해 엄격한 룰을 지켜야 했다. 미셸은 백악관 직원들에게 “아이들이 자기 잠자리는 스스로 정리하게 하라”고 한계를 설정했다. 현실의 가혹함과 노동의 가치를 가르치기 위해 지난해 8월 둘째 사샤를 매일 오전 7시부터 해산물 레스토랑 ‘낸시스’에서 아르바이트 하게 한 것도 국민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남편도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백악관에 있는 한 오후 6시 반이면 식당으로 와야 했다. 정치인이나 기부자들과의 저녁식사 약속은 주중 두 번만 가능했다. 가족식사 때문에 국정 회의와 정치적 한담이 끊기고 만다고 참모들이 불평했을 정도다.
부부가 종종 즐긴 야간 데이트는 오래 사랑하고 깊이 신뢰하는 부부의 모습을 널리 각인시켰다. 미셸은 건강한 결혼생활의 비결로 “부부간 문제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꼽으며 “웃음은 부부를 하나로 결합시키는 가장 좋은 형식”이라고 말했다.
유쾌한 셀럽이자 지적인 정치 연설가
미셸의 대중적 소통능력은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자산이다. 소통에 관한 한 동물적 본능을 지녔다고 평가 받는 그의 능력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빛을 발했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쏟아낸 막말에 가장 우아하고도 강력하게 맞선 사람이 미셸 오바마였다. “그들이 저급하게 갈 때, 우리는 품위있게 갑시다(When they go low, we go high)”란 말은 전 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트럼프 대통령도 미셸에게는 험한 말을 하지 못했다.
삶에서 보고 배우고 느낀 것들을 메시지화하는 능력이 탁월하고, 그 과정에서 자기 개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낼 줄 알았던 미셸 오바마. 그는 자신의 힘과 영향력을 제대로 쓸 줄 아는 퍼스트레이디였다. 백악관 고별연설에서 그는 처음 백악관에 들어왔을 때처럼 젊은이들을 향해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남겼다. “젊은이들이여. 두려워 마세요. 집중하세요. 결심하세요. 희망을 가지세요. 힘을 가지세요. 두려움이 아니라 희망을 갖고 모범을 보이세요. 제가 여러분과 함께 할 거고 남은 생 동안 여러분을 돕기 위해 일하고 응원할 거라는 걸 명심하세요.”
미셸 오바마에 대한 미국인들의 사랑은 본인의 단호한 거부의사에도 차기 대통령 후보로 기어이 그를 호출할 태세다. 구글에 ‘미셸 오바마 차기(Michelle Obama Next)’를 치면 총 4개의 자동검색문구가 나오는데 그 중 하나가 ‘2020년 대통령’이다. 세계는 미셸 오바마를 통해 대통령 배우자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중요한 자리인지 새삼 깨달았다. 대선을 채 두 달도 남겨두지 않은 현재, 한국의 미셸 오바마는 누가 될까. 한국인들도 5년 후 이별을 슬퍼하는 대통령 배우자를 가질 수 있을까.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