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공개된 이후 세계 최고(最古)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는 ‘증도가자’에 대한 최종 진위여부가 내달 13일 결정된다. 문화재청은 최근 일반인 공개검증을 거친 증도가자에 대해 최종 조사 보고서를 작성한 뒤 동산문화재지정 심의를 연다고 밝혔다. 동산문화재 위원 8명이 전원 참석하는 이번 심의를 통해 서울 다보성고미술관이 국가문화재지정을 신청한 증도가자 추정 금속활자 101점에 대한 지정ㆍ취소ㆍ보류 중 하나의 결론이 날 예정이다.
증도가자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연대를 추정할 수 없다는 점, 개인소장품인 활자들의 유입경로가 불투명하다는 점으로 진위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심의를 앞두고 증도가자를 둘러싼 쟁점을 짚어봤다.
증도가자는 최고(最古) 금속활자인가
증도가자는 13세기 고려시대에 펴낸 불교서적 ‘남명천화상송증도가’를 찍는 데 사용됐다는 주장이 제기된 금속활자다. 김종춘 서울 다보성고미술관 대표와 남권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가 2010년 증도가자 실물을 공개한 후 2011년 국가문화재지정 신청을 냈다. 현존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1377)보다 138년 앞선 것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남명천화상송증도가’의 금속활자본은 현재 전해지지 않고 1239년 이를 목판에 새겨 찍어낸 복각본만 존재해 진위여부를 가리기가 더 어려웠다.
2011년 한국지질자원연구원과 일본 연구소 등에서 활자에 묻은 먹에 대해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을 실시한 결과 770~1280년 시기의 먹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2014년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가 경북대 산학협력단에 용역 의뢰해 측정한 탄소연대측정에서도 1033~1155년이라는 결과가 도출됐다. 이 연구에서는 청주박물관이 보관 중인 활자 7점, 국립박물관 1점을 더해 총 109점에 대한 시기를 확인했다. 당시 연구에 따르면 서체와 크기 등을 종합해 볼 때 109점 중 62점이증도가자, 46점은 13세기 고려활자로 확인됐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먹의 제작시기가 12세기라고 해서 활자까지 당시에 제작됐다고 볼 수는 없다는 반론이 제기됐다.
아직까지 논란이 지속되는 이유는?
학계 의견이 좁혀지지 않자 문화재청은 2015년 ‘고려금속활자 지정조사단’을 꾸려 증도가자 101점에 대한 집중 분석에 들어갔다. 지난해 12월 말에는 지금까지 연구된 증도가자 101점에 대한 모든 자료가 문화재청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서 분석한 결과와 주조ㆍ조판 실험, 취득경위 관계자료 등을 모두 공개하고 15일간 전문가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했다.
이 때 공개된 국과수의 ‘고려금속활자 서체비교 연구 결과 보고서’는 금속활자인 증도가자와 목판본인 ‘증도가’의 서체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윤곽선 분포 수학적 계산 기법, 딥러닝 기법, 글자 중첩 비교법 등 3가지 방법으로 교차 검증한 결과 두 글자의 유사도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조선시대 금속활자 ‘임진자’(1772)와 임진자로 찍은 책 복각본의 유사도를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 101점의 증도가자 활자에 대한 조판 검증에서도 ‘증도가’를 찍어냈다고 보기엔 활자 크기가 너무 커 조판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러나 이런 조사 방법에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도 적지 않다. 임진자는 금속활자 기술이 훨씬 발달한 18세기에 제작됐고 활자와 번각본의 보존상태도 최상인데 비해 증도가자는 금속활자 초기 시대에 만들어져 이를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인쇄본의 크기는 목판 수축으로 인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반면 국과수 연구보고서와 함께 공개된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보고서는 증도가자가 국내에서 오래 전 제작된 청동재질 활자라고 확인했다. 미량원소 분석 등 총 12가지 방법으로 증도가자를 분석한 결과 한 몸체로 주조된 구리ㆍ주석ㆍ납 합금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한 몸체라는 것은 2015년 10월 3차원 컴퓨터 단층촬영 결과, 일부 활자에서 이중 주조 흔적이 발견됐다며 위조 가능성을 제기했던 국과수의 이전 분석결과를 뒤집는 내용이다. 활자에 포함된 납 성분의 동위원소 분석결과 한반도 전라 충청 강원도 일부 지역에 해당하는 옥천대ㆍ영남육괴의 납 동위원소와 비슷한 분포를 보였다
최종 심의를 앞두고도 증도가자에 대한 학계 논란은 여전히 팽팽하다. 황정하 청주고인쇄박물관 학예실장은 “우리 박물관도 7점을 소장하고 있지만 학계의 이의제기가 많아 진위여부에 의구심이 들었다”며 “납 동위원소 분석에 있어 ‘옥천대’를 한반도만으로 단정지을 수 없다는 점과 먹 탄소연대 측정은 기간이 짧은 몇 십년을 단위로 말하기엔 적합하지 않은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김성수(한국사지학회장) 청주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금속 성분, 인쇄된 흔적과 먹의 잔재는 과학적으로 고려 시대 것이라는 결과가 이미 나왔다. 그 결과를 신뢰해야 한다”며 “12세기 먹을 일부러 구해 가짜 활자에 바르기엔 고려 시대의 먹이 남아 있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 “서체나 문체 비교는 학술적인 연구가 축적이 안 돼 있으면 잘못 판단할 수 있다”며 “학계에서 활자 연구에 집중해 온 학자들과 문화재 연구를 전문으로 하지 않는 국과수의 연구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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