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21일. 최고 24도의 대구 더위는 가을을 막아 섰다. 대구경찰청 광역과학수사2팀 소속 황보익수 경사가 수성구 한 아파트에 도착했다. 79㎡의 1503호, 겉으로 보기엔 여느 평범한 가정집과 다를 바 없었다. 50대 여성이 10대, 20대 남매와 오순도순 살던 집이었다.
사과박스 2배 정도 크기의 종이상자가 황보 경사 앞에 놓였다. 역한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들어와 코와 얼굴 전체를 자극했다. 상자에는 살점 하나 남지 않은 백골이 비닐에 밀봉된 채 들어 있었다. “다 썩어 없어졌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백골은 겨울 옷을 입고 있었다. 겨울, 봄, 여름 계절이 세 번 지나도록, 상자 안에서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살이 썩어가면서 흘러내린 체액이 시신을 밀봉한 비닐과 시신이 걸친 옷 군데군데 굳어 있었다.
백골 시신은 황보 경사가 도착하기 직전, 집 베란다 붙박이장에서 발견됐다. 붙박이장은 투명테이프로 칭칭 다섯 겹 밀봉돼 있었다. 누구일까, 왜 죽었을까, 살인 혹은 자살. 황보 경사를 포함, 현장에 나와 있던 경찰들의 머리 속에 온갖 추측과 추리가 떠올랐지만 일단은 다들 침묵했다.
하루 전 20일. 경북 고령군 성산면 오곡리 고령대교와 달성보 사이 낙동강변에서 시신 한 구가 발견됐다. 오후 3시20분쯤 한 낚시꾼이 나무조각과 풀에 뒤엉킨 채, 강변 5m 앞까지 밀려온 변사체를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 퉁퉁 불어난 시체에는 다행히 신분증과 휴대폰이 있었다. 통화기록 조회, 지문 분석을 통해 신원은 금세 파악할 수 있었다. 수성구 아파트 1503호 주인, 남매의 엄마 주부 조모(52)씨였다.
조씨 사인은 익사였다. 외상의 흔적은 없었다. 경북 고령경찰서는 조씨가 스스로 강에 몸을 던졌으리라 추정하고, 유가족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어느 누구와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경찰이 다음날 곧장 수성구의 그 아파트로 갈 수밖에 없던 이유다. 백골이 발견되리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백골 시신은 가벼웠다. 황보 경사는 검시용 ‘클린시트(Clean Sheet)’ 위에 종이상자를 올린 뒤, 시신을 꺼냈다. 그는 “백골로 발견됐다는 건 이미 사망으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는 얘기”라며 “검시 자체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혹시 하나라도 놓치는 부분이 있으면 억울한 죽음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부담에 짓눌렸다.
조각난 뼛조각을 하나씩 맞춰나갔다. 골반 뼈가 둥근 형태로 봐서, 여성이라고 짐작했다. 두개골이 닳은 정도는 20대임을 추정할 수 있는 주요 단서였다. 피부가 한 점 남아 있지 않아 지문으로 신원 확인은 불가능했지만, 경찰은 백골을 조씨 딸(26)로 결론 내렸다. “2015년 겨울부터 딸이 보이지 않았다”는 주변인들 진술, 시신에 입혀진 겨울 옷 등을 감안하면 다른 변수의 가능성은 희박했다.
사망 원인을 밝히는 일은 쉽지 않았다. 스스로 목을 매거나, 타인에 의해 목 졸임을 당했을 가능성을 따져보는 게 우선. 하지만 ‘설골(舌骨)’이 보이지 않았다. 턱과 목 사이에 위치한 지름 2㎜, 길이 5㎝ 정도의 뼛조각은 목이 졸리는 등 외부 힘에 쉽게 부러진다. 10분 넘게 비닐을 뒤지고, 또 뒤진 끝에 두 조각으로 분리된 설골이 발견됐다. 누군가 목을 눌러 훼손됐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었다. 경찰들은 “어머니 조씨가 딸을 목 졸라 죽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리하기 시작했다. 현장 분위기는 급격히 무거워졌다.
경찰은 또 다른 흔적 찾기에 나섰다. 멸균 처리된 면봉으로 집안 구석구석을 뒤졌다. 붙박이장에 붙여진 테이프 끝부분에서 지문이 발견됐다. 전체 지문이 아닌 ‘쪽지문’이었지만, 중요한 단서였다. 현장에 있었던 한 경찰은 “현장에 남겨진 지문은 시간이 지날수록 보존 가능성이 떨어지지만 접착력이 강한 테이프에 찍혀 다행이었다”고 했다. 지문의 융선(隆線·곡선)은 조씨 것과 상당 부분 일치했다. “어머니 조씨가 딸의 시체를 붙박이장에 은닉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다만 딸의 사인을 정확히 밝히는 일은 난제였다. 검시를 했지만 뼈에 손상이 갈 정도의 외상은 없었다. 뼈에 남은 혈액 성분을 채취해 독극물 검사를 했지만 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의 치명적인 약물은 드러나지 않았다. 딸은 지병도 없었다. 무엇보다 죽음의 주요 단서로 여겼던 부러진 설골은 절단면을 꼼꼼히 살핀 결과, 뼈가 건조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마디가 분리된 것으로 확인됐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딸이 신변을 비관해 자살했거나, 불의의 사고로 숨졌거나, 흔적이 남지 않는 방법으로 살해됐을 가능성이 거론됐다. 확실한 건 딸의 죽음과 그 시신을 엄마 조씨가 치밀하게 숨겼다는 사실이다.
남은 숙제가 있었다. “조씨 아들은 과연 어디로 간 걸까.” 아파트 식탁 위에는 아들 류모(11)군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메모가 놓여있었다. ‘유서. 내가 죽거든 십자수, 색종이 접기 책을 종이 접기를 좋아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세요.’ 경찰은 대구경북 지역 보육시설을 모두 확인하며 실종된 아들을 찾아 나섰다. 600명이 넘는 인력에 헬기와 보트, 수색견까지 대대적으로 동원했지만 흔적은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결정적인 단서는 폐쇄회로(CC)TV 분석으로 확보됐다. 엄마 조씨와 아들이 9월 15일 오후 6시35분쯤 대구 북구 팔달교 부근까지 이동하는 모습이 CCTV에 찍혔다. 팔달교를 기점으로 낙동강 하류 방향으로 수색해나간 경찰 및 소방구조대는, 13일이 지난 9월 28일 대구 달성군 사문진교 부근에서 아들 시신을 찾았다. 시신을 처음 발견한 경북 고령소방서 소속 김춘구 구조대장은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10m 거리에서부터 풍겨오는 악취에 시신의 존재를 느꼈을 정도였다“고 했다. 비에 쓸려 온 생활쓰레기와 폐목재들이 모인 지름 10m 가량의 부유물 덩어리, 그 한가운데 아들의 시신은 집에서 쓰고 나온 모자를 그대로 쓴 채 바로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중에서 부패가 진행돼 구더기가 들끓었고 훼손된 부위에는 뼈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시신을 수습하는 내내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물이 탁해 수중에서 시야가 거의 확보되지 않는 상황. 물 속에서 부패한 시신은 신체조직들이 부풀어 조금만 부주의해도 지문 등이 유실되기 쉬웠다. 보트를 타고 현장에 도착한 과학수사요원 일부는 보트 위에, 수중과학수사 지원을 나온 정동희 경위 등 2명은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부유물을 조금씩 걷어내며 류군에게 접근한 후, 유실되기 쉬운 손을 손 싸개로 먼저 싸서 보호했다. 그물망 형태로 제작된 특수 시체낭을 시신 아래에서부터 둘러싼 후 천천히 끌어올렸다. 부패성 체액과 부유물이 뒤범벅된 주변을 손으로 헤집으며 조심스레 찾아봤지만 추가적인 유실물은 없었다. 정 경위는 “다행히 시신은 별다른 훼손 없이 강변으로 인양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검시는 강변에 마련된 텐트에서 진행됐다. 시신에서는 아무런 외상도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조씨가 완력을 동원해 강제로 아들을 살해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했다. CCTV 분석에서도 아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어머니 곁을 함께 걸을 뿐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범죄심리분석가(프로파일러) 분석도 일치했다. “조씨는 한 달 발신통화가 3, 4건에 불과했고 여동생 외에 연락할 사람이 없을 정도로 사회적으로 단절된 삶을 살면서 아들에게 비정상적으로 집착한 것으로 보인다”며 “아들 또한 학교에 나가지 않아 어머니가 유일한 의지대상이었기 때문에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경찰은 조씨가 아들을 설득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조씨 시신이 발견된 지 3개월이 지난해 12월 23일, 경찰은 숨진 조씨를 딸의 사체은닉과 아들에 대한 승낙살인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두 달 간 사건 검토를 한 뒤, 올 2월 24일 공소권 없음으로 ‘대구 일가족 변사 사건’의 마침표를 찍었다.
당시 수사를 담당한 김영규 광역과학수사2팀장은 “백골로 발견된 딸의 사인은 여전히 미궁 속에 남았지만,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망자나 유가족에게 조금의 위안이라도 될 수 있길 빈다”고 말했다.
대구=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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