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학기 1만2698명 졸업 미뤄
67개 대학 1과목 이상 수강 의무화
1학점 수업 70만원 내고 듣기도
강제 등록금 막는 법개정안 발의
서울의 사립대인 K대학은 취업이 안 돼 졸업을 연기하려면 무조건 1과목 이상 수업을 들어야 한다.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모두 이수했더라도, 최소 1학점 이상 수업을 듣고 등록금도 내야 한다. 최소 학점인 1~3학점을 들을 경우 일반 재학생이 내는 등록금의 6분의 1을 내야 한다. 단과대별로 등록금이 다르지만, 가장 싼 단과대를 기준으로 해도 1학점 짜리 수업을 들으려면 등록금이 무려 69만6,012원(올해 1학기 기준)이다. 올해 1학기 이 학교에서는 총 283명이 졸업유예를 신청, K대는 이 학생들로부터 2억5,626만원의 등록금을 받았다.
올해 1학기에 취업을 하지 못해 대학 졸업을 미룬 학생들이 대학에 낸 등록금이 25억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 받은 ‘졸업유예 현황조사’(올해 2월 기준) 자료에 따르면, 졸업유예 제도를 운영하는 전국 총 103개 대학의 올해 1학기 졸업유예 학생들이 등록금으로 낸 돈은 25억397만원에 달했다. 졸업을 유예한 학생은 총 1만2,698명이었다.
졸업유예제도란 학점 영어성적 등 졸업요건을 충족한 학생이 학교의 승인을 받아 졸업을 1~4학기 연기하는 제도로, 졸업생이 재학생보다 취업에 불리하다는 우려 때문에 미취업 학생들이 졸업시기를 늦추기 위해 이용한다. 문제는 일부 대학이 졸업 학점을 모두 이수한 학생들에게도 졸업을 미루려면 반드시 수업을 추가로 듣고, 이에 상응하는 등록금을 내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 졸업유예제도를 운영하는 학교 103개 중 수강을 의무화한 학교는 67개에 이른다. 1~3학점은 등록금의 6분의 1, 4~6학점은 3분의 1, 10학점 이상인 경우 등록금 전액을 내는 식이다. 올해 1학기 대학들이 졸업유예자들로부터 받은 등록금 25억원은 대부분 수강 의무화로 인한 수입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대학생들이 취업이 안돼 졸업유예자가 너무 많아지면서 대학들이 이들의 도서관 등 시설 이용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고, 많은 학교들이 학칙을 개정해 수강을 의무화하는 등 비용을 부담시켰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불필요한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다 등록금까지 내야 해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지난달 서울의 사립대를 졸업한 A(24)씨는 “우리 학교는 이번 학기에 등록금을 최소 56만원 내야 졸업을 유예할 수 있다고 해 바로 졸업했다”며 “무료로 졸업을 연기할 수 있는 학교도 있는데, 우리 학교는 돈을 내도록 해 학생들의 불만이 많다”고 말했다.
정부 역시 제도 개선에 공감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청년고용대책 보완방안'에 졸업 유예 시 등록금 부담 최소를 포함시켰다. 앞서 안민석 의원은 지난해 10월 대학이 졸업유예자에게 수강을 의무화하거나 수업료를 받을 수 없도록 한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불필요한 학점 이수 없이 학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졸업유예제도의 취지”라며 “안 의원의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길 기대하며, 법 개정이 불발될 경우 ‘대학등록금에 관한 규칙’ 개정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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