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개반을 합반하거나
폐강 기준 바꿔 강의 줄여
강의 부담은 정년 보장 안 되는
‘비정년 트랙’ 교수에게 집중
정부 대학평가 눈치에
학사운영 ‘뒤죽박죽’
지방 사립 A대학은 올해부터 4학년 전공 강의에서 분반을 없앴다. 지난해에는 세 반으로 나눠 3명의 교수가 한 반씩 맡았지만 올해는 교수 1명만 강의하고 있다. 이 대학의 한 교수는 22일 “지난해 10여명 학생을 두고 하던 강의를 올해는 30여명을 데리고 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토론 중심 수업으로 진행했지만 수강생이 3배로 늘어 토론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뭐라도 좀 더 알려줘야 하는데 혼자 줄줄 말하다 강의를 끝내려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수강생 숫자는 그대로인데 합반 수업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그는 “재단과 총장이 학교 운영비를 한 푼이라도 줄여보겠다고 마른 수건 짜듯 한다”고 말했다. 그가 비정상적이라고 지적한 대학 운영 실태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A대는 이번 학기 폐강 기준이 되는 수강 신청 학생 수를 10명에서 20명으로 높였다. 지난해까지는 15명이 듣는 강의도 많았지만 올해부터는 자동 폐강이다. 이 교수가 속한 과만 해도 이번 학기 2개 강의가 폐강됐다.
폐강하고 합반하고… ‘수업 질보다 돈’
대학들이 인정사정 없이 강의 줄이기 대작전을 실행 중이다. 학생들은 좀 더 다양한 수업을 바라지만 대학들은 이를 외면한 채 하나라도 더 없애려 기를 쓴다.
다른 지방 사립대인 B대는 지난해부터 교양국어 같은, 학생들이 꼭 들어야 하는 ‘필수 교양’ 과목을 ‘일반 교양’으로 바꾸고 있다. 필수 과목은 폐강이 쉽지 않지만 일반 과목으로 돌린 다음 수강 신청 학생이 적으면 폐강한다. 이 대학 한 교수는 “일반 교양 과목을 새로 개설하는 것도 꺼려진다. 학교에서 새 강의 만드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개설되는 강의 수가 줄면 교수 1명이 책임져야 할 강의 부담이 줄어들 것 같지만 도리어 늘고 있다. 강의 수를 축소하면서 시간강사도 대폭 줄였기 때문이다. 1월 교육부는 시간강사에게 교원 신분을 부여하는 ‘고등교육법 일부 개정안(시간강사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에서 법이 통과될 경우 시간강사들에게 4대 보험을 보장해야 하고 강의료도 인상될 가능성이 높아 대학들은 2,3년 전부터 강사 수를 줄이고 있는 형편이다.
전임 교수의 수업이 늘어나는 것은 강의 수준과 책임감이 높아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어 학생들로선 환영할 일이지만, 적정 수준을 넘는다는 게 문제다. 지방 사립 C대의 한 교수는 “국ㆍ공립대 교수들은 아직까지 주 당 9시간 강의를 맡는 게 일반적이지만 사립대 교수들은 주 당 15시간은 기본이고 심지어 20시간을 책임지는 경우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비정년 교수로 시간강사 대체 ‘꼼수’
이 같은 강의 부담은 특히 정년이 보장되지 않은 ‘비정년 트랙’ 교수에게 집중된다. 비정년 트랙은 ‘산학협력 전담’ ‘강의 전담’이라는 이름으로 2000년대 초반부터 생기기 시작했는데, 1~3년 계약으로 임용되고 승진이 제한적이며 급여에서도 정년 트랙 교수들과 차이가 난다. 사실상 시간강사와 신분상 큰 차이가 없는, ‘교수 사회의 비정규직’이다. 올해 초 비정년 트랙 교수로 C대에 임용된 한 교수는 “그나마 나는 2년 계약 후 재계약이 가능하지만, 서울 사립대들은 1년 단위 계약을 요구하거나 2년 계약 종료 후 재계약은 없다고 못 박는 경우도 있다. 일부 대학은 2, 3명의 비정년 트랙 교수들이 연구실을 나눠 쓰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무늬만 교수’라는 것이다. 재계약이 보장되지 않으니, 강의를 더 맡아달라는 대학 측 요구를 거부할 수 없고, 연봉 차별에 대해서도 항의하기가 어렵다.
최근 대학들은 시간강사를 줄이면서 비정년 트랙 교원을 크게 늘리고 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전국 78개 4년제 사립대의 2011년 전임 교원의 12%(2,179명)를 차지했던 비정년 트랙 교원 비율은 2015년 20.6%(4,379명)까지 증가했다. 이 기간 동안 신규로 임용된 교수 3,167명 중 2,200명(69.5%)이 비정년 트랙이다. 대학이 10명의 교수를 새로 뽑을 때 7명은 ‘비정규직’으로 뽑은 것이다.
시간강사를 비정년 트랙 교수로 대체하는 이런 현상은 인건비 부담을 높이지 않으면서 전임 교원율은 높여 교육부의 대학 구조개혁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얻으려는 대학의 편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대학 평가가 좋아야 정부의 지원금을 받고 학생 정원을 유지할 수 있다. 비정년 트랙 교수의 급여는 같은 직급의 정년 트랙 교수의 급여와 비교해 평균 40~60% 수준에 그친다. C대의 경우 같은 과에서 정년 트랙으로 임용된 지 3년 된 D 교수는 4,000만원대 연봉을 받는 반면, 지난해 비정년 트랙으로 임용된 E 교수는 이보다 1,000만원 이상 덜 받는다. 이번 학기에 강의하는 학점 수는 각각 15학점, 14학점으로 1학점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대학 입장에서는 시간강사를 쓰는 것과 비슷한 인건비를 지출하면서 법적으로 전임 교원으로 분류되는 비정년 트랙 교수를 확보할 수 있다. 수도권 사립 F대에서 기획처장을 맡고 있는 한 교수는 “정부의 대학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지 않기 위해 시간강사를 줄이고 전임 교원 중 가장 비용이 덜 드는 비정년 트랙을 늘릴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정부 지원금에 목매 학사 뒤죽박죽
학교 측은 정부가 정원 축소와 등록금 인상 제한으로 과도하게 대학의 돈줄을 조인다는 불만을 토로한다. F대 기획처장은 “대학 운영비의 70%가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에서 충당한다. 그런데 정부의 지침에 따라 몇 년 째 등록금을 못 올리다 보니 정부의 재정지원금이 매우 중요해졌다. 교육부의 대학 구조개혁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으면 입학 정원을 강제로 줄여야 하기 때문에 등록금 수입은 더 줄어들게 된다”고 말했다.
이렇다보니 교육부의 대학평가 기준에 무조건 맞추느라 학사 운영이 뒤죽박죽되는 일도 흔하다. 지방 사립 G대는 지난해 하반기 준비도 없이 갑작스레 교양대학을 만들었다. 교양 교육을 내실화하라는 교육부 지침에 따른 것이지만 실제 모습은 내실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 대학의 한 교수는 “학생들이 들어야 할 교양 학점을 늘리고 교양 강의 수도 늘렸다”며 “그러나 준비 기간은 턱없이 부족하고, 주로 시간강사들이 하던 강의를 전임 교원에게 맡기니 기존 전공 강의와 비슷한 내용을 제목만 살짝 바꾸는 식이 됐다. 헌 강의를 재탕한 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에 모든 탓을 돌리기에는 대학들의 교육 의무 방기 수준이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크다. 대학들이 별도로 수강료를 내야 하는 계절학기를 듣도록 유도하고, 학교가 자체 개발한 외국어 시험 통과를 필수로 지정하는 것도 교비 수입을 늘리려는 의도라고 의심하는 학생들이 많다. 수도권 사립대 2학년 H씨는 “필수 과목인 교양 영어를 이번 학기에 들어야 하는데 원하는 시간대에 수강 신청이 불가능했다. 그랬더니 학교에서 이번 학기가 아니면 3학년 이후 계절학기를 들어야 한다고 해서 당황스러웠다. 정규 학기에 영어 강의가 얼마나 많은데 돈을 내고 계절학기를 들어야 하느냐고 따졌지만 어쩔 수 없다는 답만 들었다”고 했다. 최근 대학들이 경쟁적으로 운영하는 평생대학원도 지역커뮤니티에 기여하기보다는 돈벌이 목적이 더 크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사립대는 평생대학원 운영만으로 연 100억원 넘는 수입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어느 틈엔가 대학은 학문과 교육보다 돈만 따지는 곳이 됐다. 학생들을 위한 질 좋은 교육 서비스 제공, 교수들을 위한 교육ㆍ연구 환경 조성은 뒷전이다. 재정 운영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우리 대학의 미래는 갈수록 어둡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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