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대학 148곳 중 80곳
2010~2014년 적립금 늘어나
홍보비 등 소모성 경비는 펑펑
실험실습ㆍ도서구입비는 줄여
대학은 정말 가난한 것일까. “교수와 강의실, 실험실 등을 늘려 제대로 배우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재정이 부족하다”는 학교 측의 답변은 늘 의문이다. 어마어마한 적립금 누적액을 살펴보면 이런 해명을 납득하기는 어렵다. 대학 적립금이란 특정 목적을 위해 별도로 쌓아두는 돈인데, 기본적인 교육 서비스조차 제공되지 않는 상황에서 매년 적립금을 늘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대학교육연구소(이하 대교연)가 전국 148개 사립대학과 145개 법인의 적립금 현황을 살펴 본 결과, 2010년 7조6,677억원이었던 적립금 총액은 2014년 8조1,872억원으로 5,196억원이 증가했다. 조사 대상 대학 중 절반이 넘는 80개 대학(54.1%)에서 적립금이 늘었다. 홍익대의 증가액이 1,406억원(5,538억원→6,943억원)으로 첫 손 꼽혔다. 뒤이어 성균관대(1,124억원) 고려대(871억원) 이화여대(751억원) 연세대(698억원) 건국대(599억원) 수원대(515억원) 등 7개 대학이 500억원 넘게 늘었다. 2014년 기준 적립금 총액(법인 포함)은 이화여대(7,858억원)가 가장 많았고, 홍익대, 연세대(6,551억원), 수원대(4,554억원), 고려대(3,627억원)가 그 다음이었다.
천문학적 적립금을 쌓아두고서도 대학들은 좀처럼 이 돈을 풀지 않는다. 적립금 규모가 큰 대학들은 ‘제2캠퍼스 건립에 대비한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우면서 당장 급한 교육 환경 개선에는 투자를 외면하고 있다. 임은희 대교연 연구원은 “학교나 법인은 적립금을 절대 써서는 안 되는 돈이라 생각한다”며 “학생들 등록금과 정부의 재정지원금으로만 버티느라 재정 상태가 어렵다고 아우성을 치면서도 정작 교육ㆍ연구 여건 개선에는 소홀한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없는 살림에 돈을 엉뚱한 곳에 쓰는 것도 학내 구성원들의 분통을 터뜨리게 한다. 대교연이 2011~2015년 147개 사립대 지출내역을 분석한 결과 교육ㆍ연구와 직접 관련 없는 홍보비ㆍ행사비ㆍ업무추진비ㆍ회의비 등 소모성 경비에 매년 2,100억원씩 쓴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연세대, 고려대 등 39개 학교는 소모성 경비가 늘어났다. 반면 기계기구매입비ㆍ실험실습비ㆍ도서구입비 등 교육여건 지출 비용은 줄였다.
등록금과 정부 지원금 등으로 구성되는 교비 회계는 지출 범위가 교육ㆍ연구로 제한돼 있는데도 규정을 어겨가며 엉뚱한 곳에 교비를 쓰는 대학들도 있다. 서울 사립 A대는 학생들이 낸 등록금 16억원을 쌈짓돈 쓰듯 하다가 2015년 감사원 감사에 적발됐다. 이 대학은 교직원이 내야 할 저축성 보험료(약 14억원), 규정에도 없는 교직원 격려금(약 7,600만원), 법인 회계에서 내야 할 소송 비용(약 2,500만원)을 교비에서 빼내 썼다. 장학기금처럼 구체적 쓰임새를 정해 적립하기로 결정한 임의기금 6,400여 만원을 ‘선물구입비’로, 학교건물(교육용시설) 일부를 임대하면서 생긴 취ㆍ등록세와 재산세 8,600여 만원도 역시 교비에서 마련했다.
한 국립대 명예교수는 “대학들이 갈수록 돈벌이에만 혈안이 되고 있다. 안정적인 학교 운영을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돈을 얼마나 더 많이 벌어 오느냐가 학교 운영을 잘 했느냐 여부를 가르는 판단 기준이 되고 있다. 앞뒤가 바뀐 것이다. 적립금 쌓아놓고 이자 놀이를 한다, 정부 지원금에 혈안이 돼 학교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아도 싸다”고 쓴 소리를 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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