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교실을 뒤집어 일으켜 세운 교사들이 있다. 수업에 흥미를 잃고 자거나 딴짓하던 아이들이 펄펄 살아났다. 수업은 즐거운 놀이가 됐다. 성적도 쑥쑥 올랐다. 놀라운 변화였다. 수업 방식만 바꿨을 뿐인데 가르치지 않아도 시키지 않아도 서로 도와 스스로 공부하는 재미에 빠진 아이들을 보면서 교사들은 신이 났다. 2013년 2학기 부산의 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진행된 실험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이듬해 3월 그 내용을 담은 KBS 다큐멘터리 ‘거꾸로교실의 마법’이 방영됐다. 반응은 뜨거웠다. 나도 저런 교육을 하고 싶다는 교사들이 합류해 경험과 고민을 나누며 마법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첫 실험 이후 4년, 더 큰 도전이 닻을 올렸다. 교실을 넘어 이제 학교다. 기존 교육의 틀을 넘어 ‘세상을 바꾸는 마법학교’를 꿈꾸는 거꾸로캠퍼스가 3월 문을 열었다. 경기 양평의 경기영어마을에서 교사 8명과 학생 12명이 항해를 시작했다. 교사들은 재직하던 학교에 사표를 내고 이곳에 왔다.
거꾸로교실은 교사의 일방적 강의를 없애고 학생 활동 중심으로 바꾼 수업이다. 공부할 내용을 짧은 동영상 등 자료로 미리 보고 와서 친구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며 서로 가르쳐주고 배운다. 질문이 쏟아지는 살아있는 교실이다. 2009년 미국의 한 시골학교에서 두 교사가 시작한 수업 개선 방식에서 비롯됐지만, 한국에서는 교육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더 큰 목표로 출발했다. 교육을 바꿔 아이들의 미래를 살리자는 열망으로 실험을 거듭해 왔다. 거꾸로캠퍼스는 그 결정체다. 거꾸로캠퍼스를 운영하는 미래교실네트워크의 정찬필 사무총장은 “한국 공교육에 대한 기존 관념을 다 무너뜨리는 거대한 실험”이라고 소개한다. 미래교실네트워크는 거꾸로교실 교사들의 교육 혁신 단체이고, 정 총장은 이 실험을 처음 제안하고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주역이다. KBS PD를 그만두고 교육혁명에 인생을 걸었다.
거꾸로캠퍼스는 무학년제다. 학년별로 정해진 커리큘럼 대신 각자의 호기심과 필요에 따라 배우고 성장한다. 고교 과정 중심이지만 얼마든지 더 멀리, 더 깊이 파고들 수 있다. 성적 따지지 않고 면접으로 학생을 뽑았다. 정규 학교로 치면 중3부터 고3, 대학 1학년까지 5개 학년이 모였다. 이승빈군은 올해 서울의 4년제 대학에 전액 장학생으로 합격했지만, 대학을 버리고 아직 인가도 나지 않은 거꾸로캠퍼스로 왔다.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고교 시절 경험한 거꾸로교실의 마법이 그에게 확신을 줬다. 공부 계획을 설명하며 부모님을 설득했다. 다행히 “네가 행복한 배움을 하라”는 게 부모님의 평소 지론이라 그리 어렵진 않았다. 중3과 고등학생 어린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는데 괜찮겠냐고 묻자 “이과 출신이라 문과 지식이 부족하다. 좀 더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과 과목도 시험 준비가 아닌 진짜 배움으로 새롭게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첫 달인 3월 한 달 간 신입생들은 무엇을 배울지 정하고 어떻게 공부할지 계획을 짰다. 일종의 워밍업이다. 고교 교과서를 펼쳐놓고 과목별 단원별 학습 내용과 전체 윤곽을 파악한 다음 주제를 정해 연관 과목과 단원을 찾아 연결하는 교과 매핑 활동이다. 별을 주제로 택한 아이들은 별의 탄생과 죽음을 과학과 철학에 연결했고, 급식을 택한 팀은 법과 정치 쪽에서 접근하기로 했다. 의상 팀은 패션의 역사와 사회, 문화, 경제를 하나로 엮었고, 맥주에 대한 공부는 역사, 지리, 과학의 세 축으로 가닥을 잡았다. 분절된 교과목을 넘어 이처럼 입체적이고 통합적인 공부가 거꾸로방식이다. 급식 팀의 경우 급식 관련법을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 보다가 민법ㆍ사법ㆍ사회법의 법 체계뿐 아니라 초중고 학교급식과 유치원 급식에 적용되는 법이 달라 불합리한 점까지 알아냈다. 그렇게 배움의 세계를 탐험하는 아이들의 모험은 어디까지 뻗어갈까. 거꾸로캠퍼스 슬로건대로 ‘놀다 보니 슈퍼맨, 웃다 보니 어벤저스’가 될지도 모르겠다.
교실 풍경이 여느 학교와는 크게 다르다. 아이들은 와글와글 토론을 하면서 다른 친구들과 소통하느라 이리저리 움직인다. 모여 앉은 책상 위에는 교과서와 나란히 관련 도서,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노트북이 놓여 있다. 수시로 인터넷을 검색해 자료를 찾는다. 아무도 통제하지 않지만 게임이나 딴짓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 각자 편한 차림 편한 자세로 막대사탕을 빨아 먹으며 토론하고 공부하느라 정신이 팔린 아이들 옆에서 교사들은 관찰하고 협의하며 더 나은 교육을 고민한다. 자기 과목 수업이 아니어도 다 들어와 함께한다. 학생이 설명하는 영어 수업을 국어 선생님이 듣기도 한다.
하루 시간표는 80분씩 4교시, 오전 교과 수업과 오후 프로젝트 수업으로 짜여 있다. 모든 수업은 거꾸로교실로 진행한다. 아이들이 원하거나 필요하면 시간이 더 길어지거나 과목 순서를 바꾸기도 한다. 오후의 ‘사상 최대 수업 프로젝트’(약칭 ‘사최수프’)는 교과서에서 배운 것을 활용해 세상의 진짜 문제를 해결하는 활동이다. 맛보기 삼아 3월에 진행한 현미경 성능 개선 프로젝트에서 아이들은 접을 수 있는 폴더식 현미경, 두피나 피부 상태 진단용 비닐테이프 현미경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궁리 중이다. 그 과정에서 현미경의 광학적 원리는 물론이고 현미경의 역사, 생물학, 활용법까지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다.
이곳에서 교사는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라 배우고 싶다는 동기를 불러일으키고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촉진자’다. 수학 교사 권선구씨는 “지식은 교사가 가르치는 게 아니라 학생이 찾아가는 것”이라며 “교사가 많이 개입하고 많이 가르칠수록 학생은 수동적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의 적응 속도가 놀랍도록 빠르다고 전했다. 너무 힘들다고 울기도 하던 아이들이 달라지는 데 3주도 걸리지 않았다. “영어와 수학 기초가 부족한 아이들이 스스로 방과후수업을 조직해 잘 하는 친구에게 배우기 시작했더라구요.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한다더니 자정을 넘기도록 공부를 해요. 오후 4시30분에 수업 마치고도 기숙사로 돌아가지 않고 교실에 남아 삼삼오오 공부 이야기를 하고요.”
나는 누구인가. 배움이란 무엇인가. 학교란 무엇인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아이들이 파고든 질문들이다. 수학을 포기한 아이들이 미분을 주제로 3시간 동안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교사가 그만하고 쉬자고 해도 계속하게 해달라고 했다. 한 번 불이 붙으니 거침없이 달린다. “전에는 수업 시간에 잤는데, 여기 오니 너무 재미 있어서 시간이 엄청 빨리 가는 것 같다” “공부에 흥미가 없었는데 잘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우울증이 없어지고 말도 잘 하게 됐다”고 아이들은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찬필 사무총장은 “거꾸로캠퍼스는 생산라인 컨베이어 벨트 같은 교육을 버리고 배움의 본질로 돌아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하면서 “밑바닥부터 다시 정의하고 접근할 것”이라고 말했다. 격변하는 세상에서 내 삶의 주인공으로 미래를 살아갈 힘을 키우는 진짜 배움, 그리하여 세상을 바꾸는 마법학교가 목표다. 그동안 1만명이 넘는 교사들이 거꾸로교실의 기적을 경험했다. 그 노하우와 에너지를 몽땅 쏟아 붓는 실험의 용광로, 거꾸로캠퍼스가 희망을 향해 출발했다. 사회 혁신 후원기관인 기부펀드 C-프로그램이 운영을 지원한다.
글ㆍ사진 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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