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경의 반려배려]
일식집에 가면 ‘메로’구이 메뉴가 있다. 부드러운 흰색 속살에 달콤한 양념이 더해져 입맛을 돋운다. 반찬으로 나오는 경우엔 머리 부위가 나와 살이 많지는 않다. 따로 주문하려고 가격을 보면 다른 생선구이보다 비싸 망설여진다. 워낙 비싼 생선이다 보니 지난해 가을에는 메로 가격 5분의 1에 불과한 기름치를 메로로 속여 팔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메로가 비싼 이유는 그만큼 귀한 생선이기 때문이다. 남극 심해에 사는 메로(파타고니아 이빨고기)는 멸종위기종으로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CCAMLR)가 어획량, 조업지역을 정해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대략 9∼20㎏ 나가지만 최대 2.3m 길이에 200㎏까지 자라기도 하며 수명은 50년쯤 된다고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먹던 메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얼마 전 방문한 인천 송도에 있는 극지연구소에서 우리나라가 메로에 미치는 영향을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오는 11월 남극 장보고 기지에서는 처음으로 펭귄을 비롯한 남극 야생 생물 서식 연구를 시작할 예정인데, 여기에는 우리나라가 메로를 남획하는 점이 일조했다. 우리 어선들은 지난 2011년부터 남극해에서 메로를 불법으로 조업해 2013년 미국으로부터 예비불법어업국으로 지정됐는데 해양 보전과 연구에 기여하고, 불법조업을 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노력으로 2015년 2월에서야 해제됐다. 즉 남극 생태계 보전을 위한 연구는 선택이 아닌 의무였던 것이다.
우리가 왜 파타고니아 이빨고기를 메로라고 부르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언뜻 들으면 일본어 같기도 하다. 실제 일본에서도 메로로 통용된다. 하지만 메로는 일본어가 아니라 스페인어로 지중해에 주로 사는 농어과 식용어를 뜻한다. 주 어획국인 칠레와 아르헨티나에서는 메를루짜 니그라(Merulza Negra·검은 대구)라고 불린다.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일본판에 따르면 일본에선 2003년 이전 긴무츠(銀ムツ· 은 게르치)라는 이름으로 유통됐는데 다른 게르치과와 혼동된다는 이유로 사용하지 못하게 했고 대신 남미 국가의 영향을 받아 메로라고 부르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이재봉 박사는 우리나라도 어선들이 거래하는 남미 국가들이 메를루짜, 메로라고 부르는 데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우리 어선들이 불법어업국이라는 오명을 쓸 만큼 메로를 많이 잡는 것에 비해 우리 밥상에 자주 오르지 않는 이유도 있었다. 우리나라가 잡은 메로의 대부분을 미국이나 일본에 수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메로의 몸통을 주로 스테이크로 먹고 있다고 한다. 고급 식당에 갔을 때 메로 머리구이만 나오는 게 그제야 이해가 됐다.
일본과 미국에서 주로 먹는 메로 소비량의 80%는 불법 어획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조사가 있다. 우리나라는 주 소비국은 아니지만 수익을 위해 불법어업국이라는 낙인이 찍히면서도 두 나라의 소비를 가능하게 해 메로의 멸종을 앞당기고 있다. 미국에선 소비자들의 구매가 해양생태계를 보존할 수 있다며 메로 불매운동도 벌인 바 있다. 이제는 우리도 메로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잡혔는지 제대로 알고 먹어야 한다. 또 외화벌이 품종이라며 메로를 마구잡이로 잡아 수출할 게 아니라 오히려 보존하는 데 힘을 써야 할 때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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