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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얘들아, 꼭 정규직이 되거라

입력
2017.04.0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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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로 숨진 김초원 단원고 기간제 교사가 안치된 안산 분향소를 찾은 아버지 김성욱씨가 2015년 7월 영정사진을 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세월호 사고로 숨진 김초원 단원고 기간제 교사가 안치된 안산 분향소를 찾은 아버지 김성욱씨가 2015년 7월 영정사진을 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세월호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즈음, 윤지영 변호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며 먹먹해졌다. 그는 3년 전 단원고 수학여행단 인솔교사로 세월호에 탑승했다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한 11명 중 순직을 인정받지 못한 김초원ㆍ이지혜 2명 교사의 소송을 맡고 있다. 미수습자 2명을 제외하고 순직이 인정되지 않은 건 이들뿐이다. 기간제 교사란 이유에서다.

윤 변호사는 이렇게 적었다. ‘정부는 기간제 교사는 민간 근로자이고, 정규 교원보다 적은 시간 근무하며, 대체 인력에 불과하기 때문에 순직이 어렵다는 말만 반복한다. (중략) 교사로서의 소명에 정규직, 비정규직이 나뉠 수 없다. 오로지 정부만 나눈다.’

기간제 교사는 정규 교사의 값싼 대체재다. 단원고가 자체 산정한 필요 교원 수는 80명이었으나 경기도교육청은 67명만 발령을 냈다고 한다. 나머지 13명은 기간제 교사로 채우라는 얘기였다. 이렇게 전국 초ㆍ중ㆍ고교나 유치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기간제 교사는 4만6,000여명, 전체 교원의 10%에 달한다. 기간제 교사 없이는 교육 현장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는 구조다.

그들은 쓸모가 다하면 가차없이 버려진다. 방학 기간 월급을 주지 않으려고 계약기간에서 방학을 제외하는 ‘쪼개기 계약’을 하고, 휴직 중이던 정규 교사가 예정보다 빨리 복직을 하면 계약기간과 상관없이 자리를 내준다. 정규 교사가 업무 부담 등을 이유로 담임을 기피하면 그 자리를 떠맡아야 하는 것 역시 기간제 교사들이다. 재계약이라는 간절함 앞에선 그들이 제 목소리를 내는 건 언감생심. 심지어 그들이 ‘을’이란 걸 모를 리 없는 일부 학생들조차 기간제 교사들을 얕보고 무시한다. 두 교사들도 이런 설움을 겪었을 것이다.

윤 변호사가 적었듯, 그럼에도 그들은 교사로서의 소명을 놓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탈출이 쉬웠던 5층 숙소에 있다가 아이들의 절규가 터져 나오는 4층으로 내려가 마지막 순간까지 객실 곳곳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의 탈출을 도왔다. 정작 그들 자신은 구명조끼조차 입지 못한 상태였다. 그들은 학교에서도 담임과 행정업무까지 맡으며 정규 교원 그 이상의 업무를 했다고 한다.

정부는 민간 근로자라는 이유로 그들의 순직을 인정하지 못하겠다지만, 교육공무원법을 보면 기간제 교사도 교육공무원으로 볼 여지가 충분히 있다. 법 제2조는 ‘교육기관에 근무하는 교원 및 조교’를 교육공무원으로 정의하고 있고, 제32조는 “각급학교 임용권자는 교원 보충이 불가피한 경우 등에 교원자격증을 가진 사람을 교원으로 임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더구나 정부는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에 대해선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국가권익위원회는 기간제 교사에 대해 교육공무원법 제32조 등에 따라 교원에 해당하므로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에 해당한다고 유권해석을 했다. “교원으로서의 권리는 인정할 수 없지만, 책임은 져야 한다”는 참 잔인한 법 해석이다.

만약 법적으로 도저히 교육공무원 신분을 인정할 방법이 없다면, 다른 방식으로라도 그들의 죽음에 더 큰 예우를 해주는 게 옳다. 그게 정부가 할 일이고, 국가의 도리다. 민간인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헌신적으로 자신의 목숨을 바쳐가며 학생들을 구하려 했다면 정규 교사의 희생보다 가치가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비록 학교 현장에서 대접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스스로는 교사로서 제자들을 지켜내야 한다는 신념으로 침몰하는 뱃속을 뛰어다녔을 테다. 보수적인 법 해석만을 들이밀며 순직 심사대상에조차 올리지 않은 정부, 두 교사의 순직 인정 촉구 결의안을 1년 가까이 뭉개고 있는 국회의원들은 교육현장의 학생들에게 이런 가르침을 주고 있는지 모른다. ‘얘들아, 사회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죽음에 대해서조차 똑같이 예우하지 않는단다. 사회는 그렇게 매몰차단다. 그러니 너희들은 꼭 정규직이 되거라.’

이영태 정책사회부장 yt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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