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의 주한미군기지 일대에 90건가량의 기름 유출 사고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녹색연합 등 환경ㆍ시민단체들이 미 국방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그동안 정부가 통보받은 유출사고 건수(5건)는 물론이고 언론, 국회를 통해 알려진 기름 유출사고 건수(13건)보다 훨씬 많다. 주한미군이 사고 대부분을 은폐했고, 우리 정부는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기름 유출사고 내용을 보면 더욱 충격적이다. 주한미군 기준으로 ‘최악의 사고’에 해당하는 1,000갤런 이상의 사고가 7건이나 발생했다. 미군은 그 중 2건만 한국 정부에 알리고 나머지 5건은 숨겼다. 또 ‘심각한 사고’(110갤런 이상~1,000갤런 미만)에 해당하는 유출 사고도 25건이나 됐다. 피해 규모가 워낙 커서 사실상 용산 미군기지 전체가 오염된 상태라는 게 시민단체의 주장이다.
용산 미군기지 기름 유출로 인한 주변 토지와 지하수 오염은 심각한 상태라는 조사 결과도 나온 바 있다. 지난해 서울시 검사결과, 녹사평 인근 지하수에서는 1군 발암물질인 벤젠과 중추신경계 손상을 초래하는 석유계 총탄화수소가 허용치의 500배를 초과해 검출됐다. 비난 여론이 일자 환경부는 지난해 세 차례에 걸쳐 미군기지 내부 조사를 했으나 조사 결과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조사 결과 공개를 요청하는 소송을 내 1,2심에서 “용산 미군기지 내 지하수 오염 결과를 공개하라”는 결정이 나왔는 데도 요지부동이다. “자료를 공개할 경우 부정적 여론이 형성될 우려가 있다”는 주한미군의 요청을 받아들인 때문이다. 이번 시민단체 발표도 정부가 자료 공개를 거부하자 미국 정보자유법(FOIA)에 따라 미 국방부에 해당 자료를 요청해 받은 것이다. 국민의 안전보다 주한미군의 처지를 더 중시하고 있으니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주한미군의 사고 은폐가 가능했던 것은 느슨한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 환경조항’탓이다. 현행 조항은 오염사고 시 한국 당국에 대한 통보가 의무화되지 않았다. 이번 기회에 한미 간 협의를 통해 불합리한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 현재 한미 간에는 올해 말까지 경기도 평택으로 이전하는 용산 미군기지 환경오염을 누가 책임질지 여부가 쟁점으로 남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1972년 채택한 환경정책 지침에 따라 국제사회에서는 오염자 부담 원칙이 통용되고 있다. 마땅히 주한미군 측이 정화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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