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 SE 지분 팔고 은퇴 준비하는 페르디난트 피에히 전 의장
폭스바겐 그룹에 미칠 영향 두고 의견 분분
폭스바겐 그룹의 제왕이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지난 3일(현지 시각) 독일 현지 언론은 폭스바겐 그룹의 페르디난트 피에히 감독이사회 전 의장이 본인 소유의 포르쉐 SE 지분 14.7%를 매각한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금액으로만 14억 유로에 달한다. 포르쉐 SE는 폭스바겐 그룹의 의결권 52.2%를 쥐고 있는 지주사다.
업계에선 피에히의 이런 행보를 은퇴의 절차로 보고 있다. 지분 대부분을 매각한다는 건 경영 간섭에서 완전히 물러나겠다는 뜻이다.
페르디난트 피에히는 폭스바겐 그룹의 창업자인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의 딸 루이제 포르쉐와 남편 안톤 피에히의 아들이다. 그의 체제에 폭스바겐을 비롯해 아우디, 스코다, 포르쉐, 벤틀리, 람보르기니, 세아트, MAN, 스카니아 등의 브랜드가 세계적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속앓이도 있다. 폭스바겐 그룹은 경직된 조직 문화로 유명하다. 독일 회사의 권력은 감독이사회가 쥐고 있다. 감독이사회는 주주들을 대변하고 이사진을 임명 혹은 해고할 수 있다. 독일 공동결정법에 따라 노사 양측이 모두 참여하는데, 직원 측의 대부분은 상명하복의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금속노조로 구성된다.
또한 ‘폭스바겐에선 회장이 쳐다보는 곳에서 풀이 솟아난다’라는 우스갯말이 있을 정도로 최고 의사 결정자에게 권력이 집중돼 있다. 그리고 감독이사회의 회장단 중에는 니더작센 주지사도 포함돼 있다. 니더작센 주는 폭스바겐 AG 보통주의 20%를 보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폭스바겐은 주 정부의 동의 없이 그 어떤 사업장도 옮기거나 폐쇄할 수 없는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다.
경직된 조직 문화는 공포와 위협을 만들고 급기야 불법적이고 무리한 시도를 유발한다. 독일의 자동차 전문가 페르디난트 두덴회퍼가 지은 ‘누가 미래의 자동차를 지배할 것인가’라는 책에는 밥 루츠 GM 전 부회장이 1990년대 피에히와 나눴던 대화가 실려있다. 루츠는 당시 신형 골프의 완벽한 틈새 규격을 놓고 칭송했다. 그러자 피에히는 모든 책임자에게 6주의 시간을 주고 달성을 못 할 시엔 모두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엄포를 놓았다는 뒷이야기를 들려줬다고 한다. 피에히의 후임자인 마르틴 빈터콘이 취임하고 나서도 매주 토요일마다 품질 회의가 열렸고, 경영진은 정당화하기에 급급했다. 배출가스 조작 스캔들이 왜 일어났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일각에선 이번 피에히의 은퇴설을 두고 폭스바겐의 장밋빛 미래를 점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번 계기로 빈터콘도 어찌하지 못한 상명하복의 군대식 조직문화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약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포르쉐-피에히 가문의 경영권 다툼으로 등한시했던 미래 전략 사업에도 더욱 속도를 낼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하지만 피에히의 퇴장이 폭스바겐 그룹의 미래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론 보이지 않는다. 피에히는 단지 자신의 포르쉐 SE 지분을 다른 포르쉐-피에히 가족에게 팔았을 뿐이다. 포르쉐 SE 측은 피에히가 누구에게 얼마만큼 매각했는지 밝히지 않았지만, 피에히가 가족을 통해 우회적으로 경영권에 간섭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흥국증권 박상원 이사(자동차 칼럼니스트 겸 애널리스트) 역시 “어느 정도의 분위기 환기는 있겠지만 오랫동안 굳어온 폭스바겐의 폐단이 없어질 정도는 아닐 것”이라며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행히 빈터콘을 이은 마티아스 뮐러 CEO는 새로운 폭스바겐의 역사를 쓰기 위해 노력 중이다. 뮐러는 ‘전략 2025’라는 이름 아래 전기차와 자율주행, 모빌리티 서비스 등 미래의 수익원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조직의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각 브랜드의 책임을 강화하는 등 조직을 매트릭스 구조로 개선해 효율을 꾀하고 있다. ‘만성질환’ 치료에 나선 것이다.
이를 두고 한 업계 관계자는 “폭스바겐이 디젤 게이트 이후 이제서야 전문 경영인 체제로 간다. 산업이 빠르게 성장해야 할 때는 강한 오너십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내연기관의 성장 폭이 좁아지고 전기차와 자율주행의 시대로 가야 할 땐 독단적인 판단보다 전문가들의 의견 취합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조두현 기자 joe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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