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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서울모터쇼, ‘레이싱모델쇼’ 오명은 벗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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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서울모터쇼, ‘레이싱모델쇼’ 오명은 벗었지만…

입력
2017.04.10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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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콘셉트로 볼거리ㆍ즐길거리 많아

월드 프리미어 없어도 ‘한국 모터쇼’ 어필

‘귀빈석’ 등 눈쌀… 경직된 사회의 단면

2017 서울모터쇼에서 한 어린이가 네이버랩스의 3차원 실내지도 맵핑 로봇 M1을 보고 있다. 사진 조두현 기자
2017 서울모터쇼에서 한 어린이가 네이버랩스의 3차원 실내지도 맵핑 로봇 M1을 보고 있다. 사진 조두현 기자

지난 9일 일산 킨텍스에서 펼쳐졌던 2017 서울모터쇼가 막을 내렸다. 열흘간 61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갔다. 27개 자동차 회사가 300여 대의 차를 전시했고, 194개 자동차 관련 업체와 기관이 참여했다. ‘미래를 그리다, 현재를 즐기다’의 주제에 걸맞게 4차 산업혁명과 자율주행, 친환경차에 관한 진지한 논의도 이뤄졌다. 개인적으로 서울모터쇼는 10년 넘게 빼놓지 않고 관람하고 있는데, 이번엔 킨텍스에서 나오는 발걸음이 가장 가벼웠다.

이번 모터쇼에서 가장 눈길이 갔던 차는 세계 최초로 공개된 쌍용 G4 렉스턴이었다. 곧 출시를 앞둔 G4 렉스턴은 쌍용자동차가 올해 야심 차게 미는 대형 SUV다. 쌍용자동차가 없었더라면 2017 서울모터쇼는 자칫 월드 프리미어 없는 모터쇼가 될 뻔했다. 물론 현대자동차가 그랜저 IG 하이브리드 모델에 ‘세계 최초 공개’ 타이틀을 붙여 내놓긴 했다. 하지만 이미 우리 눈에 익숙하고 파워트레인만 바뀐 신차를 굳이 모터쇼에 와서 감탄할 관람객은 드물다. 2017 서울모터쇼에선 월드 프리미어 2종, 아시아 프리미어 18종, 코리아 프리미어 22종 등 총 42종의 신차가 공개됐다.

‘월드 프리미어’는 모터쇼의 꽃이다. 서울모터쇼가 열리기 2주 전 스위스 제네바 팔렉스포에서 제네바 모터쇼가 열렸다. 전시 차 대수는 서울모터쇼의 3배가 넘었고 월드 프리미어 모델만 120여 종이었다. 현대ㆍ기아자동차도 i30 왜건과 니로 PHEV 등 4종의 월드 프리미어 모델을 공개했다. 모터쇼를 가는 목적은 최초로 공개된 차를 보러 가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격년으로 열리는 서울모터쇼는 개최할 때마다 볼만한 차가 없다는 뭇매를 맞는다. 마땅한 월드 프리미어 모델이 없는 자동차 회사들이 아시아 프리미어, 코리아 프리미어를 대신 내놓는다. 하지만 이미 인터넷을 통해 충분히 맛본 차는 그저 ‘실제로 봤다’ 이상의 감흥을 주지 못한다. 자동차 회사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허전한 관람객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애썼다. 불과 수년 전까지 서울모터쇼가 ‘레이싱 모델쇼’라는 오명을 썼던 이유다.

기아자동차 부스의 키즈존에선 어린이 교통안전 체험 교육과 쏘울 미니카 주행을 할 수 있는 코너가 마련됐다
기아자동차 부스의 키즈존에선 어린이 교통안전 체험 교육과 쏘울 미니카 주행을 할 수 있는 코너가 마련됐다

뾰족한 수를 찾아야 했다. 서울모터쇼조직위원회는 태생적인 한계를 인정하고 국내 자동차 산업과 문화에 맞는 모터쇼를 고민했다. 키워드는 ‘가족’이다. 제2전시관 7홀을 ‘자동차 생활 문화관’으로 정하고 자동차 역사와 교통안전, 게임 등을 체험할 수 있도록 꾸몄다. 지난 1일 서울모터쇼조직위원회가 배포한 보도자료의 제목은 ‘가족과 함께 봄나들이 오세요’였다. 부스를 차린 자동차 회사들도 이에 동의했다. 혼다는 국내 최장수 키즈 버라이어티쇼인 ‘막이래쇼’를 진행했고, 르노삼성자동차는 소형 전기차 트위지에 아이들을 태우고 부스를 한 바퀴 돌았다. 이 밖에도 부스 대부분에는 아이와 함께 모터쇼를 찾은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이 적어도 하나씩은 있었다.

모터쇼는 그 나라 자동차 산업과 문화를 보여주는 척도다. 왜 국내 모터쇼에는 람보르기니나 페라리 같은 슈퍼카를 볼 수 없는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현대ㆍ기아자동차는 왜 해외 유명 모터쇼에서 굵직한 신차를 공개하는지는 반대로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들을 나무라는 게 아니라 그게 모터쇼의 생리고 시장의 원리다. 해외 모터쇼와 비교하며 불평불만을 늘어놓기보다 지금의 국내 자동차 산업과 문화, 수준을 인정하자. 국내 도로를 보면 무채색 세단과 SUV투성인데, 모터쇼에서 휘황찬란한 차들이 나오길 바라는 건 무리다. 현대자동차가 월드 프리미어로 그랜저 IG 하이브리드를 당당하게 내놓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 모터쇼에 네이버가 참가한 건 꽤 반갑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는 전 세계가 인정하는 IT 강국이 아닌가? 네이버의 기술연구개발 법인 네이버랩스는 2017 서울모터쇼에서 현재 개발 중인 자율주행, 커넥티드 카, 3차원 실내지도 등의 생활환경지능 기반 기술을 공개하며 미래의 공간과 이동 수단에 대한 비전을 밝혔다. 그들의 계획에 따르면 지금은 우리가 네이버가 만든 내비게이션 앱을 사용하고 있지만, 네이버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다닐 날이 머지않아 보였다. 내후년에는 자동차 산업에 본격적으로 발을 담그기 시작한 삼성전자와 LG전자, 포스코 ICT 등 더 많은 IT 회사들의 참여를 바라본다.

올해 서울모터쇼엔 총 61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갔다
올해 서울모터쇼엔 총 61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갔다

서울모터쇼는 진화했다. 줏대 없이 해외 모터쇼를 따라가기보다 한계를 인정하고 국내 실정에 맞는 색깔을 찾았다. 어쭙잖게 비슷한 것보다 차별화된 게 더 가치 있다. 가족 단위 관람객이 많아 싱글 자동차 마니아들은 불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린이는 나라의 미래가 아닌가? 모터쇼를 찾은 어린이 중에 훗날 유명한 자동차 디자이너나 레이서, 테크니션 등이 나올지도 모르니 그들의 관심을 귀엽게 봐주자. 그리고 자동차가 더는 아빠만의 영역이 아닌 가족 전체의 공감대로 확산되는 분위기는 산업과 문화적으로도 이득이다.

개선할 점도 있다. 일반 관람이 시작된 지난 31일 오전엔 산업통상자원부 주형환 장관이 방문했다. 각 부스의 전광판엔 약속이라도 한 듯 장관 일행을 환영하는 문구가 표시됐다. 어떤 부스에선 안내 방송까지 나왔다. 장관이 지나갈 때마다 관계자들이 나와 깍듯이 인사를 건넸다. 장관 일행의 쾌적한 동선을 통제하느라 관람객의 입장 시간은 다소 지연됐다. 하루 전날 프레스 데이 국내 모 자동차 회사의 콘퍼런스에선 주요 촬영 포인트를 차지한 ‘귀빈석’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BMW를 비롯한 대부분의 수입차 콘퍼런스에선 임원을 비롯한 VIP들이 취재의 동선에서 벗어나 각자가 원하는 자리에 서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며 프레젠테이션에 귀를 기울였다. 모터쇼의 프레스 데이는 일반 공개에 앞서 언론에 신차와 비전을 먼저 공개하는 자리다. 모터쇼에서조차 이 사회의 씁쓸한 작은 단면이 보였다.

지난 1월에 열린 도쿄 오토 살롱의 혼다 부스. NSX에 앉아 보려면 30분 넘게 줄을 서야 했다
지난 1월에 열린 도쿄 오토 살롱의 혼다 부스. NSX에 앉아 보려면 30분 넘게 줄을 서야 했다

지난 1월에 일본 지바 시에서 열린 도쿄 오토 살롱에 다녀왔다. 야외 행사장에선 데모카 레이스가 열렸는데 혼다 NSX가 나오자 뜨거운 환호가 울려 퍼졌다. 앞서 등장했던 아우디 R8과 포르쉐 911 GTS, 람보르기니 우라칸과는 차원이 다른 함성이었다. 그들의 외침을 모두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우리가 자체적으로 만든 미드십 슈퍼카’라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NSX는 미국에서 어큐라 브랜드로 판매 중이며 지난 2월부터 일본에서도 혼다 이름으로 판매를 시작했다. 서울모터쇼가 점차 정체성을 찾아가는 건 분명히 환영할만하다. 하지만 그 이면엔 우리에게도 저렇게 환호를 외칠 수 있는 차가 나오길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조두현 기자 joe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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