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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일 먹으면 100만원 꿀알바” 임상시험의 위험한 유혹

입력
2017.04.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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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판 일자리 구하기도 힘든데”

취준생ㆍ노인 등 경제적 약자 몰려

참여 제한에 주민등록증도 속여

정부 정책적 육성에 시험 급증

지난해 628건 ‘10년새 2배로’

지하철ㆍ버스 등 모집 광고 도배

반복참여땐 약물상호작용 가능성

간장ㆍ신장엔 독성 축적될 수도

부작용ㆍ윤리적 문제 설명은 소홀

대학생, 취업준비생, 실업자 등이 경제적 이유로 임상ㆍ생동성시험에 참가하고 있지만 반복적으로 시험에 참가하면 약물복용과 채혈로 인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대학생, 취업준비생, 실업자 등이 경제적 이유로 임상ㆍ생동성시험에 참가하고 있지만 반복적으로 시험에 참가하면 약물복용과 채혈로 인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취업준비생 H(29)씨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신체검사(건강검진)를 받고, 이달 초 새로 개발 중인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치료제의 안전성을 테스트하는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닷새 동안 검증되지 않은 약을 먹고, 30회에 걸쳐 채혈을 해야 한다. 임상시험 도중 몸에 이상이 생기면 검사를 중단할 수 있지만,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는 시험에 참가하기 전 “‘몸까지 팔아서 돈을 벌어야 하나’라는 자괴감도 들지만 100만원에 가까운 돈을 ‘사례비’로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신약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과 복제약의 효능을 시험하는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이하 생동성 시험)이 대학생, 취업준비생, 실직자, 노인 등 사회취약계층에서 이른바 ‘꿀 아르바이트’로 인기를 끌고 있다. 정부가 의료산업화를 위해 2004년부터 임상시험업계에 정책적 지원을 하면서 국내 임상시험 규모가 급격히 커진 결과다. 하지만 뒤따르는 윤리적 문제와 부작용은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어 경제적 약자들의 임상시험 그늘 또한 짙어지고 있다.

임상시험 급증 추세, 경제적 약자들 몰려

10일 한국임상시험산업본부가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세계 임상시험 시장 점유율은 3.4%로 8위였다. 정부가 2004년부터 지역임상시험센터 지원 프로그램을 도입해 2013년까지 총 15개 병원에 센터가 들어섰으며, 센터당 40억원의 정부 지원이 이뤄졌다. 그 결과 지난해 국내에서 승인한 임상시험계획은 628건으로 2004년 136건에 비해 4.6배 가량 급증했다. 10년 전인 2007년(282건)과 비교해도 두 배 이상 늘었다. 생동성 시험도 2013년 163건, 2015년 201건, 지난해 123건 등 매년 100~200건 가량을 오가고 있다.

자연스럽게 국내 시험대상자 모집도 활발해졌다. 국내외에서 개발 중인 신약의 안전성 여부를 확인하는 임상시험은 1~4상까지 단계가 있는데 1상은 건강한 일반인 참여가 가능하다. 생동성시험도 일반인이 참가할 수 있다. 임상시험 실시기관인 각 병원이나 임상시험 모집 공고를 대행해주는 업체들이 지하철, 버스 광고판, 인터넷 구인구직 게시판 등에 알려 일반인 대상자를 모은다.

최근 1년 새 생동성시험(관절염 치료제)과 임상시험(발기부전 치료신약)에 모두 참가했다는 B(40)씨는 “경기가 좋지 않아 공사판 일자리고 구하기 쉽지 않다“며 “약 먹고 피를 뽑는다고 큰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마음 같아서는 매달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임상ㆍ생동성시험에 참가하면 3개월 내 시험 참가가 불가능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주민등록증을 돌려가며(신분을 속이고) 시험에 참가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B씨처럼 건강한 사람도 임상ㆍ생동성시험에 반복 참여하면 약물상호작용과 같은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조진현 강동경희대병원 혈관외과 교수는 “지속적으로 임상시험에 참가해 약을 복용하면 간과 신장에 독성이 축적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인진 서울대병원 임상약리학과 교수(임상시험센터장)는 "아무리 안전한 약이라 할지라도 위험성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며 "건강한 자원자의 경우 3개월 이내 참여를 하지 못하게 막는 게 약물 상호작용으로 인한 부작용을 막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일부 제도 정비했지만 윤리적 문제 여전

반복 참여 문제가 논란이 되면서 정부도 뒤늦게나마 관리 제도를 정비했다. 식약처는 지난달부터 ‘임상시험 안전관리시스템’을 구축해 3개월 이내 임상 1상과 생동성 시험에 중복 참여하려 하는 일반인을 임상기관이 실시간으로 확인해 걸러낼 수 있도록 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4월 말부터 생동성시험 참여자도 임상시험에 준하는 동의, 설명절차, 윤리규정에 따르도록 기준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임상시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여전한 것은 시장 키우기에 급급했던 정부, 병원, 제약사 등에게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은 “선진국에서는 의학발전을 위해 특정 질환의 치료 개선에 동의한다는 윤리적 이유로 임상시험에 참여하고 임상시험대상자에게도 이를 충분히 알리는데, 한국은 시장 확대를 위해 키운 임상시험수탁기관(CRO)들이 단기간에 많은 시험대상자를 모집하기 위해 경제적 보상만 강조해왔다”며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 연구인 만큼 연구 관련자들의 윤리의식 수준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김옥주 서울대병원 임상연구윤리센터 교수팀이 지난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국내 한 대학병원의 임상시험연구계획서 중 절반 가량이 윤리적인 문제 때문에 임상시험심사위원회(IRB)에서 재심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4~2006년(752건), 2013년(492건)에 실시한 총 1,244건의 연구계획서 심의 내용을 분석한 결과 윤리적 문제가 제기된 비율이 47%에 달했다. 각 병원에 설치된 IRB에서 계획서를 점검하는데 계획서 상에 문제가 제기돼 절반가량이 계획서를 수정해 다시 제출하라고 반려된 것이다. 김 교수 연구팀은 “연구자들의 윤리의식 향상을 위해 임상시험을 주도하는 연구진에 대한 교육프로그램과 지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

김지현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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