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15일 백령도 앞바다. 국민들은 그토록 고대하던 46명 수병들의 귀환신고를 끝내 들을 수 없었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차디찬 서해 바다 속에 20일간 갇혀있던 젊은 영웅들은 싸늘한 주검이 되어서야 가족 품에 안겼다.
이보다 앞선 3월 26일 저녁 9시, 대한민국 해군 초계함인 천안함은 임무 수행 중 폭발음과 함께 선체가 두 동강이 난 채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승조원 104명 중 58명이 구조됐고 실종자 6명을 포함한 46명의 고귀한 생명이 희생됐다. 합동조사단은 후일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침몰했다고 밝혔다.
천안함을 삼킨 뒤 무섭게 일렁이던 바다는 20일이 지나서야 잠잠해졌다. 봄 햇살을 머금은 푸른 바다는 선체 인양을 위한 최적의 날씨였다. ‘혹시나 생존자가 있을지도’ 하는 만의 하나의 기대를 안고 시작된 인양 작업은 순조로웠다.
오전 9시, 해군 함정들이 15초의 애도의 기적을 울리자 대형 크레인에 연결된 굵은 쇠줄이 천안함이 누워있는 바다 속 1.4km 지점까지 내려갔다. 불과 11분 후, 함미 윗부분인 사격통제 레이더실이 체인에 묶여 물 위로 모습을 드러냈고 40mm 부포와 하푼미사일에 이어 갑판까지 차례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쇠사슬에 매달린 함미는 피격 상태를 말해주듯 처참한 모습이었고 천안함 고유번호인 772 숫자만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거치대 작업과 동시에 해군 해난구조대(SSU)와 특수전여단(UDT) 요원들의 실종자 수색이 병행됐다. 잠시 후 승조원과 장병들의 시신이 속속 발견되기 시작했고 과학수사팀 요원들은 이들의 신원과 사망 사실을 확인하느라 분주했다. 기적을 바라던 유가족들은 멀리서 바다를 바라보며 통한의 울음만 삼키고 있었다.
이날 하루만 36명의 시신이 수습됐고 9일 후인 24일 함수부분이 인양됐다. 6명의 장병들은 끝내 돌아오지 못한 채 실종자로 남았다.
어느 죽음이 가볍고 무거우랴. 다만 조국을 위해 싸우다 희생된, 또는 나라의 부주의로 삶이 꺾인 이들의 생명은 더욱 안타깝고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손용석 멀티미디어 부장 st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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