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 프로필을 가진 사람을 왜 이제야 추천합니까?”
대한축구협회가 정해성(59) 국가대표 신임 수석코치를 울리 슈틸리케(63) 감독에게 추천하자 이런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정 신임 수석은 국가대표 코치로 두 차례 월드컵(2002년 4강, 2010년 16강)을 성공적으로 치렀고 프로축구 제주와 전남 감독을 지낸 베테랑 지도자다. 슈틸리케 감독은 최근 영국과 독일에 갔다 왔는데 주장 기성용(28ㆍ스완지시티)이 “정해성 감독님 같은 분이 대표팀에 꼭 필요하다”고 의견을 냈다고 전해진다.
정 수석 앞에는 ‘구원투수’ ‘소방수’란 말이 붙는데 차두리(37) 전력분석관, 설기현(38) 코치 영입 때도 비슷했다. 벌써 세 번째 소방수 투입이니 슈틸리케호가 지금 얼마나 위기인 지 알 수 있다.
‘감독에게 과감하게 직언할 수 있느냐’ ‘전술 부재를 해결할 복안은 있나’ ‘대표 선수 선발에 문제가 있어 보이는데 어떻게 해결할 건가’
언론과 팬들이 정 수석에게 묻고 싶은 말들일 것이다. 모두 중요하지만 정 수석이 국가대표팀 분위기를 원래대로 돌려놓는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정 수석은 선수들이 가장 무서워하면서도 또 제일 믿는 지도자 중 한 명이다. 남아공월드컵 당시 허정무 전 감독은 ‘반바지, 슬리퍼 차림으로 편하게 식사하고 싶다’ ‘훈련 일정을 하루 먼저 알고 싶다’ 등 시시콜콜한 선수들의 민원을 적극 수용하는 ‘쌍방향 소통’으로 좋은 성과를 냈다. 선수 의견을 종합해 전달한 건 주장 박지성(36)이었지만 허 감독에게 직접 말한 게 아니다. 대부분 정해성 수석을 통했다.
안정환(41)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리길 원치 않았다. 젊고 뛰어난 후배들이 많아 자신이 팀에 큰 도움이 안 될 거라 판단했다. 당시 안정환이 뛰던 중국까지 가서 마음을 돌려놓고 온 이가 정 수석이다. “너에게 매 경기 골 넣고 풀 타임 뛰는 거 안 바란다. 후배들을 위해 2002년 (황)선홍이 같은 역할을 해 달라”고 설득했다.
안정환은 대표팀 주축이던 어린 선수들과 처음에는 서먹했다. 그는 휴식시간 때 박주영이 게임을 즐긴다는 사실을 눈 여겨 본 뒤 하루는 미리 자리를 잡고 잘 하지도 못하는 게임을 즐기는 척 했다. 박주영이 “형도 이 게임 해요?”라며 관심을 보였고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천하’의 안정환도 후배들과 가까워지려 이런 노력을 기울였다.
태극마크를 달 정도면 두말할 것 없이 실력은 톱 클래스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국가대표는 개인이 아닌 팀으로 뭉쳐야 좋은 성과를 낸다. 요즘 대표팀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 많다. 정 수석의 어깨가 무거운 이유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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