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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유럽] 장밋빛이 아닐 브렉시트 협상

입력
2017.04.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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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북동부 해안 공업도시 선더랜드.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지명이다. 영국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있는 기성용 선수가 4년 전 활동한 축구팀의 연고지다. 이 도시는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EU)탈퇴(브렉시트)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의 결과를 보여줄 첫 가늠자이기도 했다. 투표 마감 후 8시간이 조금 지난 2016년 6월 24일 새벽, 선더랜드가 61.3%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브렉시트를 지지했다는 결과가 공개됐다. 이후 이어진 개표에서 이 추세는 변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선더랜드는 유럽통합의 이득을 꽤 많이 누린 곳이다. 다국적 자동차 제조업체 르노-닛산은 이 곳에서 연간 50만대의 자동차를 만들어 2015년에는 그 중 55%를 다른 EU 회원국에 수출했다. 2016년 10월 카를로스 곤 최고경영자는 영국 정부에 브렉시트 후 현재와 같은 EU 교역조건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공장 증설이 어렵다고 경고했다. 이에 영국 정부는 이를 보장했고 르노-닛산은 증설을 결정했다.

이 사건은 의문을 남겼다. 다음 달이나 6월초에 영국과 나머지 EU 27개국(EU 27)이 브렉시트 협상을 개시한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서 탈퇴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르노-닛산이 이제껏 해온 것처럼 다른 EU 회원국과 자유롭게 교역을 할 수 있을까? 르노와 메이 정부가 부인하지만 양자간 이면 합의설이 계속 흘러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영국을 포함한 EU 28개국은 단일시장이다. 상품이나 서비스, 자본과 노동이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롭게 이동한다. 영국은 브렉시트 협상에서 이민 제한을 우선 순위로 내세웠기에 브렉시트 이후에는 단일시장 접근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자동차산업이 특히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자동차는 적기 생산이 원칙이어서 부품 재고를 최소한으로 떠안는다. 르노는 생산과정에서 적어도 10차례 이상 영국이 아닌 EU 회원국에서 부품을 수입하거나 특별 도장을 의뢰한다. EU 단일시장 체제에서는 통관 절차 없이 이런 과정이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제품 생산에 필요한 공급망이 몇 개의 EU 회원국에 최적으로 분산돼 있다. 하지만 영국이 이 시장에서 탈퇴하면 영국과 EU27 간에 통관을 거치게 된다. 그만큼 기업들은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하고 시간도 훨씬 더 걸린다.

영국이 상품에 비해 경쟁력을 자랑하는 서비스 교역은 훨씬 더 복잡하다. 영국이 EU27과 통관절차를 도입하면 자국의 관세청 인력을 대규모 증원하고 기존의 통관 시스템도 대폭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브렉시트 협상에서 EU가 영국 정부에 엄청난 추가 비용을 부과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위 두 사례만 봐도 브렉시트 협상이 얼마나 어렵고 복잡할지 짐작할 수 있다. 물론 브렉시트 협상이 원만하게 타결되는 것이 영국과 EU27 모두에게 이득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을 감안할 때 지난 43년 간의 매우 긴밀했던 관계를 청산하고 영국이 EU와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메이 총리가 6월 8일 조기총선을 치르겠다고 전격 발표한 것도 국민의 더 큰 신임을 얻어 이처럼 어려운 탈퇴 협상에서 최대한 실익을 얻어 보겠다는 셈법이다.

브렉시트 협상의 최선의 시나리오는 영국이 탈퇴 의향서를 제출한지 만 2년이 되는 2019년 3월 29일까지 탈퇴 협상과 ‘과도기 관계’ 설정을 마치는 것이다. 영국과 EU의 새로운 관계(새 통상협정과 비경제관계인 정치 및 안보협정)를 2년 안에 완전히 수립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양측은 2019년 3월 탈퇴 이후 새로운 관계를 설정할 때까지 임시로 적용할 과도기 관계를 설정할 것으로 보인다. EU는 과도기 중에도 영국이 단일시장에 접근하려면 당연히 자유이동을 허용하고 EU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에 영국이 2년 안에 탈퇴 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EU 27개국이 이 협상의 연장을 만장일치로 허용하지 않아 영국이 열차 충돌처럼 EU에서 튕겨나가는 경우도 상정해 볼 수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인데 일부에서는 이럴 가능성이 30~50% 정도는 된다고 본다. 이 경우 영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따라 교역을 하게 되어 대EU 교역시 상당한 관세를 지불하게 된다. 영국 집권 보수당의 강경 탈퇴론자들은 협상 없이 탈퇴하는 것이 자국의 미약한 협상력을 제고할 수 있다고 메이 총리를 압박해 왔다.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최선과 최악의 중간 정도로 전망된다. 양자가 2년 안에 탈퇴협상을 마무리하고 과도기 관계도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합의한 채 기한을 연장해 협상을 몇 년 더 벌이는 방안이다.

브렉시트 협상은 앞으로 최소한 2~7년 간 국제정치ㆍ경제 무대의 불확실성으로 작용할 것이다. 대외경제 환경에 매우 취약한 한국도 브렉시트 협상의 추이와 유럽통합의 방향을 예의주시하고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우선 2011년 7월부터 발효중인 EU와 한국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재협상해야 한다. 영국이 EU에서 탈퇴하기에 한국과 EU 간의 전략적 이익 균형이 깨지기 때문이다. FTA 체결 후 한국의 대EU 교역은 적자로 돌아섰다. 그 이유를 꼼꼼하게 따져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EU를 탈퇴한 영국과는 통상관계가 사라지기 때문에 새로 FTA를 협상해야 한다. 영국은 EU 회원국 가운데 독일에 이어 한국의 제2 교역 상대국이다. 지난해 한국은 영국과 111억 달러 남짓의 무역량을 기록했고 약 11억 달러 정도의 흑자를 냈다. 서비스 산업에서 경쟁력이 있는 영국과의 교역에서 우리가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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