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신인 작가의 시리즈 첫 책
녹음한 소설을 팟캐스트에 등록
“책 읽고 싶다” 팬 요청으로 출간
우주선 선원이 된 소년을 통해
일상도 모험이 된다는 걸 보여줘
과학소설(SF)의 서브장르 중 ‘스페이스오페라’(우주활극)가 있다. 스페이스오페라는 책보다 영화로 먼저 SF를 접한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서브장르이기도 하다. SF라고 하면, 대개 ‘스타워즈’나 ‘스타트렉’ 같은 대표적인 스페이스오페라 작품을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소설 쪽에서도 스페이스오페라는 본래 서브장르 중 대중성이 높은 장르다. SF를 읽어본 적 없는 가벼운 독자들이 영화에서 책으로 처음 진입하기 수월한 장르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스페이스오페라들은 한국에서도 이미 꾸준히 출판되어 왔다. 최근 의욕적으로 재간된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아서 C. 클라크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같은 고전은 물론, 수십 년 동안 꾸준히 전세계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는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의 ‘마일즈 보르코시건’ 시리즈나, 한국 독자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은 존 스칼지의 ‘노인의 전쟁’ 시리즈도 한국어로 만날 수 있는 멋진 스페이스오페라이다.
팟캐스트에서 먼저 ‘터진’ 작품 ‘대우주시대’
얼마 전, 또 한 권의 반가운 스페이스오페라가 출간되었다. 60대 신인 네이선 로웰의 ‘태양 범선과 무역상 이야기’ 시리즈 여섯 권 중 첫 책, ‘대우주시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저자 네이선 로웰은 50대 후반에 팟캐스트의 세계를 알게 된 후, 자신이 쓴 소설을 MP3 녹음기로 녹음한 다음(주변에 녹음할 만한 조용한 곳이 없어 자기 차 안에서 원고를 읽었다고 한다) 팟캐스트에 올리는 독특한 방식으로 데뷔했다. 장편 스페이스오페라를 낭독한 그의 팟캐스트는 1만5,000명이 넘는 구독자가 생길 만큼 사랑받았고, 책으로 읽고 싶다는 팬들의 요청에 따라 출판에 이르게 된다.
‘대우주시대’는 로웰이 경비대원, 순찰대원, 통신국 담당자 등으로 일한 경험을 한껏 살린 작품이다. 이슈마엘 호라이쇼 왕은 네리스라는 회사가 운영하는 행성에 사는 소년이었다. 고전문학 교수이던 어머니가 비행차 사고로 급사하자 부양가족에 해당했던 이슈마엘은 행성에서 쫓겨날 처지에 놓이게 된다. 회사 행성에서는 90일 이내에 취업을 하지 않으면 나가야 하는데, 이제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한 미숙련 노동자인 이슈마엘이 일할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행성에서 쫓겨나면, 우주로 나가야 한다. 그러나 사람이 우주로 그냥 쫓겨 나가면 당연히 죽는다. 사람은 행성 밖으로 나가기 위해 우주선을 타야 하고, 어딘가 공기와 중력이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살아야 한다. 그러나 이슈마엘에게는 우주선의 승객이 될 만한 돈도 없었고, 달리 갈 곳도 없었다. 남은 길은 하나, 우주선의 선원이 되는 것뿐이었다. 학교만 다녔던 이슈마엘에게 갑자기 우주선의 선원으로 취업할 만한 기술이 있을 리 없지만, 직업 소개소 직원의 호의로 이슈마엘은 로이스 멕캔드릭 호라는 우주선의 주방 보조 자리를 구해 선원이 된다.
대우주시대
네이선 로웰 지음ㆍ이수현 옮김
구픽 발행ㆍ388쪽ㆍ1만4,000원
우주에서의 일상을 다룬 스페이스오페라
이 소설은 이렇게 갑자기 우주선원이 되어 주방의 커피 담당이 된 이슈마엘의 일상을 따라간다. 그렇다. ‘모험’이 아니라 ‘일상’이다. 로이스 맥켄드릭 호는 전쟁을 하지도 않고, 이 우주선의 선원들은 권력을 다투지도 않는다. 아무도 미사일 발사 버튼을 누르지 않고 아무도 죽지 않는다. 사람들 사이에 음모, 시기, 질투도 없다. 선원들은 각자 맡은 일을 하고, 우주선은 실용적이고 합리적으로 운용되며, 선장에서부터 시작하여 모든 선원들에게는 각자 자신의 자격과 자질에 맞는 권위가 주어져 있다. 한 발 나가면 죽음인 우주선이라는 제한적인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선원들은 그 환경에서 고통받기보다는, 건강한 거리감과 적정한 선의를 가진 직업인이자 동료들이다. 이슈마엘은 이 속에서 제 몫을 하는 선원으로 성장해 간다.
‘대우주시대’는 우주선으로 장소를 옮김으로써, 한 사람의 일상이 어떻게 모험이 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뿐 아니라 악역의 훼방이나 뒤틀린 오해, 갑작스러운 배신이 없는 건강한 성장, 선의를 조금씩 쌓아 만들어지는 건강한 관계가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로이스 맥켄드릭 호는 어떤 면에서 판타지라고 느껴질 만큼 ‘편안한’ 소설이다.
건강한 즐거움이 귀한 시대다. 특히 2017년 4월 한국에서 음험하지 않은 즐거움, 합리적인 전개, 기민한 인물, 선량한 성장을 만날 기회는 책 속에서나 밖에서나 얻기 힘든 사치가 되고 있다. 한 중년 남성이 혼자 앉아 쓰고 녹음했던 이 소설이 팟캐스트로 그토록 큰 인기를 누리게 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이었을지 모른다. 우리 모두, 현대적이고 건강한 세계에 목말라 있었는지 모른다.
‘대우주시대’는 과학소설, 그것도 스페이스오페라라는 장르에서 이런 사치를 누릴 수 있는 좋은 책이고, 시리즈의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하는 작품이다. 스페이스오페라를 영화로만 접했던 독자들에게 특히 추천하고 싶은 장르 입문서이기도 하다. 총 6권이라는 ‘태양 범선과 무역상 이야기’ 시리즈의 다음 책들도 이 책처럼 건강하기를, 그리고 전권이 무사히 한국어로 출간되기를 기대해 본다.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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