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린 등 떠밀려 저물까? 혁오가 노래하는 소멸하는 청춘
네 멤버가 올해 모두 스물 넷이 된 밴드 혁오는 24일 공개한 신곡 ‘톰보이’에서 “젊은 우리, 나이테는 잘 보이지 않고” 라고 쓸쓸하게 노래한다. 한창 생명력이 넘쳐야 할 젊은이들에 나이테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건, 투명인간처럼 사라져가는 존재의 불안에 대한 은유다. 혁오의 새 앨범 ‘23’을 관통하는 주제는 ‘청춘의 소멸’이다. 앨범엔 “우리 마음도 늙어버렸네요” “왜 우린 등 떠밀려 저물까”(‘폴’) 등 치열한 경쟁 사회에 내몰려 ‘빨리 늙은’ 청춘의 상실감이 가득하다. ‘다이 얼론’은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을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88만원 세대’를 위한 노래처럼 들린다. 이 허무함을 표현하듯 혁오는 ‘완리’의 뮤직비디오를 몽골의 광할한 황무지에서 찍었다.
‘23’은 “내 모습 너무 초라해서 정말 죄송”하다(‘위잉위잉’)는 전작 ‘20’(2014)보다 염세적이고 자조가 짙다. 혁오의 보컬인 오혁은 24일 서울 용산구 디뮤지엄에서 연 ‘23’ 음악감상회에서 “청춘의 불안과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방황에 집중해 앨범을 만들었다”며 “지난해 이래저래 치이고 슬럼프가 찾아와 6개월을 쉬었는데 그렇다 보니 더 어두운 곡들이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2015년 ‘무한도전 가요제’에 출연해 기대 이상의 대중적인 관심을 받은 것에 대한 부담도 새 앨범을 꾸리는 데 걸림돌이 됐다. 오혁은 현 밴드의 위치를 묻는 질문에 “이제 어떡하지?”라고 답했다. 밴드의 음악적 방향을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다.
음악은 더 록스럽게… 혁오의 변화
냉소적인 노랫말과 달리 음악은 흥겹다. 1970년대 유행했던 복고풍의 경쾌한 록 음악(개러지록)을 전면 수용했다. 말이 달리는 듯한 드럼 연주가 인상적인 ‘도쿄 인’과 쟁쟁거리는 기타 연주가 감칠맛 나는 ‘가죽 자켓’, ‘2002 월드컵’ 등 축제용 음악이 즐비하다. 밴드로서의 느낌이 더 강해진 게 두드러진 변화다. “메이저와 인디신 사이에서 더 강한 록 음악으로 밴드로서의 정체성을 확실히 보여줬다”(김상화 음악평론가)는 평이다. 이 변화로 인해 대중성 확보에는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오혁은 “앨범을 제작할 때 대중성을 고민했지만, 결국 대중성이 무엇인지 모른 채로 앨범 작업을 끝냈다”고 말해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혁오는 낯선 음악과 냉소적인 이야기에 대한 무거움을 엉뚱함으로 전복한다. 네 멤버는 그들의 아버지가 입었을 법한 디자인의 양복을 입은 채로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새 앨범 홍보 사진을 찍었다. 참선을 하듯 동그랗게 둘러 앉아 서로 손을 잡고 있는 또 다른 사진은 기괴함마저 든다. 의도적인 촌스러움과 부조화를 내세운 ‘키치 코드’로 진지함을 무너뜨리는 시도가 흥미롭다. 오혁은 양복에 대해 “영국에서 사온 최신 아이템”이라고 수줍게 말했다. 한 방송관계자에 따르면 혁오는 ‘무한도전’ 가요제에서 이번 앨범에 실린 ‘다이 얼론’을 쓰려다 정형돈의 ‘제지’로 계획을 접었다. 온 가족이 함께 둘러 보는 토요일 오후 그것도 MBC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서 홀로 죽는다는 뜻의 노래를 택하려 하다니. 사람들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혁오의 엉뚱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공교롭게 어눌한 말투로 대중에 각인된 오혁은 새롭고 독특한 것을 찾는 이들, 소위 ‘힙스터’들의 편애를 받고 있다. 품이 큰 분홍색 바지를 비롯해 꽃무늬 프린트 셔츠도 즐겨 입는 그는 홍익대 인디신에서는 래퍼 지드래곤 못지 않은 ‘패녀시스타’로 통한다. 홍익대 예술학과에 재학중인 그는 노상호 작가와 손잡고 섬뜩한 동화 같은 앨범 재킷을 만들고, 독특한 패션으로 음악인으로의 개성을 확장한다. 쓸쓸함이 가득한 목소리와 180도 다른 방식의 괴짜 같은 낯선 이미지로 충격을 주는 방식이다. 지혜원 대중문화평론가는 “오혁은 영리한 장기하보다 덜 다듬어졌고 지드래곤보다는 덜 대중화된, 늑대소년 같은 매력이 있어 팀에 대한 호기심을 이끈다”고 봤다. 한ㆍ중ㆍ일 문화를 아우르며 국적의 경계를 허무는 것도 오혁의 장점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10년 넘게 지낸 오혁은 ‘23’에 중국어로 된 ‘완리’와 일본에서 지내며 쓴 ‘도쿄 인’ 등을 실었다. 오혁은 “중국에서 산 영향도 있지만, ‘유튜브 세대’로 온라인을 통해 여러 나라의 문화를 듣고 자라 그런 다양성이 음악에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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