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삶ㆍ경험 반영된 정책 같은 비용에도 만족도 높아”
“저를 찾는 분들이 부쩍 많아진 걸 보니 서울시가 벌써 성주류화 정책에 한 발짝 다가선 느낌입니다.”
최근 성역할, 성차별 등 젠더 이슈 주목도가 높아진 가운데 서울시가 지난달말 ‘시정 전반 성인지 강화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공무원들이 성인지 감수성을 체화하도록 조직과 제도, 교육 등에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여 성평등 도시를 구현한다는 계획이다.
젠더자문관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서울시 성평등 기본조례에 운영 근거를 신설하는 내용도 이 계획의 일부다. 젠더자문관은 시의 주요사업을 성인지적 관점에서 사전 검토ㆍ조정하고 성평등 지표 개발 등을 담당하는 직제다. 2015년 10월 서울시가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젠더전문관이라는 이름으로 신설했지만 지난해 7월 담당자 퇴사로 유야무야됐다.
김연주(39) 서울시 여성정책담당관 젠더정책팀장은 보좌인력을 갖춘 전담조직으로 확장돼 젠더자문관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한 이 직제에 올해 초 채용됐다. 성매매하는 10대 등 청소년 연구를 주로 해 오던 여성학자인 김 팀장은 “현장연구와 강의, 저술활동을 꾸준히 해 왔지만 남녀차별적 가치관의 변화는 여전히 더디고 여성혐오문화는 확산되고 있다”며 “현실 변화를 위해 정책이나 제도로 여성학에 접근하는 것도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고 채용에 지원한 동기를 밝혔다. “여성학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차원에서 여성이 정치적 시민권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젠더자문관의 역할은 “성평등 업무가 여성부서만의 업무가 아님을 주지시키고 이를 통해 부지불식간에 추진돼 온 몰성적인 정책과 사업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는 “한국 사회는 남성이 시민을 대표하다 보니 소수자로서 여성의 구체적 삶이나 경험이 반영되지 못한 정책을 인식하지 못하고 집행하는 경우가 있다”며 “여성과 남성을 고르게 고려해 사업을 진행하면 같은 세금과 에너지를 들이면서도 정책 만족도는 더 올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당장 지난달 2~12일 서울시가 전자설문 시스템을 통해 공무원 6,763명을 대상으로 한 성인지 의식 실태조사만 봐도 상당수 공무원들이 여성과 남성의 다른 경험과 요구가 정책과 사업에 포함돼야 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성별과 연령, 직급, 근무경력 등에 따라 성인지 의식이 천차만별로 나왔다. 법령과 정책, 제도 등이 여성과 남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는 성인지 의식은 남성보다 여성이, 행정직이 타직군에 비해 높게 나왔다. 김 팀장은 “고위직으로 갈수록 남성 비율이 높은 까닭인지 연령과 직급, 근무경력이 낮을수록 성인지 의식이 높았다”고 설명했다. 주관식 응답 중에는 ‘커피를 아직도 부서 여직원에게 시키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남아 있다’거나 ‘여성정책담당 업무 부서 외의 타부서는 성인지 정책에 관심이 전무하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래도 김 팀장은 젠더자문관으로 출근한 지 100여일 만에 변화를 체감한다고 강조했다. 타 부서에서 성평등 관점에서 자문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어서다.
“여성이 목소리를 높일 때 일단 귀담아 듣는 게 페미니즘의 시작입니다. 성인지 감수성의 높고 낮음 이전에 소통하려는 노력을 하다 보면 남녀가 서로의 가치를 이해하고 사회적인 변화도 가능하겠죠. 젠더자문관 제도도 결국 소통 방법의 하나로 만들어진 게 아닐까요.”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자료: 서울시 공무원 성인지 의식 실태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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