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외교의 역량은 열린 남북관계일 때 발휘 가능”
“사드 입장 모호? 외교란 내 속을 숨길 줄도 알아야”
“文 집권하면 靑 안보실장 지명해 안보부터 챙겨야”
“文주변 퇴역 장성ㆍ전직 외교관 등 인재풀이 강점”
“국정원 개혁은 국민에게 잊혀진 기관이 되는 것부터”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선대위 안보상황단장인 서훈 이화여대 초빙교수는 “강대국 사이에 처한 우리나라 외교의 원칙은 실리와 실용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19일 이화여대 연구실에서 진행된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박근혜 정부가) 주변국과의 관계를 최악의 상태로 만들었다”면서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현실적 접근만이 세계 정세 속에서 우리를 지키고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에 대한 문 후보의 전략적 모호성을 지적하자 “외교란 구호로 해결되지 않는다. 때론 내 속을 숨겨야 하고 때론 과장할 줄도 알아야 한다”며 “다음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우리의 카드를 상대에게 다 보여줄 수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한반도 주변의 고조되는 안보위기 속에 다음 정부가 인수위원회 없이 직무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는 “집권 후 바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지명해 안보 업무를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국정원 3차장 등을 역임하며 대북업무를 담당해온 베테랑이다. 1997년 북한 신포지역 경수로 건설을 위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업 당시 북한 금호사무소 한국대표로 북한에 2년간 상주했으며 개성공단 건설을 위한 협상을 주도한 북한 전문가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수 차례 만났으며 장성택, 김양건 등 주요 인사들과 협상을 벌였다. 2000년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협상을 성사시켰으며 2007년 남북총리회담 대표로 활동했다. 이러한 이력 때문에 캠프 안팎에서 문 후보가 집권할 경우 외교ㆍ안보 분야에 중용될 것이란 말이 돌지만 서 교수는 “괜한 소리”라며 손사래를 쳤다.
_문 후보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참여정부 때인 2004년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보관리실장으로 파견 나왔을 때 만났다. 당시 문 후보는 동문회에도 나가지 않는 등 공직자로서 원칙을 지키는 모습을 보고 책임감이 강한 분이라 생각했다.”
_보수 측의 문 후보에 대한 공세 포인트가 외교ㆍ안보 분야인데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하나는 문 후보의 메시지고 다른 하나는 후보 주변의 전직 외교관, 퇴역 장성, 학계 인사 등 많은 인재 풀을 보여줘 안정감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들이 난상토론을 통해 균형 잡힌 안보정책을 만들고 있다.”
_2012년 대선에 비해 외교ㆍ안보분야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북핵 문제가 악화되는 등 한반도 주변정세가 완전히 바뀌었다. 최우선 목표는 한반도의 군사적 충돌을 막고 북핵과 미사일 문제를 협상테이블에 올려놓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미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양국 간 이해가 100% 일치하지 않아도 이를 어떻게 조정해 가면서 공동의 전략을 펼칠 것인지가 관건이다.”
_북한 인권 문제는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문 후보가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인권에 대한 신념이 확고하다. 2007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때 기권 표결로 결론 났지만, 당시 일부 참석자들은 문 후보가 찬성 입장이었다고 기억할 정도이지 않나.”
_문 후보가 집권할 경우 외교 전략의 밑그림이 있다면.
“특정 국가에 치우친 듯 치우치지 않게, 치우치지 않았지만 치우친 듯한 외교적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외교의 힘은 실제 남북관계에서 나온다. 남북관계가 열려 있지 않으면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이 우리나라를 존중하지 않는다. 때문에 우리가 남북관계를 닫아버리면 스스로 외교적 공간과 역량을 위축시키는 셈이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에선 남북문제를 담당한 통일부가 유명무실했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는 포용보다 봉쇄 전략을 선택했기 때문에 통일부의 운신의 폭이 좁았다. 남북관계는 대통령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문 후보는 남북관계와 국가의 미래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어 북핵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북한에 대한 제재도 고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김대중ㆍ노무현 정부와 다르다.”
_통일부의 역할이 커질 수 있겠다.
“북핵 해결에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통일은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걸 이뤄내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긴 호흡을 갖고 분단 100년째인 2045년까지는 제도적 통일을 이루겠다는 원대한 비전을 다음 정부가 그렸으면 좋겠다.”
_미중 관계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북핵 해결의 시작점은 무엇인가.
“출발점은 한미 협의다. 이후 북한, 중국과 협의해야 한다. 미국과 공동전선이 형성되지 않으면 북한 문제에 대한 우리의 발언권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_하지만 최근 미중 협의에서 우리나라는 소외되는 모양새다.
“코리아 패싱처럼 우리 의사와 상관 없이 북한 문제에 대해 미중 간 전략적 협상이 이뤄지는 것을 가장 경계하고 있다. 다음 정부가 출범하면 우리와의 협의 없는 결정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강조해야 한다. 북한과의 협상이 이뤄지더라도 이행의 당사자는 한국임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_진보 정권이 안보에 취약하다는 우려가 크다.
“안보는 보수가 잘하고, 진보는 못한다는 건 프로파간다이다. 서해북방한계선(NLL)이 뚫려 장병과 민간인의 생명을 잃고 우리 영토에 포탄이 떨어진 게 어느 정권 때인가.”
_사드 배치를 두고 말 바꾸기 논란이 있다.
“입장을 바꾼 적이 없다. 다음 정부가 재검토하자는 입장을 견지했다. 태도를 분명히 하라는 요구가 있지만, 선거에서 당장의 표를 얻는 것보다 국가 안보가 더욱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_문 후보가 사드 배치를 반대했다가 북핵 도발이 계속될 경우 배치가 불가피하다고 밝히지 않았나.
“도발 시에 우리의 선택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고 북한에 경고한 것이지, 우리의 카드를 보인 게 아니다.”
_문 후보가 집권할 경우 남북정상회담이 가능한가.
“남북 간 현안에 대한 상당한 대화와 협상이 진전되고 난 뒤 정상 차원의 결단이 필요하다. 지금의 남북관계에선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 같다.”
_다음 정부에서의 국정원 개혁의 방향은.
“정치 개입 오명을 씻지 못하고 순수 정보기관으로 거듭나지 못한다면 국정원의 존재 이유가 사라질 것이다. 국정원은 국민들로부터 잊혀진 기관이 돼야 한다. 정보와 공작 업무에만 전념하면 국내 현안에서 드러날 이유가 없다. 그것이 개혁 여부를 가늠하는 척도다.”
김회경 기자 hermes@hankookilbo.com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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