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쌀쌀한 봄이 피부에 와 닿는 순간, 어디선가 바람과 함께 밀려온 조각구름이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마치 구름 속에 떠있는 느낌이다. 동이 터오자 그때서야 나를 감싸고 있었던 하얀 기체가 호수에서 피어나는 물안개임을 알았다. 어둠이 물러나고 산 너머 햇살이 호수를 비추자 물안개는 눈 깜짝할 사이 사라졌다. 대신 고요한 호수의 표면에는 산벚꽃나무, 버드나무, 삼나무들이 투영되면서 화려한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아름다운 색들이 번져나간다. 전남 화순군 화순읍에 있는 세량제의 봄 풍경이다.
물안개와 산벚꽃이 빚어내는 황홀한 풍경을 보기 위해 이맘때면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세량제로 몰려온다. 내가 찾아간 날도 제방 길이가 50m밖에 안 되는 곳에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카메라 한 대조차 밀어 넣을 공간이 없었다. 늦게 도착해 감히 비집고 들어갈 생각을 못한 채 한참을 서성이다가 문득 이런 의문이 생겼다. “왜 사람들은 제방에만 모여 있을까? 왜 한곳에 모여 사진을 찍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모두들 인터넷을 통해 한곳에서 찍은 세량제 사진을 보고 왔기 때문이었다.
블로그 등에 올라온 타인의 사진을 보고 그 비슷한 구도로 찍으면 실패할 확률은 작아진다. 그러나 그 사진은 암만 잘해도 남들이 찍은 사진보다 조금 뛰어날 뿐이다. 즉, 자신 만의 사진이 아닌 것이다.
좋은 사진이라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남들이 찍은 사진을 흉내 내고, 운이 좋아 그럴듯한 이미지를 담는 것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족한다. 그러나 이제는 남에게 자랑하고 싶은 사진이 아닌 자신을 만족시키는 사진을 찍자. 같은 대상을 카메라에 담더라도 남들이 가지 않는 장소에서 셔터를 눌러보자. 분명 사진에 대한 자존감이 물안개처럼 피어 오를 것이다. 멀티미디어부 차장 king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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