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먹고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인데, 이 농부들 참 속 편한 모양이다. 비가 자주 오면 일도 못하게 왜 만날 비가 오냐면서 속으론 좋아라 한다. 아침에 비가 오다 그치면 투덜대며 밭으로 나간다. 밤비는 반갑지 않다. 온다던 비가 안 오면 기상청을 규탄한다. 농사지은 지 올해로 3년째, 얼마 벌었나 정산해보니 논과 밭 다 합쳐 8,000평에서 작년 한 해 거둔 소득이 고작 600만원.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다’ ‘통장 파 먹고 살았는데 이젠 더 이상 파 먹을 통장도 없다’면서도 태평해 보인다. 믿는 구석이라도 있나.
“빈둥대도 하늘 무너지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창조적 빈둥의 삶을 꿈꾸는” 농땡이 농부 일당이 지리산 자락 경남 함양에 살고 있다. 정식 이름 ‘빈둥협동조합’, 자칭 ‘빈둥생활연구소’ 연구원 5명이 ‘농땡이농장’에서 농사를 짓고 읍내에서 ‘카페 빈둥’을 운영한다. 농땡이는 농사와 놀이(문화)를 합친 말. 음주 수다를 떨다 작명했다. 농땡이농장의 주력 농사는 사과다. 사과 밭 두 개 6,000평에 벼농사 조금, 감자ㆍ고구마ㆍ고추ㆍ콩 등 밭작물도 조금씩 한다. 모두 빌린 땅이다. ‘안 해도 큰 지장 없는 것은 하지 말자’, ‘몸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몸으로 하자’는 수준에서 되도록 농약 덜 치고 믿을 수 있는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려고 애쓴다. 아직 초보 농부들이라 갈 길이 멀지만 농사로 자립하는 것을 목표로 월 소득 100만원에 도전 중이다.
20대에 만나 40대에 이르도록 인연을 이어온 친구들이 뭉쳤다. 김찬두(47)ㆍ이은진(41) 부부와 이해광(49), 채홍필(46), 박은석(40)씨. 각자 도시에서 주로 문화 관련 일을 하다가 4, 5년 전 함양에 둥지를 틀었다. 연고가 있거나 귀농 준비를 착실히 한 건 아니다. 어느날 덜컥 내려와 무턱대고 농사를 시작했다. 부부는 2012년 2월 함양에 정착했다. 서울을 뜨려고 마음 먹고 있던 참에 아이를 작은 학교에 보내고 싶어 두 딸 중 첫째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한 달 전 서둘러 내려왔다. “농사에 대해 아는 거라곤 4박5일 귀농학교 체험이 다였죠. 다녀 보니 저희 같은 날라리는 힘들겠더라구요. 귀농이라는 말 쓰지 말고 그냥 이사 가는 걸로 하자, 마음이 동했을 때 몸을 옮기자, 설마 굶어 죽기야 하겠나 하고 내려왔어요.”(이은진)
앞서 해광씨가 이 곳에 적을 두고 있긴 했지만 국내외로 돌아다니느라 바빠서 함양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전거 여행으로 지리산 왔다가 함양과 인연을 맺었다. 영화 조감독, 영화제 스태프로 일하던 홍필씨, 홍콩에서 박사과정 밟다가 학업을 중단한 은석씨는 친구 볼 겸 놀러 왔다가 눌러 앉았다.
농사 첫 해는 복분자 밭 하나였다. 알아서 자라니까 할 일 없다는 말을 듣고 고민 없이 선택했다고 한다. 농사를 만만하게 본 건 결코 아니다. “배워야 할 게 엄청 많죠. 돈 들어갈 데도 많고. 농기계는 또 왜 그렇게 비싼지. 트랙터 갖고 싶은데 한 대에 억 단위에요. 농약 치는 분사기도 4,000만~5,000만원씩 하고. 농사나 짓지, 그거 할 말 아니에요.“(김찬두)
주력 농사인 사과는 재작년 시작해 작년에 두 번째 수확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지난해 11월, 농사지은 사과로 ‘대국민 사과 프로젝트’를 했다. ‘한 번도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는 대통령 때문에 홧병 걸린 국민 여러분은 진실한 사과를 받아야 한다’며 벌인 작당이다. 비영리단체나 모임을 후원하고 싶은 사람과 빈둥이 절반씩 분담해 사과를 보냈다. 배송지 목록에는 ‘광화문역 3번 출구 농성장’ 같은 주소가 포함됐다. 지난 겨울 빈둥 멤버들은 문화 관련 일을 했던 경험을 살려 함양 지역 집회문화 기획과 진행에 나섰다. 구호 외치고 성명서 읽는 게 전부였던 집회에 영상도 틀고 공연도 넣었다.
커뮤니티 공간 운영에 관심이 많았던 은진씨가 꾸려가는 카페 빈둥은 누구나 편하게 들락거리는 동네 사랑방이다. 초중고 학생들이 하교 길에 또는 학원 가기 전 빈 시간에 와서 놀거나 숙제도 한다. 함양 유일의 공정무역 카페인 이곳은 누군가 메뉴를 걸어두거나 미리 내준 돈으로 청소년들이 음료나 간단한 메뉴를 사 먹을 수 있는 ‘콩반쪽 가게’다. 2,000~3,000원으로 맛있게 잘 먹었다며 고맙다고 아이들이 써붙여 둔 쪽지가 잔뜩이다.
이 카페에서는 동네 엄마들의 바느질 모임, 원어민 교사와 학생, 주민들의 영어로 말하기 모임, 인근 예술가들의 작은 공연, 영화 상영, 외부 인사 초청 강연 같은 다양한 활동이 꾸준히 벌어진다. 처음에는 은진씨가 직접 이것저것 기획을 했지만, 지금은 주민 스스로 꾸려가는 모임이 많아졌다고 한다. “이러려고 대통령 됐나 자괴감이 든다”고 말한 대통령 덕분에 작년 말에는 동네 사람 다 불러서 ‘자괴감 없는 송년회’를 열기도 했다. 찬두씨가 설명을 보탰다. “저희 공통 관심사가 농사 그리고 문화인데, 가장 적은 돈으로 동네를 활기 있게 만드는 게 문화라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즐기면서 지역 사람들도 같이 즐길 수 있는 일을 꿈지럭거리면서 하는 거죠.”
‘빈둥’이란 말은 우리 사회에서 좋은 뜻으로 통하지 않는다. 빈둥대지 말라고 배웠다. 정말 그럴까. 대한민국 노동시간은 세계 최장이다. 꼭 그래야만 살 수 있다면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좀 빈둥대면 어때서.
“아이 낳고부터 ‘빈둥’이라는 말을 좋아하게 됐어요. 이것저것 유아용품 사라는 유혹이 많던데, 굳이 사야 하나 싶더라고요. 빈둥거리는 게 꼭 게으름은 아닌 거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빈둥은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드는 거에요. 뭘 해야 할지 생각하지 말고 뭘 안 해도 될지 생각하는 것, 돈을 쓰지 않아도 되게끔 하는 것. 이거야말로 지금 삶에 필요한 혁명이구나 싶어요.” (이은진)
“촌에서 빈둥은 금기어죠. 거의 욕이에요. 동네 분들이 처음엔 저희를 ‘거기 그 사람들’로 불렀으니까요. 요즘은 ‘농땡이들 오늘도 농땡이 치나보네” 그래요. 저희 사는 모습이 언어 감각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됐나봐요. 농사짓던 사람도 관두는데 저희는 어쨌든 계속 농사 짓고 있으니까요. 잘 짓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이해광)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없진 않죠. 그건 어디에 살든 마찬가지 아닌가요. 삶의 전반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경제적 문제일 수도 있고요. 빈둥대며 살고 싶다는 건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죠. 그렇게 살라고 강요할 수도 없고 왜 못하냐 자책할 필요도 없어요. 저는 시골에서 빈둥대며 살 방법으로 농사를 선택한 거고. 20대 시절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이냐’ 를 고민했어요. 지금도 답을 찾는 중이고요.”(채홍필)
이들이 추구하는 ‘창조적 빈둥 생활’은 근면을 ‘강요’하는 사회를 향해 통쾌한 어퍼컷을 날린다.그것은 일과 놀이, 노동과 휴식이 균형을 이루는 삶이다. 농사로 자립할 수 있을지, 빈둥 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지는 더 두고 봐야 알겠지만 10년 공부 때려치우고 농부가 된 은석씨는 블로그에 이렇게 썼다. “빈둥에는 현대사회를 꼬집는 매력적 기운이 흘러 넘칩니다. 그래서 남자 4호는 빈둥을 실천하려고 합니다. 일단은 때로는 빈둥대고 때로는 부지런히 지내면서 적절한 균형을 찾아봐야겠습니다. 강요된 근면에서 빈둥으로, 하지만 빈둥을 성실하게.”
이들이 사는 모습은 ‘빈둥생활연구소’ 네이버 블로그와 페이스북에서 엿볼 수 있다. 온라인 직거래 장터 ‘빈둥은장날’을 운영하며 직접 농사지은 것과 이웃 소농들이 생산한 것을 판다. 현재 빈둥은 응원군이자 동지가 되어 줄 ‘농땡이밴드’ 신규 회원을 30일까지 모집 중이다. 회원에게는 1년간 농산물 꾸러미를 보낸다. 함양으로 초대해 지리산 둘레길을 걷거나 같이 놀고 일을 시키기도 한다. 함양=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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