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4월 29일, 히말라야의 바람은 거셌다. 베이스캠프를 떠난 지 23일 째, 지현옥은 베이스3에서 등반대장 엄홍길의 뒤를 이어 정상 정복에 나섰다. 산스크리트어로 ‘수확의 여신’이라는 의미의 안나푸르나는 8,000m 이상 히말라야 14좌 중 높이는 낮지만 예측불허의 기상과 난코스로 악명이 높았다.
“홍길이 형, 어디가 정상이야?” 40세 미혼 여성이었던 그는 엄홍길 대장을 형이라 불렀다. 뒤처지는 지현옥에 앞서 나가 다섯번 도전 끝에 안나푸르나 정상을 밟은 엄 대장은 감격의 눈물을 쏟아낸 후 하산을 서두르는 길이었다. 정상 방향을 가리키며 휴대하던 무전기를 건네주는 엄 대장을 향해 지현옥은 걱정 말라는 듯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새까만 얼굴과 하얀 치아가 그날따라 도드라져 보였다.
그 모습이 마지막일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오후 2시, 정상정복에 성공했다는 무전에 흥분했던 것도 잠시, 시간이 흘러도 발자국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통신마저 두절됐다. 엄 대장과 대원들은 밤을 새며 기도했지만 그는 끝내 캠프로 돌아오지 못했다. 셰르파와 로프를 묶고 비탈진 눈비탈길을 내려오는 모습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후 두 사람은 안나푸르나에서 영원히 자취를 감췄다.
한국 여성산악계의 선구자이자 대들보였던 지현옥은 1959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청주 서원대 산악부에 들어가면서 운명처럼 산에 빠져 들었다. 인생의 모든 우선순위를 산에 집중하던 그는 88년 ‘맥킨리 한국여성등반대’에 합류해 해발 6,194m의 북미 최고봉 맥킨리에 오르면서 세계적인 산악인으로 성장했다. 89년 안나푸르나, 90년 칸젠중카(8,588m)를 원정했으며 91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중국 쿤룬산맥의 무즈타그아타(7,546m)를 등정했다.
그리고 마침내 93년, 대한산악연맹 한국여성 에베레스트원정대 대장을 맡은 지현옥은 최오순, 김순주 2명의 대원과 함께 히말라야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에 감격의 태극기를 꽂았다. 한국산악사에 길이 남는 쾌거였다.
도전은 계속됐다. 97년에는 중국과 파키스탄 국경에 위치한 ‘빛나는 벽’ 가셔브룸 1봉(8,068m)에 올랐고 이듬해에는 2봉(8,035m)마저 단독 등정했다. 누구보다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던 그는 99년 엄홍길과 함께 스페인 바스크 팀에 합류해 안나푸르나 정상에 올랐지만 운명의 4월 29일, 수확의 여신 품속에 영원히 잠들었다.
한국 여성산악계는 2009년 스포츠클라이밍의 대표주자였던 고미영마저 히말라야 낭가파르파트(8,126m)로 떠나 보낸 후 14좌를 완등한 오은선만이 남아 계보를 잇고 있다.
2009년 남성산악인 박영석 대장마저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된 후, 한국 산악계는 정상정복을 우선시하던 등정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루트를 개척해 나가는 등로주의로 변화하고 있다. 이제 히말라야 고봉들이 거의 정복된데다 등반가들에 대한 각종 후원이 줄어든 것도 하나의 이유라 하겠다. 손용석 멀티미디어 부장 st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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