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대형산불 아니라서 문자 안 보내”
안전처, 산림청ㆍ지자체에 책임 전가만
주민들 “불바다 돼야 문자 보내나” 분통
황금연휴 막바지인 6,7일 강원 강릉 삼척 경북 상주 등 전국 곳곳에서 큰 산불이 잇따랐지만 국가 재난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긴급 대피령이 떨어지고 고속도로와 도심 아파트가 자욱한 연기로 뒤덮일 때까지 주민들한테는 재난문자 한 통 오지 않았다.
국가 재난 콘트롤타워인 국가안전처는 강원 강릉ㆍ삼척 산불이 강풍에 급속도로 번지는 상황에서도 긴급 재난문자를 발송하지 않았다. 안전처가 발송한 문자메시지는 강릉 산불 발생 30분 뒤인 6일 오후 4시 4분 단 하나. 그것도 이미 건조 경보가 내려진 강원도내 5개 시ㆍ군 지역에 발송한 화재예방 홍보 문자에 불과했다.
안전처가 운영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역시 조용했다. 트위터에 산불 발생 다음날인 7일 오전 6시 39분 산불 예방·행동 요령을 담은 한가한 내용의 동영상을 올린 게 전부였다. 긴급 문자송출 기준에 ‘산불’이 포함돼있지만, 국민을 위한 ‘경보음’은 울리지 않았다.
산림청과 기상청, 한국도로공사 등 관련 정부 기관에서도 어느 누구 하나 안전처에 긴급 재난문자를 요청하지 않았다. 이들 기관이 긴급 재난문자 송출을 요청하면 문자 송출이 가능하다.
강원도 등 지자체들도 긴급 재난문자를 발송하지 않았다. 대신 마을 이장을 통해 대피 방송을 하거나 공무원과 의용소방대원이 직접 주민을 찾아 다니며 대피를 돕는 아날로그식 대응으로 일관했다.
강원도는 이번 산불이 ‘대형산불’이 아니어서 재난문자 송출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형산불 기준이 ‘피해면적 100㏊이상’이라 문자 발송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화재 상황을 알려주는 정보 제공이 늦어지면서 시민들은 불안에 떨며 발을 굴렀다.
영동고속도로 강릉 나들목(IC)인근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정은미(42ㆍ여)씨는 “불씨가 주유소 인근 10여m까지 옮겨 붙었는데 재난문자와 방송은커녕 소방인력과 장비가 부족해 직원들과 1시간 가량 사투를 벌어야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 강릉 시민은 “왜 큰 불이 난 강릉 주민인데 문자 하나 받지 못 할까요. 불바다 되기 직전에는 받을까요?”라고 당국을 성토하는 글을 온라인에 올렸다. 또 다른 네티즌은 “집 앞까지 불이 나도 대피문자 한 통 오지 않을 것 같아 불안해서 잠도 안 온다”고도 했다. 강릉 지역의 경우 산불이 발생한 첫날 화재 상황은 주민들에 의해 주로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전파됐다.
대형 재난이 발생할 때 마다 미온적이고 소극적인 대처로 비판을 받아온 안전처는 산림청이나 지자체 등 다른 기관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
안전처 관계자는 “산불은 특정 지역에 국한돼 발생하는 것이어서 현장에서 요청이 있어야 재난문자를 발송할 수 있다”며 “현장 상황을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안전처 자체 판단만으로 문자를 발송하기는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안전처 재난문자 송출 기준에 어느 정도 규모의 산불에 문자를 발송해야 하는지 명확한 기준이 없는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국가안전처는 강릉 산불 발생 다음날인 7일 오전 8시에야 이성호 차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산불 대책지원본부’를 가동했다. 안전처는 빠른 복구를 돕기 위해 강릉 10억원, 삼척 10억원, 상주 7억원 등 총 27억원의 특별교부세를 지원하기로 했다.
강릉=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한덕동 기자 ddhan@hankookilbo.com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