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년시절을 보낸 곳은 부산 영도다. 이곳엔 6·25전쟁 당시 북쪽에서 내려온 피난민들과 가난을 피하고자 도시로 온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봉래산 자락을 에워싸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 사이로, 어려운 이웃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살던 정다웠던 삶의 터전. 그 시절 나에겐 집 밖의 좁은 골목길이 유일한 놀이터이자 운동장이었다. 동네친구와 해질녘까지 술래잡기며 고무공 차기, 오징어 게임을 하며 온몸이 새까매질 정도로 정신 없이 놀았다. 학교 가는 길은 언제나 아슬아슬했다. 좁은 골목길을 벗어나면 산복도로라고 불리는 도로가 나오는데 버스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 만큼 공간이 협소했다. 그랬던 곳이 요즘에는 부산을 찾는 관광객이라면 한 번쯤 찾아가고픈 관광지로 거듭났다.
지난 황금연휴에 고향집을 찾아갔다. 오랜만에 이른 새벽에 일어나 골목길을 따라 걸으며 추억을 되짚어 보았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를 지나 한참을 걷다 보니 산복도로 한가운데로 태양이 떠올랐다. 황사 탓에 뿌옇게 변한 하늘 사이로 해가 솟아오르자, 일터로 향하는 직장인들과 산책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19대 대통령이 된 문재인도 이곳 영도에서 당시 국민학교를 나왔다. 그때는 누구나 그러했듯이 가난한 부모 밑에서 살며 성당에서 주는 배급으로 끼니를 해결했다고 전해온다. 그의 자서전 ‘운명’에선 “어릴 적 가난의 기억은 그대로 삶의 교훈이 됐다. 더 이상 가난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혼자 잘 살고 싶지도 않았다. 어려운 시기에 우리가 받았던 도움처럼 나도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었다”고 그 당시를 회고한 바 있다. 대통령이 된 그는, 이제 자신이 꿈꿔왔던 ‘다 함께 잘사는 세상’을 실현할 기회가 왔다. 세상 곳곳을 고르게 비추는 산복도로에 떠오르는 태양 빛처럼 모든 국민을 공평하게 보듬는 대통령이 되길 간절히 기원해본다.king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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