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상승’에 위기감 느낀 듯 확실한 文 쪽으로
安ㆍ洪 지지율 근접 순간 여론조사 공표 금지 돌입
결국 막판에 전략적으로 ‘정권 교체’ 카드 선택
5ㆍ9 대선에서 호남이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에게 표를 몰아준 것으로 나타났다. 문 당선인과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등 ‘정권 교체’ 카드 두 장을 쥐고 있다가 막판 구여권 보수 진영의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추격할 조짐을 보이자 더 확실한 쪽에 몰표를 던진 것으로 분석된다.
10일 0시30분 기준 지역별 개표 현황에 따르면, ‘진보의 심장’ 광주에서 문 당선인은 득표율 58.9%를 기록해 32.9%를 얻는 데 그친 안 후보를 26.0%포인트 차이로 따돌렸다. 전남(58.6%대 32.5%)에서도 두 후보의 득표율 차는 비슷했고, 전북(64.4%대 24.8%)에서는 거리가 더 멀찌감치 벌어졌다. 같은 시간 두 후보의 전국 득표율 간 차이(13.1%포인트)보다 훨씬 더 큰 격차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 시작(3일) 직전 조사에서도 문 당선인이 해당 지역에서 선두를 달리긴 했지만, 실제 득표 결과처럼 압도적이지는 않았다. 한국갤럽이 1, 2일 전국 유권자 1,015명을 상대로 벌인 여론조사의 경우 광주ㆍ전라에서 문 당선인(44%)과 안 후보(29%) 간 지지율 격차는 15%에 불과했고, 같은 기간 리얼미터(CBS 의뢰)의 1,016명 대상 조사에서도 문 당선인 지지율은 실제 득표율보다 10%포인트가량 모자란 50.7%에 머물렀다.
전문가들은 홍 후보의 상승세가 호남 유권자들의 위기감을 자극한 것으로 분석했다. 지지율을 알 수 없는 ‘깜깜이 기간’ 전까지 문 당선인이 40% 안팎 지지율로 안정적인 선두를 유지하는 가운데, 안 후보와 홍 후보가 2위를 놓고 오차범위 내 접전 중이라는 게 여러 여론조사의 공통된 결과였다. 그러나 두 후보의 흐름은 달랐다. 주요 정당 후보들이 선출된 4월 초부터 2주 간 지지율 급등으로 한때 문 당선인과 양강 구도를 형성했던 안 후보는 공식 선거운동 시작 뒤 일부 지지층이 이탈하며 내리막을 타고 있었던 반면, 보수층의 구심으로 떠오른 홍 후보는 가파른 상승세였다. 두 후보 지지율이 만난 순간 깜깜이 기간에 돌입한 것이다.
실제 초반 개표 결과 부산ㆍ울산을 제외한 영남에선 홍 후보가 득표율 1위를 기록했다. 0시30분 기준 경북에서 52.7%, 대구에서 47.2%, 경남에서 39.4%를 각각 획득했다. 부산에서도 33.8%를 확보해 37.6%로 1위를 차지한 문 당선인을 바짝 추격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대통령 탄핵 정국이 지속되면서 야ㆍ야 구도가 굳어지는 분위기일 때까지만 해도 안 후보에게 적잖은 표를 나눠줬던 호남 민심이 홍 후보가 보수표를 결집하며 치고 올라오자 위기감을 느끼고 확실한 정권 교체 카드에 표를 몰아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대선 전 6일 동안 홍 후보가 일으킨 ‘홍풍(洪風)’이 거셌지만 깜깜이 기간에도 문 당선인이 지켜온 ‘대세론’은 무너지진 않았다. 아들 특혜 채용 의혹과 ‘패륜 집단 결집’ 발언 논란등이 악재로 작용했지만, 대세를 무너뜨릴 정도는 아니었던 셈이다. 결과적으로 홍 후보는 기세를 살리지 못했다. 당내 친박(親朴)계 핵심 사면 결정에 따른 내홍과 ‘장인 영감탱이’ 막말에 발목 잡힌 모양새다. 안 후보는 선거 막바지 도보 유세까지 나섰지만 지지율 급등 뒤 조정과 TV 토론 부진 등에 따른 하락세를 막지 못하고 고배를 들었다.
김춘석 한국리서치 여론조사본부장은 “깜깜이 기간 동안 보수 결집으로 홍 후보가 추격하고 ‘소신 투표’ 기류에 문 당선인 대세론이 약간 흔들리긴 했지만 대세를 뒤집을 정도의 돌발 변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정희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높은 사전투표율로 문 당선인이 대세론을 굳힌 상태에서 부동표가 홍 후보와 안 후보로 분산됐다”며 “문 후보가 다자 구도 덕을 본 셈”이라고 설명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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