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5.11
미 MIT 부설 국제관계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64년부터 국방부 국제안보팀의 전략 작전 1급 기밀문서 작업을 돕던 대니얼 엘스버그(Daniel Ellsberg, 1931~)는 69년 8월 펜실베이니아 해버퍼드(Haverford) 칼리지에서 열린 한 반전 집회에 찾아가 한 청년(Randy Kehler)의 연설을 듣게 된다. 징집을 거부해 곧 실형을 살게 됐다는 그 청년은 “그래서 무척 흥분된다”고, “곧 내 친구들과 감옥에서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엘스버그는 하버드대 경제학부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윌슨 펠로로 캠브리지에서 수학한 뒤 대학원을 마치고 해병 장교로 자원 입대해 중대장으로 복무했다. 57년 제대해 하버드 펠로로 공부하며 미 국방부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의 핵전략 분석가로 일했고, 62년 하버드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딴 뒤 내리 펜타곤과 인연을 맺어왔다. 냉전을 애국이라 믿었고 전쟁을 숭고한 희생이라 여겼던 그는 강연장에서 돌아온 뒤 근 한 시간을 울었다고 훗날 밝혔다. 그는 기밀 서류들을 통해 이미 전쟁의 불의와 거짓을 강연장의 그들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가 강연장을 찾은 건 결단의 용기가 필요해서였다.
그는 그 해 말, 랜드연구소 동료(Anthony Russo)와 함께 자신에게 열람이 허용된 기밀문서 7,000여장을 은밀히 복사했다.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의 책임 하에 ‘미-베트남 관계: 1945-1967’이란 제목으로 작성된 그 극비문서는 트루먼~존슨의 4대 행정부가 인도차이나 전쟁을 어떻게 기획하고 준비하고 개전ㆍ확전시켜 왔는지 기록한 자료였다. 40년대 프랑스 군사원조와 남베트남 탈환 작전, 통킹만 사건 조작…. 미국 정부는 국민과 의회를 속였다.
71년 6월 13일, 그의 제보로 뉴욕타임스가 ‘보고서’ 연재 보도를 시작한 직후 닉슨 행정부가 법원을 통해 시도했던 보도 통제와 재판, 엘스버그에 대한 간첩ㆍ절도 혐의 기소…. 최장 115년 형이 가능했던 그의 재판은, 직후 터진‘워터게이트’ 조사과정에서 실체가 드러난 닉슨의 ‘배관공들’(권력누수를 막기 위해 백악관이 전직 정보요원들로 꾸린 사조직)이 불법 도청 등으로 증거자료를 수집한 사실이 들통나면서 소 자체가 기각됐다. 그게 1973년 오늘(5월 11일) 일이었다. 엘스버그는 지금도 반전 인권 평화운동가로 활약하고 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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