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패러다임이 바뀐다] 노동분야
文, 근로환경 개선·노동 존중 무게
보수 정권 노동유연화 폐기 수순
노동인권 변호사 출신의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취임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노동 정책 패러다임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정책이 노동 유연화를 골자로 하는 ‘노동 개혁’에 방점이 찍혀있었다면 문재인 정부는 근로환경을 개선하고 사회적 타협을 강조하는 ‘노동 존중’에 무게를 싣고 있다. 특히 박근혜정부의 노동 관련 각종 행정지침을 폐기하겠다는 공약은 여야 합의 없이 행정부 재량으로 단행할 수 있는 것이어서 급격한 방향 전환이 이뤄질 수도 있다.
10일 대선 공약집 등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 주당 노동시간을 68시간으로 해석한 고용노동부의 행정 해석을 폐기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는 문 대통령의 ‘일자리 대통령 100일 플랜 13대 과제’ 중 5번째 과제로 최우선 이행 과제 중 하나다. 지금까지 고용부는 주당 최장근로시간을 주 40시간과 연장근로 12시간, 휴일근로 16시간 등 68시간으로 유권 해석을 해왔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주당 근로시간을 40시간으로 정하고, 12시간 범위 이내에서 연장 근로를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고용부는 1주를 주말을 제외한 5일로 해석하는 변칙적인 방식으로 휴일근로 16시간을 더해 주당 최장 근로시간을 68시간까지로 해석했다. 이 때문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은 대선 직전인 지난 3월, 아예 법에 1주일을 7일로 보고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명시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잠정 합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휴일근로 수당 문제 등 세부 내용에 이견이 있어 개정안 합의는 대선 이후로 미뤄진 상태다.
법을 개정하지 않아도 행정해석을 폐기하면 52시간 근로 단축을 실현할 수 있게 되지만,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을 어떻게 무마시킬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근로시간이 52시간으로 줄게 되면 기업 입장에서는 채용을 늘려야 하는 부담이 생기고 일부 중소기업 근로자들 역시 초과근로를 통한 임금 보전을 받기 어려워진다”며 “적응 기간을 두고 진행하는 게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도 이런 우려를 감안해 근로시간 단축 피해기업에 대한 보완대책도 동시 시행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지난해 1월 도입돼 노동계의 거센 반발을 샀던 ‘양대 지침’도 폐기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는 저성과자 해고를 통해 노동 유연화를 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양분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할 수 있다는 명분으로 ‘공정인사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변경지침’을 도입했다. 공정인사지침은 ▦직무능력과 성과중심 인력 운용과 ▦근로계약 해지 등 2개 부분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중 근로계약 해지 부분과 관련해 정부가 ‘쉬운 해고를 부추긴다’는 비판이 비등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근로자가 심각한 비위 행위를 저질렀을 때 할 수 있는 ‘징계해고’와 긴박한 경영상 어려움이 있을 때 할 수 있는 ‘정리해고’ 두 가지만 명시하고 있는데 정부가 법이 아닌 자의적 지침으로 일반해고 도입을 강행한다는 지적이었다. 당시 고용부는 ‘사업장에 극히 예외적으로 업무능력이 현저히 낮거나 근무성적이 부진해 주변 동료 근로자에게 부담이 되는 경우 등에만 해당하며 대다수 성실한 근로자는 일반해고(통상해고)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주당 최장 노동 68→52시간 추진
정부 개별기업 단협 손보기도 제동
취업규칙 해석 및 변경지침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정년연장과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해 만든 지침이다. 현행법은 근로자에 불리한 취업 규칙 변경은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정하고 있는데, 임금피크제 도입에 제동이 걸릴 위기에 처하자 지침을 만들어 임금피크제는 동의를 받아야 하는 취업규칙 변경의 예외로 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양대지침 폐기”를 누차 밝혀온 만큼 새 정부의 의지만으로도 얼마든 폐기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통상임금 소송 사태처럼 정부가 법이 아닌 지침으로 무리하게 개입할 경우 혼란을 야기할 수밖에 없는 만큼 폐기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개별기업 단체협약에 대한 손보기 역시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고용부는 2015년 4월부터 상시 100인 이상 사업장의 노사 간 단체협약에 대해 위법하거나 불합리한 사항에 대해 시정 지도에 나서고 있는 상황. “일부 노조의 일자리 세습 등을 막아야 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이런 자의적 단체협약에 대한 시정명령 등 행정지도를 중단하겠다고 공약했다. 다만 법에 어긋난 단협에 대한 정부 개입 자체는 불법이 아니고, 문 대통령 역시 중단 대상을 ‘자의적’ 행정지도로 한정한 만큼 정부의 단협 개입이 원천 차단된 것은 아니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