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벌고 잘 살기’(슬로비, 2015)라는 책을 쓴 김진선(37)씨는 인천 검암동의 ‘우동사’에 산다. 우동사는 ‘우리동네사람들’의 줄임말. 귀촌을 꿈꾸던 청년 6명이 2011년 9월 한집에 사는 것으로 시작해 현재 다세대 주택 다섯 집에 30여 명이 우동사 이름으로 살고 있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이 그를 우동사로 이끌었다. 10여년 회사 생활을 접고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일과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다 인연을 맺었다. 석 달 간 함께 살아보는 프로그램에 참가했다가 한식구가 됐다. 우동사에서 산 지 1년 반, 그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여서 든든하다”고 말한다.
우동사는 단순한 공동주거를 넘어 좋은 삶을 추구하는 실험공동체다. 멤버들은 적게 일하고 적게 쓰지만 많이 누리는 행복한 삶을 꿈꾼다. 서로 나누고 채워 주며 어울려 살기에 상상할 수 있는 목표다. 실제로 소비는 줄었지만 삶의 질은 높아졌다. 최근에는 병원이나 약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을 지키는 방법을 공부하는 모임도 시작했다. 조정훈(37) 우동사 대표는 “초창기 슬로건은 ‘안심되는 룰루랄라 실험공동체’였다”고 소개하면서 “우동사는 따뜻한 삶을 회복하는 공동체”라고 설명한다.
우동사 집 1호는 ‘당장 귀촌은 어려우니 당분간 함께 살면서 준비해 보자’고 구한 방 세 칸짜리 복층 빌라다. 각자 자취방 보증금을 빼고 조 대표와 임정아(35)씨가 결혼하면서 받은 신혼부부 대출을 합쳐 장만했다. 두 번째, 세 번째 집은 같은 빌라 옆집과 아랫집이고 나머지 두 집은 가까운 딴 건물에 있다. 멤버들 나이는 23~49세, 평균 30대 중후반이다. 3분의 2는 1인가구이고 부부도 두 쌍 있다.
집 걱정이 없으니 좋기는 한데 함께 살면 불편하지 않을까. 멤버들은 불편보다 안정감이 크다고 말한다. 일단 생활비가 확 줄었다. 집 사는 데 들어간 대출 원리금 상환에 25만원 정도와 생활비 10만원을 합쳐 1인당 월 35만원 정도만 내면 된다. 생활비에는 전기ㆍ수도 등 공과금 외에 식비도 포함돼 있다. 조 대표는 “10명이 먹을 나베요리를 하려고 맥주에 아이스크림까지 곁들여 재료를 푸짐하게 샀는데도 1인당 4,000원밖에 안 되더라”며 “따로 살 때처럼 다 먹지 못해 버리는 음식이 없고 먹을 것도 더 많이 들어오는 것 같다”고 말한다. 우동사는 집집이 돌아가며 매주 한 번 정도 밥상 모임을 한다. 같이 이야기 하고 고민이나 불편도 털어 놓으며 상호 신뢰와 이해를 다져 왔다. 공동 생활 규칙을 두고 있지는 않다. 규칙을 정하면 오히려 불편해질 수 있어서다. 대신 서로 배려하고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며 이야기를 통해 모든 문제를 풀어간다.
모여 산 지 6년,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소위 ‘백수’가 늘어나는 현상이다. 주거가 안정되면서 생활비가 줄어들자 돈 벌려고 억지로 일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덕분에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현재 출퇴근 하는 직장인은 7명 정도. 나머지 20여 명은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일을 하며 산다. 디자이너, 목수, 비영리단체 활동가, 정당 활동가, 소설가에 영화배우도 있다.
얼마를 벌어야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조 대표는 “궁금해서 멤버들에게 물어 봤더니 월 70만~80만원 정도면 사는 데 별로 불편하지 않다고 하더라”며 “우동사에서는 누가 회사를 그만두면 축하 파티를 해준다”고 전한다. “직장 다닐 때는 스트레스 받으면 뭔가 사서 해소하곤 했는데 여기서는 그럴 필요가 없어요. 동네 안에서 친구들끼리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일본어 공부하고 싶으면 학원 대신 일본어 잘 하는 친구한테 배우고, 따로 살면 다 사야 하는 물건도 서로 공유할 수 있고요. 돈을 안 쓰려고 해서가 아니라 관계망이 회복되면 삶의 많은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 같아요. 우동사의 핵심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좋은 관계망이에요.”
우동사에 산 지 3년 된 노숙경(35)씨는 약사다. 언제든 떠날 수 있는 단순한 삶을 살고 싶다는 그는 “혼자일 때는 다르게 살아볼 엄두가 나지 않는데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힘이 된다”고 말한다. 김진선씨도 “개인으로 고립돼 있는 바깥의 친구들과 달리 여기서는 함께 얘기할 사람들이 있어 좋다”고 보탠다. 임정아씨는 “생활이 안정되니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자꾸 묻게 된다”고 말한다.
우동사에는 아기도 있다. 우동사에서 만나 결혼한 부부에게서 태어나 갓 두 돌이 지난 ‘쑥쑥이’는 옆집, 아랫집까지 15명의 이모, 삼촌에게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고 있다. 쑥쑥이가 100일 되던 날, 우동사 식구들이 열어준 잔치에서 아기 부모는 따뜻한 편지를 받았다. “네가 우동사에 짠 나타나면서 우리집 공기가 참 따뜻해졌단다. (중략) 나는 요즘 우리가 함께 사는 게 너무 좋단다.” 쑥쑥이 엄마는 우동사 소식지에 이렇게 썼다. “같이 살지만 아이는 내가 키운다, 육아는 엄마, 아빠 몫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이 비단 부모만의 일이 아니라 자신이 사는 공동체에 꼭 필요한 일로 생각해주고 있었구나 하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중략) 그런 공감과 이해 속에서 나의 육아는 더욱 행복해졌다.”
주거공동체로 출발한 우동사는 이제 우동사와 친구들의 마을공동체다. 우동사에 살다가 근처에 집을 구했거나 우동사가 좋아서 한동네로 이사온 사람까지 합치면 50명쯤 된다. 같이 카페와 맥줏집을 운영하고 동네 소식지도 낸다. 텃밭을 가꾸고 옥상에서 닭도 키우면서 재미나게 살고 있다.
우동사 집에서 0.4km 떨어진 커뮤니티펍 ‘0.4km’는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다. 낮에는 독서 모임을 비롯해 다양한 모임이 열리고 저녁에는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수제맥주를 판다. 작은 음악회, 악기 배우기, 그림 그리기, 수공예품 만들기, 영화 상영, 주말 벼룩시장 등으로 갈수록 쓰임새가 많아지고 있다. 공동출자로 서울 서초동에서 시작한 카페오공은 서초동을 떠나 불광동 서울시청년허브의 창문카페를 위탁 운영 중이다. 지난해까지 4년 동안 강화도에서 함께 농사를 짓기도 했다. 기계가 들어가지 못해 놀리던 논 500평에서 재미 삼아 한 것이 2,000평까지 늘었다. 농번기에는 ‘논데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아 공동노동 품앗이를 했다. 주도하던 멤버가 일본에 가 있게 돼 올해는 쉬고 내년에 재개할 예정이다.
우동사에는 ‘가:출’이라는 공동주거 체험 프로그램이 있다. ‘집을 나온다’, 부담 없이 ‘가볍게 출발해본다’는 뜻이다. 3개월 간 한집에 살아보고 좋으면 우동사에 남는다. 한 번에 6~8명씩 지금까지 두 번의 가:출이 있었다. 마침 우동사 집 하나가 비게 되어 가:출 3기가 5월 말부터 함께살기에 들어간다. 참가자들은 주 1회 밥상모임 등을 하면서 ‘함께 산다는 것’을 주제로 삶을 나눈다.
1년 가까이 논의해 온 ‘백수학교’도 연말쯤 시작할 예정이다. 조정훈 대표는 “우동사에 공감하는 친구들이 늘고 있어서 그간의 실험을 바탕으로 하나의 흐름을 만들고 싶다”며 “한 달에 얼마를 벌면 살 수 있나, 생활이 안정되고 시간이 늘어나면 무엇을 하며 살까, 삶의 기술과 사람답게 산다는 것, 즐겁게 할 수 있고 남에게 보탬도 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백수학교의 주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천=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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