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는 대통령 한 사람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철저하게 가려진 채 권위주의에 짓눌린 암울한 ‘국가보안시설’이었다. 그런 청와대가 장막을 걷고 ‘소통’의 공간으로 변신하는 데 단 3일이면 족했다.
대통령이 직접 시민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고 국무총리 인선 배경도 국민들에게 직접 설명했다. 경호를 최소화하고나니 대통령 주변엔 함께 셀카를 남기려는 시민들이 몰렸고, 청와대 직원들은 구내식당에서 대통령과 함께 식사를 했다.
문재인의 청와대가 ‘소통’과 ‘탈 권위’에 발 벗고 나선 데는 ‘불통’을 이어가다 ‘파면’에 이른 박근혜 정부의 교훈이 큰 영향을 주었다. 국정농단 사태를 통해 군림하는 대통령, 구중궁궐 속에 숨은 신비주의 대통령 대신 소탈하고 열린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3일은 박 전 대통령의 취임 직후 3일과 대조적이다. 청와대사진기자단이 기록한 사진을 통해 그 차이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박근혜와 문재인, 18대와 19대 대통령의 취임 직후 3일을 비교해 봤다.
#1 취임식 [7만명 VS 300명]
2013년 2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열린 박 전 대통령의 취임식은 역대 최대인 7만여 명이 참석했다. 많은 국민들이 ‘대 통합’을 내세운 첫 여성 대통령을 축하하고 성공을 기원했으나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4년 만에 그 신뢰를 거두어야 했다.
19대 대선이 대통령 궐위에 따른 보궐선거로 치러진 까닭에 문재인 대통령은 인수위 기간 없이 당선 후 곧바로 취임선서를 했다. 10일 국회의사당 로텐더홀에서 약식으로 열린 취임식엔 불과 300여명만이 참석했지만 적폐 청산과 산적한 외교현안 등 새 대통령을 향한 국민의 기대와 희망은 어느 때보다 크고 엄숙했다.
#2 청와대 가는 길 [오방낭 VS 시민]
취임식을 마친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로 향하던 중 광화문 광장에 잠시 멈췄다. 당시 대통령은 직접 거대한 오방낭 주머니를 열고 ‘희망이 열리는 나무’ 앞에서 소원을 골라 읽었다. ‘우주와 인간을 이어주는 기운을 가졌다’는 오색의 전통 주머니 오방낭은 훗날 국정농단 주역인 최순실씨가 취임식까지 깊이 관여했다는 의혹의 근거로 지목됐다.
오방낭 행사 후 박 전 대통령이 곧바로 청와대로 향한 데 비해 문 대통령은 청와대로 향하던 중 차를 세워 시민들에게 향했다. 대통령이 예정에 없이 차를 세우고 시민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는 동안 경호 및 수행 관계자들이 당혹스러워 하기도 했다.
#3 경호 [손목 차단 VS 셀카 삼매경]
2013년 2월 26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 경축 행사에서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인 박 전 대통령의 모습과 12일 인천공항에서 시민들과 자유롭게 사진 촬영을 하는 문 대통령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이낙연 국무총리 내정자는 11일 “(문 대통령이) 경호실장에게 ‘경호 좀 약하게 해달라’는 말을 신신당부 하는 것을 들었다”고 말했다. 대통령 경호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지나칠 경우 대통령과 시민들이 만나는 접점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시민들의 사진 촬영 요청에 기꺼이 응하며 소통하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다.
#4 기자회견 [홍보수석 VS 대통령이 직접]
문 대통령은 취임 첫날인 10일 직접 기자회견에 나서 국무총리, 국정원장 후보자 및 신임 비서실장의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그동안 청와대에서 단 한번도 볼 수 없었던 장면이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첫날 이남기 당시 홍보수석비서관이, 이틀 뒤엔 윤창중 대변인이 형식적인 브리핑을 하며 불통을 예고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5 축하연 [높은 사람들과 VS 낮은 사람들과]
인수위 등 준비 절차나 기간 없이 출범한 만큼 문재인 정부는 취임 축하 만찬 등 경축행사도 생략했다. 고위직 인사 또는 외국 사절단과 함께 축배를 든 과거 대통령들과 달리 문 대통령은 청와대 구내식당에서 직접 배식을 받아 기술직 직원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했다.
#6 수석들과 함께 [경직 VS 자연스러움]
박 전 대통령은 취임 3일째 첫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했다. 허태열 당시 비서실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은 고개를 숙인 채 대통령의 발언을 수첩에 받아 적었다. 대통령이 지시하고 참석자들은 받아 적는 경직된 회의 모습은 박근혜 정부 내내 볼 수 있었다.
문 대통령은 11일 조국 민정수석 등 신임 수석비서관, 비서실장 등과 함께 오찬을 한 후 셔츠 차림으로 청와대 경내를 산책했다. 한 손에 음료를 들고 자유롭게 대화하는 대통령과 참모들의 모습과 함께 청와대 경내 풍경이 자연스럽게 공개됐다.
#7 대통령의 옷 [시선집중 VS 내 옷은 내가]
박 전 대통령은 취임 첫 날 여러 종류의 의상을 갈아 입었다. 박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해외 순방 시 다양한 의상을 선보여 화제가 됐고, 정치적 메시지나 의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패션을 활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옷 색깔부터 디자인, 제작까지 최순실씨가 관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통령의 패션은 빛이 바랬다.
문 대통령은 11일 수석비서관들과의 오찬 직전 재킷을 벗겨주려는 청와대 직원을 향해 웃으며 “제 옷은 제가 벗겠다”라고 말했다. 그리곤 직접 재킷을 벗어 의자 등받이에 걸쳤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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