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티大 학위 수여식 연설서
자신 비난한 이들 싸잡아 공격
코미 파면도 독단적 결정인 듯
차기 FBI 국장 후보군도 논란
WP “백악관 결정 시스템 붕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결국 파국으로 향하는 단추를 누른 것일까. 미국 정치권이 제임스 코미 연방수사국(FBI) 국장 파면 후폭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차기 국장 인선을 언급하고, 공개석상에서 자신을 향한 비판자들의 공격을 비꼬는 발언을 하는 등 철저한 ‘독선의 정치’를 이어가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리버티대학 학위 수여식 참석차 출발하기에 앞서 기자들과 대화 도중 이르면 다음 주 중에 차기 FBI국장 인선이 발표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FBI국장 후보로는 현재 국장대행을 맡고 있는 앤드루 매케이브 부국장과 존 코닌(텍사스) 상원의원, 마이클 가르시아 뉴욕주 연방항소법원판사, 앨리스 피셔 전 법무부 차관보 등이 물망에 올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학위 수여식 연설에서도 ‘마이 웨이’를 선포하고 비판자들을 비꼬았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알고 있을 때에는 다른 사람의 말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뒤 “비판만 해대는 사람들은 다른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비평가가 되기보다 더 쉽거나 더 비참한 것은 없다“고 했다. 코미 전 국장 파면을 놓고 자신을 비판한 이들을 싸잡아 비난한 것이다.
언론의 비판은 격화하고 있다. 우선 차기 국장 후보진부터 논란거리다.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후보로 코닌 의원과 켈리 아요트(뉴햄프셔) 전 상원의원, 트레이 가우디(사우스캐롤라이나) 하원의원 등이 거론되자 “특정 당에 몸담은 선출직 공무원 출신을 국장으로 심는 것은 불편부당해야 할 FBI의 전통과 어긋난다”라며 FBI의 정치화, 이해상충 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코미 국장 파면을 둘러싼 막후사정이 드러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시스템을 무시한 채 독단적으로 통치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워싱턴포스트는 “백악관 내 극소수 측근만이 코미 국장 파면 결정을 알고 있었다”라며 백악관 시스템이 붕괴했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집권 초 행정명령 여러 개를 한꺼번에 쏟아내는 ‘충격과 공포’ 작전을 지휘했던 스티브 배넌 수석전략가마저 방송을 통해 코미 국장 파면 소식을 접했다는 후문마저 돌았다.
또 백악관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코미 국장을 파면하면 민주당으로부터 지지를 받을 것이라고 낙관했으나, 정반대 결과가 나오자 대변인실을 향해 비난을 퍼부으며 대책 마련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변인실은 ‘법무부 권고에 따랐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전략을 짜냈지만 정작 트럼프 대통령은 방송에 출연해 법무부 권고에 상관없이 코미 국장 경질을 결심했다고 발언해 버렸다. ‘최종 결정권’에 집착하고 자신의 결정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트럼프의 성격이 더 큰 정치적 위기를 부르는 양상이다.
집권 공화당도 벌집 쑤신 듯한 분위기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12일 캘리포니아주 코로나도에서 열린 공화당전국위원회(RNC) 모임에서도 트럼프정부를 향한 민심이 악화한 가운데 25일 몬태나주ㆍ다음달 20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하원 보궐선거와 2018년 중간선거에도 타격이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랜디 에번스 RNC위원은 “우리는 비정치인 대통령을 두고 있다. 그는 정당 입장은 아랑곳 않고 몰아붙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을 밀어 올린 공화당 지도부는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지난 10일 “민주당이 자신들이 비판해 온 코미 국장 경질에 불만을 품고 있다”며 코미 국장 경질을 옹호했다. 트럼프의 대선 경쟁자였던 마르코 루비오(플로리다) 상원의원도 13일 차기 FBI국장으로 코닌 의원이 거론되자 환영의 뜻을 표하는 등 트럼프 옹위에 나섰다. 사울 아누지스 전 미시간주 공화당의장은 “아직 집권 초 허니문 기간이라 트럼프가 많은 재량을 얻고 있지만 앞으로 6~8개월이 지나면 문제가 더 커질지 모른다”고 말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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