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불통’ VS ‘자랑스런 소통’
박근혜 전 대통령 국민과의 대화 전무
국회 방문 5번에 그쳐… 소통 실패하며 실정 거듭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원칙을 지키는 불통은 자랑스러운 불통이다”라고 한 적이 있다. 이제 와서 이 전 수석의 발언은 박근혜 정권 몰락의 이유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는 한 장면이 됐다. 정권 시작부터 끝까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가장 많이 쏟아진 주문이 소통과 협치였지만 끝내 박 전 대통령과 정권은 귀를 막아 버렸다. 국민의 목소리를 귓등으로 들은 박 전 대통령은 결국 임기도 채우지 못한 채 전국민적 저항에 부딪쳐 청와대에서 쫓기듯 나와야 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과 함께 가장 많이 들려 오는 조언도 소통과 협치다. 때문에 앞으로 불어 닥칠 여러 난관 앞에서 문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지 않는다면 정권의 성공은 장담할 수 없다.
대화 끊고 고립 자초한 박근혜 정부
박 전 대통령은 4년여의 재임기간 국민과의 양방향 대화를 단 한차례도 갖지 않았다. 3번의 신년 기자회견과 4번의 대국민담화 등 일방적인 소통이 전부였다. 그나마 신년 기자회견 때는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미리 질문순서와 내용을 짜고 한 사실이 알려져 도마에 올랐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150여회,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여회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과 만나는 현장에서 서민들과 직접 마주 앉아 쓴소리까지 경청했던 전례에 비춰보면 대통령의 소통 방식은 시대를 역행한 셈이다.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 회장인 지성우 성균관대 교수는 14일 “국민과 접촉면을 최대한 넓혀 정권을 유지해 나가는지 여부가 정치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이라면서 “그런 측면에서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완벽한 소통의 실패로 연구대상에 오를 정도다”라고 말했다.
소통이 단절되고 실정이 거듭되면서 박 전 대통령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도 기대에서 의혹으로 바뀌어 갔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 전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이 대표적이다. 박 전 대통령의 불통 고집은 입에 담기 민망할 정도의 항설까지 낳았다. 탄핵의 순간에도 그는 증권가 정보지 수준의 ‘찌라시’를 탓했고 국민을 원망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박 전 대통령은 국민들이나 전문가들과 만나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역량이 부족했던 것”이라며 “불통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국민들도 자연스레 지도자가 가진 능력에 회의적 시각이 커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국회와 언론은 적으로 간주
박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 국회를 찾은 것은 모두 5번이다. 3번은 연례 시정연설 때문이었고, 2번이 정국 타개를 위한 방문이었다. 지난해 11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국회를 찾았던 것을 제외하면, 진정으로 야당과의 대화를 목적으로 방문한 것은 취임 첫해인 2013년 9월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오히려 협치보다 대국민 여론을 이용해 야당을 압박하는데 더 주력했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있던 지난해 1월 신년기자회견에서 “이번에도 (법안을) 통과시켜주기 않고 계속 방치한다면 국회는 국민을 대신하는 민의의 전당이 아닌 개인의 정치를 추구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야당심판론’까지 제기해 협치에 찬물을 끼얹었다. 최진 원장은 “박 전 대통령은 야당은 둘째치고 김무성 대표, 유승민 원내대표 등 당시의 여당 수뇌부와도 불통이었다”며 “애초부터 국회와 대화 채널을 끊고 스스로를 포위시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심지어 자신과 뜻이 다르다는 이유로 여당 원내대표를 ‘찍어내기’도 했다. 그는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찍어내면서 ‘배신자’낙인까지 찍었다. 정윤회 문건 파동을 보도한 세계일보 경영진과 기자들을 고소하고,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행적과 관련한 기사를 쓴 가토 다쓰야(加藤達也) 일본 산케이신문 사회부 편집위원(당시 서울지국장)에 대한 검찰 수사를 밀어 붙이는 등 과거 군사정권에서나 볼 수 있었던 대언론관에 집착한 퇴행 또한 박근혜 정권의 침몰을 가속화시킨 이유로 꼽힌다.
“박근혜 대통령만 부정하면 된다”
전문가들은 “적어도 소통에서는 박근혜만 부정하면 된다”고 입을 모았다. 박근혜 정부의 실패를 역지사지의 교훈으로 삼으라는 주문이다. 나아가 내실 있는 소통과 대화도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단순히 대화로 끝날 것이 아니라 국민들과도 권한과 책임을 공유하는 협치의 본질적 의미를 살리는 쪽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행정학회장인 이용모 건국대 교수는 “취임 직후 나타난 격의 없는 모습들은 상당히 긍정적이지만 이런 모습들이 과연 국정에 어떻게 반영되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회와 언론과의 관계도 반대편부터 끌어안을 수 있는 포용력을 키워야 한다는 제언이다. 최진 원장은 “협치의 성공 여부는 반대파의 의견을 잘 청취하는 데 달려 있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대통령 스스로가 직언을 들을 각오를 해야 하고 주변 참모들도 사표를 낼 각오로 정확하게 상황을 전달해 대통령이 오판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환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박진만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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