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대표적 페미니스트
“강남역 사건 이후 한국 여성들
여성혐오 이슈에 적극적 대응
사회에 스며들면 점차 인식 변화”
한국 내 여성혐오 현상을 분석한 ‘여혐민국’을 발간, 주목을 받고 있는 페미니스트 주한나(37ㆍ필명 양파)씨는 16일 자신이 여성, 엄마라는 정체성을 지니고 지금의 모습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앞서 싸워준 페미니스트들 덕”이라고 했다. 그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1년의 변화’에 대해 “이제 시작”이라는 단 한 마디로 갈음했다.
먼저 주씨는 사건이 발생하고 1년 동안 여성들의 ‘태도’가 변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 여성들이 ‘여성혐오’ 이슈에 굉장히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며 “과거 여성들이 중심이 된 일부 온라인카페에서 폐쇄적으로 공유되던 불만이나 의견이 이제는 온라인 오프라인 할 거 없이 (거침없이) 유통되고 있다”고 했다. 한국일보가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 응해준 시민 중 10명중 8명이 20대 초ㆍ중반 여성이었다는 것,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밝히고 활동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는 점도 다 이 같은 현상의 방증이라는 것이다.
주씨는 이런 변화에도 여전히 “여성들이 정말 위험하냐” 등 사건에 공감하지 못하는 남성들이 많다고 평가한다. 다만 이런 남성들의 반응을 “당연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남성들은 평생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각종 불안과 공포를 느껴본 적이 없어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여성혐오적인 행동과 발언을 해도 사회생활에 큰 문제가 없어요. 그러니 굳이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분출된 여성혐오 이슈에 예민해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자신의 평가를 두고 “왜 일부 미친 남성의 행동을 남성 모두에게 적용하느냐”는 볼멘 소리가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주씨는 이주노동자가 악덕 한국인 사장을 욕하는 경우를 예로 들며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고 했다. “이주노동자가 한국인 사장 욕을 하면 이걸 듣던 한국인은 ‘한국 사람 다 그런 거 아니야’라고 할 수 있다. 내 욕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인 전체가 공격받은 거라 생각하고, 일부 한국인의 문제로 치부해버리는 식”이라는 게 그의 해석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반응을 이해는 하지만 일부 남성의 문제로 국한시켜도 인구의 반인 여성이 겪는 문제가 없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고 단언했다.
주씨가 “이제 시작”이라고 밝힌 것도 이처럼 ‘쉽게 변하지 않는 남성’들 때문이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1년 동안 여성혐오가 수면 위로 올라왔고 여성들이 행동하기 시작했지만, 남성 대부분의 인식까지 바뀔 정도로 ‘여성혐오는 문제다’라고 여기는 분위기가 여물진 않았다는 것이다. 주씨는 “그래서 그들을 억지로 바꾸려 하기보다, 지금 분위기를 유지하고 더욱 확산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여성들이 위험하다’ ‘이런 행동은 여성혐오다’ 라는 주장이 사회에 스며들어 ‘기준’이 되면, 변하지 않던 남성들도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변하는 날이 오게 된다”는 논리다.
주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부모와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이민을 갔고, 결혼 뒤 남편과 영국에 정착했다. 이후 EA와 마이크로소프트에 다니면서 옥스퍼드대 석사를 마치고 현재 아이 둘을 기르고 있다. IT, 사회, 정치,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글을 썼지만 페미니즘과 여성혐오에 목소리를 낸 후 필명 양파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페이스북 구독자만 2만5,000여명을 거느리고 있는 ‘페페미(페이스북에서 활동하는 페미니스트)’의 대표 주자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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