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규제 향방은
“지나친 규제가 오히려 ‘풍선 효과’를 가져와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강력한 부동산 규제 정책이 나올 수 있다는 전망에 한 부동산 전문가가 내 놓은 우려다. ‘부동산 규제=집값 안정’이라는 공식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부동산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 같아서 시기와 이슈, 인간 심리 등에 매우 큰 영향을 받는다”며 “시장이 한 번 달아오르면 강력한 규제책도 날뛰는 집값을 잡기 어렵고, 반대로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아무리 부양책을 쏟아내도 좀처럼 띄우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새 정부 출범 후 부동산 시장의 가장 큰 관심사는 ‘규제’다. 문 대통령이 대선 기간 부동산 보유세 인상, 임대소득 과세 강화, 전월세상한제 도입 등을 여러 차례 주장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집값 상승을 주도하는 부동산 투기 세력을 정조준한 조치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브레인’으로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비서관이 선임되면서 시장은 잔뜩 긴장하고 있다. 김 수석은 노무현 정부 당시 역대 가장 강력한 부동산 규제로 꼽히는 ‘8ㆍ31 부동산 대책’을 설계한 주역이다. 김 수석이 주거복지ㆍ도시재생 등 서민 경제에 초점을 맞춘 새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부동산 보유세 인상 등 민감한 규제를 내 놓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강력한 부동산 규제 정책에 대해 전문가들은 “시장 안정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부동산 규제 정책과 그 결과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로 추락한 부동산 시장을 띄워야 했다. 분양가 자율화와 양도소득세ㆍ취등록세 감면, 전매 제한 폐지 등 전면적인 부양책이 등장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전국 아파트값은 평균 38%, 서울 아파트값은 60%나 뛰었다. 과열된 시장을 넘겨받은 노무현 정부는 투기가 성행하는 부동산 시장을 잠재워야 했다. 노 전 대통령은 “하늘이 두 쪽 나도 부동산만은 잡겠다”며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집값이 급등한 강남ㆍ서초ㆍ송파ㆍ목동ㆍ분당ㆍ용인ㆍ평촌 등 7곳을 ‘버블 세븐’으로 지정해 단속에 나섰다. 종합부동산세 도입, 양도소득세 강화, 분양권 전매 제한, 재건축 개발이익 환수, 실거래가 파악 등 강경책을 쏟아냈고 분양가 자율화를 폐지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30여차례나 쏟아낸 ‘강수’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 동안 전국 아파트값은 평균 34% 올랐고 서울은 56% 급등했다.
물론 부동산 투기 세력에 대해서는 철저한 단속이 필요하다. 재개발ㆍ재건축 조합의 비리도 단죄돼야 한다. 지역주택조합원의 눈물을 닦아 주는 것도 시급하다. 서민들의 주거 안정책도 확대돼야 한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노무현 정부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며 “정부의 인위적 부양책이나 억제책이 반짝 효과를 낼 지는 몰라도 결국 시장 왜곡을 불러와 집값 상승을 부추기거나 부동산 경기를 더욱 악화시키는 부작용이 매번 반복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금리인상 우려와 입주물량 폭탄 등으로 부동산 경기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규제 정책만 시행하면 충격이 커질 수 있다”며 “공약이라고 해서 무조건 실시해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기보다 시장 상황과 경기 사이클을 보고 정책을 융통성 있게 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기중 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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