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째 해당 사건 예비조사만
근로실태 조사 요구에도 귀 막아
문재인 대통령 취임 열흘 만에 정부와 관련 기관이 분주해졌습니다. 문 대통령 지시에 3년간 세월호 기간제 교사의 순직 인정 불가를 고수해온 인사혁신처는 방법 찾기에 나섰고, 비정규직 비율이 85%였던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연내 ‘비정규직 제로’를 약속했습니다. 대통령 말 한 마디면 가능했던 일들이 그냥 방치돼 온 겁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아직 말을 꺼내지 않아서 일까요?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비정규직 스태프를 착취해야만 하는 구조를 비관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이한빛 PD 사망 사건은 좀체 진척이 없습니다. 고용노동부는 벌써 한 달째 CJ E&M에 대해 특별근로감독 예비조사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건을 맡고 있는 고용부 서울서부지청 관계자는 18일 “현재 이 PD의 죽음에 국한해 내사 중이며 실제 근로시간 등을 파악할 자료가 부족해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습니다. 당초 방송계 전반의 근로 실태 조사가 필요하다고 대책위는 지적했지만 조사 범위도 축소된 겁니다.
미지근한 이들과 달리 국민들의 바람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달 19일 서울 상암동 CJ E&M 본사 앞에서 이 PD의 동생 한솔씨부터 시작된 1인 시위는 당초 4월말까지 이어갈 예정이었으나, 참여를 희망한 시민들의 요구로 이달부터는 줄곧 일반 시민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지난달 28일 이 PD 추모제에 참석했던 한 종합편성채널 PD A(30)씨는 “업계 종사자로서 현장의 부당함에 목소리를 내지 못한 점이 마음에 걸려 추모제에 오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지난달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고인(이 PD)의 죽음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병폐인 ‘노동 착취’에 기인한다”며 “철저한 진상조사를 해야 하며 저도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 나가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관련 이 PD의 아버지 용관씨는 “답답한 마음에 대통령께 호소라도 하고 싶지만 취임하자마자 할 일이 많아 바쁘신 점을 잘 안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정부의 모든 일은 대통령이 일일이 나서야만 해결이 되는 건지 씁쓸합니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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