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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래에서 온 이야기]국가의 보안무기, 국가안보를 겨누다… ‘랜섬웨어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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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래에서 온 이야기]국가의 보안무기, 국가안보를 겨누다… ‘랜섬웨어의 역설’

입력
2017.05.2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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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코리 닥터로우의 디지털 감시사회

미 NSA의 해킹툴이 해커에 악용

작가가 소설에서 경고한 그대로

테러방지법 제정 미국 그린 작품

필리버스터서 읽혀 세계적 화제

서기호 정의당 의원이 2016년 2월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 제정을 막기 위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하던 중 디지털 감시사회를 그린 코리 닥터로우의 SF 소설 '리틀 브라더'를 읽어 화제가 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기호 정의당 의원이 2016년 2월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 제정을 막기 위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하던 중 디지털 감시사회를 그린 코리 닥터로우의 SF 소설 '리틀 브라더'를 읽어 화제가 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6년 2월 23일 오후 6시 50분, 정의화 당시 국회의장은 ‘국가비상상황’을 선언하고 15년간 거부되었던 테러방지법을 국회 본회의에 직권상정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대(對)테러센터 하에 국가정보원이 테러 예방을 명목으로 국민의 통신과 금융정보를 영장 없이 정보 수집할 수 있게 된다. 이날 오후 7시 5분, 더불어민주당의 김광진 의원이 5시간 34분의 토론을 개시한 이후로 세계 최장기록인 192시간의 필리버스터가 펼쳐졌다. 민주주의와 개인의 인권, 헌법에 대한 현직 정치인과 전문가의 무제한 연설이 전국에 생방송되었다.

그 와중에 SF 팬들의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었다. 필리버스터 4일째인 26일, 열한 번째 발언자인 정의당의 서기호 의원이 품에서 책 한 권을 꺼내 읽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에 소개된 지 몇 달 안 되는 코리 닥터로우의 SF소설 ‘리틀 브라더’였다.

이를 본 SF팬들은 신이 나서 트위터로 닥터로우에게 멘션을 날렸고, 작가는 놀라 ‘지금 한국에서 무슨 일이 났느냐’고 물었다. 그는 잽싸게 정보를 수집해 불과 몇 분 안에 자신이 공동편집자로 있는 블로그에 기사를 올렸다. 월 방문자가 수백만 명에 달하는, 뉴욕타임즈보다 영향력이 크다고 알려진 세계 10대 블로그 ‘보잉보잉’이었다. 서 의원이 연설 도중 책 한 권을 꺼내든 순간 연쇄반응이 일어나 필리버스터가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소개된 셈이다. 그 자체로 SF적인 사건이었다.

테러방지법이 시행된 미래

‘리틀 브라더’는 정확히 테러방지법이 시행된 근미래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SF소설이다. 샌프란시스코에 테러가 일어나자 학교를 땡땡이 친 십대 아이들이 테러용의자로 붙잡혀 고초를 겪는다.

짐작하시다시피, ‘리틀 브라더’라는 제목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전체주의 감시자 ‘빅브라더’에서 따온 것이다. ‘1984’에는 집집마다 걸린 빅브라더의 초상화에 감시카메라가 붙어 있다는 설정이 있는데, 지금은 국가가 그럴 수고를 할 필요도 없다. 우리 모두가 웹캠이 달려 있고 무제한 인터넷망이 연결된 노트북과 스마트폰에 모든 개인정보를 직접 입력하고 있지 않은가. 오웰이 상상한 감시국가는 그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형태로 현실이 된 셈이다.

재미있는 점은 많은 한국인이 이 책을 읽고 “한국의 현재를 다룬 사회소설”로 느꼈다는 것이다. 저자가 쓴 한국어판 서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서구에 사는 저 같은 사람들에게 한국은 100메가 광케이블과 PC방, 프로게이머가 넘치는 약속의 땅입니다. 한국은 인터넷으로 연결된 미래를 서구보다 앞서 나갔지만, 그와 동시에 디스토피아적인 감시 역시 선두에 있습니다.”

서구의 SF가 한국에서 현실이 되다

다원화된 세상에서 기술은 고르게 발달하지 않는다. 인터넷망이라는 면에서 한국은 미래에 먼저 와 있다. 그로 인한 명암을 모두 갖고 있다. 흔히 말하기를 한국의 도시는 20세기의 SF 작가들이 상상한 사이버펑크 SF에 가장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다. 국가보다 강력한 기업, 가치관의 붕괴, 고층빌딩과 네온사인, 고도로 발달한 정보통신 기술과 해킹전쟁.

세계 최고의 인터넷 속도와 보급률, 스마트폰 보급률을 자랑하는 나라에서 국가와 기업의 시민감시는 너무나 쉽다. 개인정보는 네트워크를 통해 무제한으로 유출된다. 가짜뉴스를 퍼트리고 정보를 오염시키는 것도 비할 수 없이 쉽다.

지난 4월, 언론은 이명박 정권 아래에서 국정원이 민간인 여론조작부대 알파팀을 운영한 정황을 보도했다. 이들은 건당 수만 원을 받고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 정당, 언론, 노조, 법관까지 비난하는 여론전을 벌였다. 용산 참사가 있었던 2009년, 알파팀은 철거민을 비하하고 이들이 보상금을 노린 전문 시위꾼이라는 내용을 퍼트렸다. 검색어 순위를 조작하는 클릭 수를 올리는 프로그램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장강명 작가의 소설 ‘댓글부대’ 안에서는 하청을 받은 작은 민간업체가 고작 세 명으로 게시판을 교묘히 도배하며 정부에 비판적인 인터넷 커뮤니티들을 하나하나 무너뜨린다. 이 소설은 한국에서는 사회소설이다. 하지만 배경설명 없이 외국에 소개되었다면 SF로 분류되지 않았을까?

광케이블ㆍ스마트폰 넘치는 한국

정보유출ㆍ조작ㆍ감시 위험도 커

자유와 통제가 함께 있는 바다

디스토피아 될지는 개인에 달려

헐리우드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1998)에서는 국가권력이 인공위성, 휴대폰, TV 등 갖가지 전자장비를 이용해 시민의 일상을 감시하는 현실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브에나비스타픽처스 제공
헐리우드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1998)에서는 국가권력이 인공위성, 휴대폰, TV 등 갖가지 전자장비를 이용해 시민의 일상을 감시하는 현실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브에나비스타픽처스 제공

디지털 감시사회에 디지털 기술로 맞서다

하지만 닥터로우가 그리는 세상은 ‘1984’처럼 암울한 디스토피아가 아니다. 이 책의 서문은 다음과 같이 끝난다. “이 책은 컴퓨터가 우리를 어떻게 감시할 수 있는지 경고하는 책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컴퓨터가 우리를 자유롭게 해 줄 수 있을지에 대해 묻는 책입니다.”

그렇다. 이 책은 그냥 소설이 아니라 실용서자 지침서다. 국가가 국민을 통제하고 감시하려 들 때, 권력도 돈도 없고 가진 건 달랑 컴퓨터 하나뿐인 개인이 자유와 사생활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꼼꼼히도 소개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기술은 실제 기술이고 등장하는 단체나 협회, 웹사이트도 현존한다. 웹캠에 스티커를 붙이는 간단한 팁에서부터 두루마리 휴지와 LED전구로 간이 몰카 탐지기를 만드는 법, 게임기 엑스박스를 보안 컴퓨터로 만드는 법, 그 외 해커가 현장에서 쓰는 팁이 줄줄이 소개된다.

소설은 왜 테러방지법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가를 ‘허위 양성반응의 역설’이라는 수학이론을 통해 설명한다. 이는 찾아내야 할 것의 수가 극히 작을 때 일어나는 역설이다. 테러분자가 한국에 100만 명에 하나 있다고 가정하고, 99%의 정확도를 가진 테러감지기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 감지기가 100만 명을 검사하면 한 명이 아닌 1만 명의 테러리스트를 찾아낸다. 99% 정확한 감지기가 99% 틀린 결과를 내는 셈이다. 5,000만 명이라면 50만 명의 테러분자를 찾게 된다. 이미 우리가 근현대사에서 넘치도록 체험한 일이기도 하다. ‘종북좌파’를 색출하려는 국가의 시도는 효용성 없이 시민에 대한 통제와 억압만 가져왔다.

소설은 또한 닥터로우의 삶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는 시민활동가이자 자유저작권 운동가로, 디지털 권리 옹호에 앞장서는 시민단체인 전자프런티어재단(EFF)의 유럽지역 사무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디지털감시의 위험을 누구보다 격렬히 경고하는 것과 동시에, 디지털정보가 개인을 자유롭게 한다고 믿는다.

‘리틀 브라더’의 혁명 주체는 십대들이다. “돈은 없지만 시간은 남아도는 아이들의 능력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마라”는 명제 아래, 이들은 컴퓨터 한 대만 들고 정부와 맞짱을 뜬다. 아이들이 테러방지법에 대항해 거리로 뛰쳐나와 외치는 구호는 “25세 이상은 아무도 믿지 마!”이다. 이 문구는 정치적인 히피인 이피(Yippie)들이 월남전 반대 시위를 하며 외쳤던 구호 “30세 이상은 아무도 믿지 마!”를 계승한 것이다.

‘리틀 브라더’의 속편 ‘홈랜드’에서 성인이 된 마커스는 더 힘든 세상에서 산다. 캘리포니아는 파산했고 마커스는 학자금 대출 빚에 시달리느니 대학을 포기한다. 그러다 학자금 대출에 관련된 정부와 기업의 추한 거래를 알게 된다. 더 좋은 직업을 얻기 위해 학위를 산 학생들은 되려 가난해지고 그 돈은 엉뚱한 이들의 배를 불리는데 쓰인다. 지식은 청년의 인생을 담보로 비싸게 강매되는 것이 아니라 널리 오픈되어야 한다고 믿는 저자의 신념을 엿볼 수 있는 동시에, 정확히 한국의 현재를 연상케 한다.

랜섬웨어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직원들이 15일 서울 송파구 진흥원 종합상황실에서 피해상황을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랜섬웨어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직원들이 15일 서울 송파구 진흥원 종합상황실에서 피해상황을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인터넷 사회의 명암을 생각하다

국가안보는 개인의 자유에 우선하는가? 국가는 상황에 따라 개인의 기본권을 제한해야 할까? 위협적인 적 앞에 국론은 뭉쳐야 할까? 소설 속의 마커스는 “국가의 일은 국론통합이 아니라 반론을 허용하는 것”이라며 저항한다.

지난 주말 약 150개국에서 20만건 이상의 공격을 한 랜섬웨어 ‘워너크라이(WannaCry)’는 본래 미 국가안보국(NSA)의 해킹툴로, 이를 해커들이 훔쳐 뿌린 것이다. 닥터로우는 국가가 안보를 위해 쓰는 도구는 간단히 유출되어 오히려 안보를 위협한다고 경고했는데, 이 경고가 그대로 구현된 사례다. 이번에 그 확산을 막은 것이 22세의 익명의 젊은이였다는 점 또한 그의 소설을 연상시킨다.

‘홈랜드’ 추천사에는 애런 슈워츠의 이름이 보인다. 그는 14세에 블로그의 전신인 RSS 제작에 참여했고, 15세에 특정 조건에서 저작물 배포를 허락하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CCL) 활동을 했으며 시사 사이트 레딧(Reddit)의 공동설립자이기도 한 천재 해커였다. 그는 학술정보가 무료로 공개되어야 한다는 신념하에 저널 웹사이트 JSTOR를 해킹했다가 35년 이상의 징역을 살 수도 있는 중죄로 기소되었고, 26세의 어린 나이로 자살했다. 추천사에서 그는 정부가 영장 없이 웹사이트를 검열하는 법을 몰래 통과시키려 했던 사건을, 온라인으로 알려 막은 일을 언급한다.

닥터로우가 친구이자 동료로서 등장하는 다큐멘터리 안에서, 애런 슈워츠는 말한다. “두 개의 대립되는 시각이 있어요. 인터넷이 자유와 인권을 선사했다는 시각, 인터넷 감시 때문에 통제가 심해졌다는 시각, 인터넷은 둘 다 가지고 있어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죠.”

김보영ㆍSF 작가

코리 닥터로우

1971년 7월 17일~

캐나다 출신의 자유저작권 운동가이자 SF 소설가. 검색엔진 테크노라티가 선정한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블로그’인 ‘보잉보잉’의 공동 편집자이다. 표현의 자유와 저작물의 자유로운 사용, 프라이버시 보호, 정보 투명성을 위해 싸우는 활동가이기도 하다. 2000년 이래 과학소설을 발표해왔고 최고의 논쟁적인 작품에 수상하는 프로메테우스상은 현재 최다 수상자다.

<소개된 책>

리틀 브라더

코리 닥터로우 지음

최세진 옮김

아작 발행

홈랜드

코리 닥터로우 지음

최세진 옮김

아작 발행

댓글부대

장강명 지음

은행나무 발행

1984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민음사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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