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맨체스터 아레나 테러
청소년 노린 야만적 공격
총선 앞둔 英 전역에 공포 확산
22일(현지시간) 오후 10시 33분 자살 폭탄 테러 공격이 발생한 영국 북서부 맨체스터의 실내 경기장 ‘맨체스터 아레나’는 2만1,000여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곳으로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공연장’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하다.
8세 어린이 등 최소 22명이 사망한 이날 폭탄 테러 발발 당시 만석을 이룬 장내에선 미국의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의 ‘데인저러스 우먼’ 투어공연이 막을 내린 직후였다. 그란데의 팬층은 주로 10대 소녀들로 이들은 공연이 끝나자 밖에서 기다리는 가족을 향해 발걸음을 서두르는 중이었다. 이를 기다렸다는 듯, 테러범은 공연직후 관객들이 쏟아져나올 시점을 정확히 노려 인파로 병목현상이 발생하는 출구지점 매표소 근처에서 자폭한 것으로 드러났다. 민간인 가운데 가장 취약한 10대 청소년들을 겨냥한 계산된 공격임이 분명해 보인다.
아이언 홉킨스 그레이터맨체스터주 경찰서장은 23일 기자회견을 통해 “테러범이 급조폭발물(IED)을 들고 있다가 현장에서 자폭했다”며 이번 공격이 ‘소프트타깃’ 즉 테러에 취약한 민간인을 노린 테러 공격임을 분명히 했다. 테러공격 직후 공연장 출구에는 황급히 빠져 나오려는 관객들과 공연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자녀를 데리러 온 보호자들이 뒤엉켜 아비규환을 이뤘다. 앰버 러드 영국 내무장관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약한 이들, 어린이와 청소년을 의도적으로 노렸다”며 “야만적인 공격”이라고 규탄했다. 경찰에 따르면 폭탄을 터트린 용의자는 현장에서 사망한 신원미상의 남성 한 명이며 연계 조직이 있는지 추가 조사가 진행 중이다.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가 배후를 자처했으나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목격자들이 전하는 현장 분위기는 공포와 혼돈 그 자체였다. 10대 목격자 앤디 제임스는 미국 CNN방송에 “폭발이 일어난 순간 모두가 비명을 지르며 계단 위로 뛰어올라 도망쳤다”고 말했다. 9세 동생과 처음으로 공연장을 왔다는 제임스는 폭발로 인한 진동을 느끼는 순간 동생을 끌어안고 계단 위쪽으로 달려갔다. 그와 동생 모두 “폭발음을 듣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고 했다. 폭발로 발생한 연기가 계단과 복도를 가리는 통에 혼란은 가중됐다. 목격자 키라 도버는 “20~30여명이 (폭발장소 근처)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몇몇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공연을 본 엘리 워드(17)의 조부(64)는 경기장 밖에서 손녀를 기다리다 부상을 입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폭발이 일어나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정신을 차려보니 뺨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피해자 신원이 하나둘씩 밝혀지고 있는 가운데, 희생자 중에는 올해 겨우 여덟살이 된 사피 로즈 루소도 있었다. 영국 랭커셔주 레이랜드 출신의 루소는 엄마, 언니와 함께 공연장을 찾았다 참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루소가 다니는 탈턴공립초등학교의 크리스 업턴 교장은 “사피는 모두에게 사랑 받는 따뜻하고 착한 아이였다”며 “소식을 듣고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외 아직 자녀의 행방을 알지 못하는 부모들도 상당수여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갑작스런 테러 공격에 총선(6월 8일)을 앞둔 영국 전역은 공포에 휩싸였다. 노동당ㆍ스코틀랜드국민당(SNP) 등 주요 정당은 애도를 표하고 선거전을 당분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23일 긴급 안보회의 후 “방어력이 없는 젊은이들을 겨냥한 잔혹하고 소름 끼치는 공격”이라고 비난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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