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데뷔했다. 기아 최초의 고성능 모델인 스팅어가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보무도 당당히! 제네시스 쿠페의 단종 이후 D세그먼트 국산차 중 첫 고성능 후륜구동 모델이다. 개인적으로는 위장막으로 감싼 파일럿카를 쫓아 야간 고속도로를 질주해봤고, 기아자동차가 공개한 북유럽에서의 혹한 테스트 영상에 두 주먹을 불끈 쥐기도 했다. 스팅어 발표현장을 찾은 김훈기 기자의 생생한 사진을 보며 엔진 레이아웃에 슬쩍 호기심이 일어난다. 시승하기 전까지는 평가를 아낄 생각이지만 애초부터 나는 스팅어를 그저 ‘배다른 형제’쯤으로 여겼다. 내 속마음은 제네시스 G70을 눈여겨보기 때문이다.
스팅어의 매력은 해치도어에 있다. 사실 플랫폼을 나눠 쓰는 현대기아의 투 트랙 전략은 그간 디자인 외에는 변별력이 크지 않았다. 쏘나타와 K5가 그랬고 아반떼와 K3 또한 그랬다. 현대는 경차와 미니밴을 만들지 않는 터라 기아의 카니발과 레이가 승승장구할 때 내심 부러웠을 것이다. 그렇지만 기아 스팅어는 분명 상품성 기획 초기부터 형제차에 비해 스포츠 감성을 내세우며 ‘그란투리스모’를 꿈꾼다고 밝혔다. 고급감보다는 파격적인 디자인과 후륜구동 세단의 고성능을 어필하며 분명 라이벌이 나타나기 전에 스포티한 성향의 예비 오너들을 모으려는 전략이다.
반면 제네시스 G70은 다르다. 일단 독자적인 브랜드의 볼륨 모델로 데뷔한다. 당연히 스팅어보다는 고급스러움을 강조할 것이다. 성능 또한 가문의 적자(?)이기에 본격적인 스포츠 세단으로 나타날 모양새다. 사실 G80은 제네시스 브랜드가 런칭하기 전에 이미 팔리던 모델이었고, G900은 에쿠스 후속으로 만든 모델에 이름만 제네시스를 부여했던 차다. 하지만 G70은 오롯이 제네시스를 대표하는 진정한 첫 모델이다. 벤틀리와 BMW M 등 근사한 브랜드의 실력 검증된 인원을 모셔와 만든 첫 작품이기에, 정몽구 회장이 G70 프로토타입을 품평하며 고급스러운 질감을 높이라고 불호령을 내린 일화도 일견 이해된다. 제네시스 브랜드를 책임질 모델인 만큼 스팅어에 비해 한층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다. 대당 수익은 물론 향후 데뷔할 제네시스 SUV가 맡게 되겠지만.
얼마 전 G70 파일럿카를 우연히 맞닥뜨린 적이 있다. 그랜저 옆에 나란히 주차된 모습에서 자연스레 비교가 됐다. BMW 3시리즈 급의 작고 빠른 ‘세단’을 원하는 고객은 취향이 확고하다. 디자인은 단정해야 하며 가격 또한 합리적이어야 한다. 자가운전자가 대부분이라 높은 브랜드 가치 또한 꼼꼼히 챙긴다. 그들은 분명 스팅어에 호기심을 보이면서도 한층 단정한(?) G70을 곁눈질하며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제네시스 G70은 이 모든 걸 아우르는 모델로 나타날 것이다. 스팅어가 ‘해치 도어’를 달고 그란투리스모를 지향한다는 숨은 의도는 바로 변별력 때문이리라.
기아자동차는 서럽다. 늘 그래왔듯이 빛나는 자리는 현대의 몫이었으니까. 오랜 기아의 팬으로 조언하자면, 스팅어는 낯선 엠블럼을 통해 새로운 포지셔닝을 꿈꾸기보다는 스포츠 모델로서의 변별력을 한층 높였으면 좋겠다. 이를테면 생산성 운운치 말고 수동 변속기를 주문생산 옵션으로 제공하거나, 경주 스펙의 LSD나 브레이크 시스템을 고를 수 있도록 해주는 것. G70에 수동 변속기를 제공하는 건 논리가 맞지 않으나 스팅어만큼은 다르다. 스포츠 감각보다 브랜드가 먼저인 고객은 누가 뭐래도 스팅어 대신 G70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그들 대신 피터 슈라이어가 정립했던 ‘디자인의 기아’ 시절 쏘나타보다 K5를 좋아했던 열혈남아들이 스팅어를 바라볼 시기가 도래했음을 직시하라. 제네시스 쿠페 3.8 수동 모델의 오너들 또한 스팅어 3.3 터보 수동으로 갈아탈 개연성이 농후해 보인다.
‘국산차의 고성능화’는 올해의 화두가 될 전망이다. 하반기 현대는 제네시스 브랜드의 스포츠 세단을 선보인 이후 한층 본격적인 N 브랜드의 첫차를 내놓을 것이다. 현대기아 연합군이 스포츠 GT와 스포츠 세단, ‘핫 해치’의 삼종 세트로 수입차 군단에 대항해 시장을 석권하려는 밑그림이다. 첫 주자로 나선 스팅어를 향한 시장의 반응이 궁금한 이유다. 스팅어의 실력이 너무나 궁금하다.
최민관 기자 edito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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